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 순교성지(2)
복자 박취득 라우렌시오(1769-1799)
복자 황일광 시몬(1757-1802)
1769년 충청도 홍주의 면천에서 태어난 복자 박취득(朴取德)라우렌시오는 고향 인근에 전파된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후 그는 한양으로 올라가 지황(사바)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며,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데 노력하였다. 1797년 정사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체포령이 내려지게 되어 피신하였지만,아버지가 대신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면천 관아에 자수하였다. 심문 중에도 "인생이란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인생은 나그넷 길이요,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며 천주교를 전하였다. 여러 달 동안 갇혀 있으면서 자주 형벌을 받아야 만 했다. 또 옷이 벗겨진 채로 진흙 구덩이에 갇혀 밤새껏 추위와 비람으로 고통을 받은 적도 있었다. 바로 이 무렵에 그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옥에 갇힌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어떻게 해야 천주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지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잠결에 '십자가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이 발현은 약간 희미하기는 하였지만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 그 동안 박 라우렌시오는 곤장을 1,400대나 맞았으며,8일 동안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였지만 죽지 않았다. 이에 옥졸이 새끼줄로 그의 목을 졸라 결국 순교하였다. 이때가 1799년 4월 3일로,당시 그의 나이는 약 30세가량이었다.
1757년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난 황일광(黃日光)시몬은 천한 신분출신으로 어린 시절 몹시 어렵게 생활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는 그에게 이러한 생활을 보상해 주기 위해 놀랄 만한 지능과 열렬한 마음과 매우 명랑하고 솔직한 성격을 주셨다. 1792년 무렵,황 시몬은 홍산 땅으로 이주하여 살던 중에 우연히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가 교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는 천주교 신앙을 접하자마자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동생 황차돌과 함께 고향을 떠나 멀리 경상도 땅으로 가서 살았다. 교우들은 시몬의 사회적 신분을 잘 알고 있었지만,오히려 그를 애덕으로 감싸주었다. 양반 집에서까지도 그는 다른 교우들과 똑같이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그는 농담조로 이렇게 이야기하곤 하였다.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황일광 시몬은 땔나무를 하러 나갔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옥으로 끌려 갔다. 이후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며 황 시몬은 다리 하나가 부러져 으스러지도록 잔인하게 매질을 당해야만 하였다. 사형 판결을 받음과 동시에 조정에서는 '황일광을 고향으로 보내 참수함으로써 그곳 백성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서 시몬은 고향인 홍주로 이송되었다. 그는 홍주에 도착하는 즉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는데, 이때가 1802년 1월 30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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