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35

공세리성지성당

공세리성지성당 조선시대에 순교한 32위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곳 공세리성지 성당은 1886년 신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한국천주교회가 내포교회의 재건을 위해 1890년 예산 간앙골에 본당이 설립되었고, 1895년 파리 외방선교회의 드비즈 신부에 의해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의 자리는 일찍이 조선조 때 아산,서산,한산을 비롯해 멀리 청주,문의,옥천,회인 등 40개 고을의 조세(租稅) 를 쌓아 두던 공세(貢稅)창고가 있던 곳이다. 고종 때 이곳이 폐지되면서, 80칸짜리 건물이 헐리고 1897년 그 자리에 공세리본당 구 성당 및 사제관 건물이 들어섰다. 공세리를 성지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바로 신유박해(1801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아산 공세리 지역 출신으로 순교한 32위 순교자들 ..

강경성지성당

강경성지성당 하느님의 종 페레올 주교 성 다블뤼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현석문 가롤로, 성 최형 베드로 등 일행 14명 강경 포구 인근에 상륙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에서,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16세 대인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 프란치스코는 병사하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입국을 시도하여 페로올 주교와 함께 변문으로 왔으나,김 부제 홀로 1월 15일 서울에 도착했다. 1845년 4월 페레올 주교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작은 목..

황새바위순교성지(3)

황새바위 순교성지(3) 하느님의 종 김화숙 베드로 성 손자선 토마스 하느님의 종,김화숙 베드로(1808-1867)는 충청도 결성 머리실의 중인 출신으로, 고향에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전라도 산속으로 이주해 옹기점을 운영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충청도 지역으로 이주하여 여러 해 교우촌 회장으로 활동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다. 이후 공주 국실(현 충남 공주시 반포면 국곡리)옹기점 교우촌에 이주해 정착한 그는,회장 소임을 다시 맡아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냉담자 권면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1867년 5월 8일 포교들이 국실로 들이닥쳐 신자 20여 명을 체포했다. 포교들은 신자들을 마구 때리며 '누구에게 천주학을 배웠느냐?"고 심문하자 모두가 하나같이 "김화숙 베드로 회장에게 배웠다."라고 답했다. ..

황새바위 순교성지(2)

황새바위 순교성지(2) 복자 김원중 스테파노,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최종여 라자로와 최천여 베드로 충청도 진천의 발래기(현,충북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살던 복자 김원중 스테파노(?-1866)는 본래부터 성품이 순량하고 온후하였으며,신앙심이 깊어 교우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진천 관아에서는 이미 발래기 신자들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전갈을 보내 천주교를 배교한다는 증거로 관아에 천주교 서적을 바치고 직접 관장 앞에서 다짐하라는 명을 내렸다. 대부분의 발래기 신자들은 놀라고 두려운 마음에 관아의 명에 따라 배교하였다. 이때 김 스테파노만 이를 따르지 않자,외교인들은 물론 신자들까지 그 화가 자신들에게 미칠까 두려워 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황새바위 순교성지(1)

황새바위순교성지(1) 참수 처형으로 대표되는 순교성지 황새바위순교성지는 참수 처형으로 대표되는 순교성지이다. 공주는 내포와 더불어 천주교 전파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며,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있었기에 천주교인들이 가장 많이 처형된 곳이다. 사학죄인으로 잡힌 천주교 신자들이 배교를 거부할 경우 사형 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제민천변의 본류와 제민천의 지류가 만나는 모래사장으로 공개처형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자료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순교자는 총 337명으로 이는 한국 최대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황새바위순교성지에서 기리고 있는 순교자로는 성 손자선 토마스,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복자 이국승 바오로,김원중 스테파노, 청양 정산에서 순교한 이도기 바오로이다. 복자 이국승 바오로..

