행복/유치환 행복/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로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그리운 사람..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
가만히 두 손 모아/박노해 가만히 두 손 모아/박노해 집 없이 추운 이여 예수님도 집이 없었습니다 노동에 지친 이여 예수님도 괴로운 노동자였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이여 예수님도 자기 땅에서 배척당했습니다 배신에 떠는 이여 예수님도 마지막 날 친구 하나 없었습니다 패배에 절망하는 이여 예수님도 영원..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
쓴맛이 사는 맛*/최정란 쓴맛이 사는 맛*/최정란 통이 비었다 쓰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이따금 큰 숟갈로 썼구나 시간이 없는데 식탁을 차려야할 때 급한 불을 끄듯 설탕을 더한다 그때마다 요리를 망친다 손쉬운 달콤함에 기댄 대가다 마음이 허전하고 다급할 때 각설탕 껍질을 벗기듯 손쉬운 위로의 말을 찾는..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
용서하기 힘든 순리/정소진 용서하기 힘든 순리/정소진 어머니께서 먼 길을 가버리셨지 입관예절의 기도 소리 귓가에 쟁쟁한데 이 세상 마지막 대면에 통곡했던 남은 자의 모습으로 내가 거기 있었는데 얼마나 되었다고 다 잊은 듯 맛난 음식 욕심내고 즐거운 일 찾고 웃고 자고 노래하고 장난치고 아무 일도 없었..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김광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
개사돈/김형수 개사돈/김형수 눈 펑펑 오는 날 겨울눈 많이 오면 여름 가뭄 든다고 동네 주막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늙은이들 간에 쌈질이 났습니다 작년 홍수 때 방천 막다 다툰 아랫말 나주양반하고 윗말 광주양반하고 둘이 술 먹고 술상 엎어가며 애들처럼 새삼 웃통 벗고 싸우는데 고샅 앞길에서 ..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
송년에 즈음하면/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년이 한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 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길 막돌맹이보다 초라한 본..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
희망이란 것/이규리 희망이란 것/이규리 부레옥잠은 팔뚝에 공기주머니 하나 차고 있다 탁한 물에서도 살 수 있는 건 공기주머니 속에 든 희망 때문이다 가볍게 떠 있던 물 속 시간들 희망이 꼭 미래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팔뚝에 희망 하나 차고 다닌 적 있다 잊을 수 없는 일마저, 건널 수 없는 세상마..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
징검다리/원무현 징검다리/원무현 이듬해는 유급을 해야 할 처지였던 그해 겨울 돼지가 새끼를 낳았다 그중 젖을 찾아먹지 못하는 약골 두 마리 있었다 아버지는 끼니때마다 그것들을 품에 안아 학교에서 배급받아온 전지분유를 풀어먹이곤 했다 젖을 뗀 녀석들을 내다 판 이듬해 상급반 교실에 무사히 ..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
역광/박수현 역광/박수현 순환선 지하철 안, 한 늙은이가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 듯 빠른 걸음으로 저쪽 칸에서 건너온다 끝이 뭉그러진 작업화에 보풀이 인 목도리를 두르고 때 절은 푸대를 감아쥐고 있다 선반 위에는 사람들이 읽다 만 교차로, 노컷뉴스, 장터마당 등 무가지 신문이 던져져 있다 그..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018.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