황무실 성지

황무실성지 황무실의 첫 순교자 복자 이보현 프란치스코 황무실은 오래된 교우촌으로 충청도 내포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초기인 1785년경부터 신자들이 거주하였다. 초기 신자로 알려진 유군명 시메온은 입교한 후 종들을 해방해 주어 일찍부터 하느님 안에서 평등을 실현한 인물이었다. 황무실의 첫 순교자로 기록된 이는 1773년 이곳에서 태어난 복자 이보현 프란치스코이다. 이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양인 집안에서 태어나,어렸을 때 부친을 여의었다. 그는 조금 고집스럽고 난폭한 성격을 지녔기에 아무도 그를 억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세가 조금 넘었을 때,이 프란치스코는 고향 인근에 살던 황심 토마스에게 교리를 배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진리를 깨닫고 얼마 안 되어, 이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행동과 본성을 억..

홍주 순교성지(2)

홍주 순교성지(2) 복자 박취득 라우렌시오(1769-1799) 복자 황일광 시몬(1757-1802) 1769년 충청도 홍주의 면천에서 태어난 복자 박취득(朴取德)라우렌시오는 고향 인근에 전파된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후 그는 한양으로 올라가 지황(사바)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며,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데 노력하였다. 1797년 정사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체포령이 내려지게 되어 피신하였지만,아버지가 대신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면천 관아에 자수하였다. 심문 중에도 "인생이란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인생은 나그넷 길이요,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며 천주교를 전하였다..

홍주 순교성지(1)

홍주 순교성지(1) 복자 원(元)장 베드로(1732-1793) 복자 방(方)프란치스코(?-1799) 충남 홍성군 홍성읍에 자리한 홍주 순교성지는 기록상으로만 신해박해(1791)부터 병인박해(1866)때까지 총 212명의 신앙 선조들이 목숨 바쳐 순교한 전국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이 탄생한 곳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분까지 포함한다면 1,000명이 넘게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홍주 순교성지는 목사의 동헌,교수형터(감옥(,홍주진영,저잣거리,참수터,생매장터 등 6곳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심문과 고문,죽음의 형장까지 순교자들의 신앙의 길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곳이다. 특별히 충청도의 첫 순교자인 복자 원(元)시장 베드로(1732-1793)가 이곳 홍주 옥터에서 순교했다. 복자 원 베드로는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합덕성당

합덕성당 내포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이래 한국 교회의 산증인이 된 유서 깊은 본당 합덕성당은 내포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이래 한국 교회의 산증인이 된 유서 깊은 본당이다. 합덕을 포합하여 조선시대 내포지방은 규모가 크고 중요한 신앙공동체가 많았기에,박해의 피해가 어느 곳보다도 극심했으며,그로인해 대부분의 교우촌 공동체가 와해되고 말았다. 1886년 신교의 자유가 허용되자 한국천주교는 내포교회의 재건을 위해 1890년 양촌성당과 간양골성당을 건립하였다. 간앙골성당은 공세리성당이 되었다. 1890년 파견된 장 퀄리에(Jean Curlier,1863-1935)신부는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양촌성당을 설립했으나 이후 본당의 중심지로 적합지 않다 여겨 새로운 장소를 물색한 끝에 1898년 현 위치에 성당을 건립하..

청양 다락골 성지

청양 다락골 성지 1839년 일어난 기해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교우촌 현재의 행정구역명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에 있는 다락골 성지는 새터와 줄무덤 성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이 '다락골'이라는 명칭은 마을의 형태가 다락 모양과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인데,이곳을 다래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다래골'로 부르기도 하였다. 새터 성지는 다락골에서 남쪽으로 700m 아래쪽에 위치한다. 새터와 그 일대는 박해시대 교우들이 삶을 영위하던 곳으로 최경환 프란치스코(1805-1839)성인과 그의 아들 '땀의 순교자'최양업 토마스(1821-1861)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조부인 최인주가 12살이 되던 해에 서울에서 홀어머니 경주 이씨를 모시고 1791년 진산사건으로 시작된 신해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