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그리고 시 160

삶이란/민병도

삶이란/민병도 풀꽃에게 삶을 물었다흔들리는 일이라 했다 물에게 삶을 물었다흐르는 일이라 했다 산에게 삶을 물었다견디는 일이라 했다   "삶이란빈 그릇에 음식을 담아내는 일, 때로는 펄펄 끓는 육수를 담다가도어느새 오이 냉국에 얼음 둥둥 띄우는..." - 민병도 대담 중에서.. -   만신창이의 노래/민병도 내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길바닥에 쓰러졌을 때맨 먼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고 차들이 밟고 지나가고덩달아 새들도 짐승들도 구름도짓밟고 지나갔다. 이윽고 내 자신의 혼령이 밟고 지나가고다만 한 떨기 풀꽃만이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소리도 적막도 없는 그리운 그대 생각"

겨울 산행 /민병도

겨울 산행 /민병도 내려올 줄 알면서도 다시금 산을 오르네흔들리는 마음덜미 들키지 않으려고드러난 빈자리마다 울음으로 채우는 산 뜨겁던 몸부림은 눈 속에 하마 묻었나미쳐 감추지 못한 그리움은 바람되어아직도 삭히지 못한 분노를 게우는데 그렇지, 견딤이란 내 안에 나를 가두는 일절룩절룩 따라오던 물소리도 뒤쳐지고마침내 정상에 서면 산은 거기 없었네 아, 정녕 내가 오른 것은 산이 아니었네새들마저 떠나보내고 언 땅에 얼굴을 묻은아흔에 아홉 번을 읽어 더욱 먼 밀경密經이네

괴테의 시

한 잔 쟈스민 차에의 초대 들어 오셔요,벗어 놓으셔요 당신의슬픔을,여기서는침묵하셔도 좋습니다 EINLAEUNG ZU EINER TASS JASMINTEE Treten Sic ein, Iegen Sie Ihrerraurigkeit ab,hierdiirfen Sie schweigen  은 엉겅퀴(Silberdister) 뒤로 물러서 있기 땅에 몸을 대고남에게 그림자 드리우지 않기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  * 은 엉겅퀴(Silberdister)우리 엉겅퀴와 생긴 건 비슷한데 키가 민들레처럼 납작합니다.그리고 하얀 꽃이 한 송이 피는 아주 귀한 종류의 엉겅퀴이다.  나그네의 저녁 노래 모든 산봉우리 위에는안식이 깃들고모든 나무 잎새들 속에는숨소리조차느껴지지 않는다.작은 새들도 숲 속에서 입을 다물었다.기다려..

꽃 피는 시절 / 장진희

꽃 피는 시절 / 장진희 우울 하나가다른 슬픔을 데리고 온다슬픔이 또다른 눈물을 불러온다흐린 날도 꽃은 피고길가 봄꽃들은 다투어 터지고산속 깊이 진달래는 홀로 붉게 운다꽃 피는 시절엔서러워더욱 서러워장진희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장터로 마을회관으로.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고독과의 대화 /민병도

고독과의 대화/민병도   어제도 오늘도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이 화실로 찾아왔다. 이제는 예기치 못한 손님을 맞는 일에도 길이 들여져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요즈음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눈 덮인 풍경을 만끽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화가들이거나 글 쓰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반가운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대접은 차 한 잔 내어 놓는 것이 전부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눈 덮인 창 밖 풍경을 다식 대신 덤으로 내어놓기도 한다.  ​몇 잔의 차를 나누는 동안 손님들의 옷깃에 묻혀온 도심의 이야기들이 다 소진되고 나면 한결같이 ‘혼자서 적적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걱정을 쏟아놓는다. 아마도 ‘적적’하지 않느냐는 물음은 ‘외롭지 않느냐’라는 물음의 조심스러운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물음에는 딱..

돌을 읽다/민병도

돌을 읽다/민병도 저문 날 강에 나가 징검돌을 건너다보면세상 어떤 문자도 범접 못한 경전이 있어누군가 물속에 숨어 지줄지줄 읽어 주었다​꽃이 피고 새가 울고 달이 지고 날이 새고바람에 흔들리느니 차라리 생살 깎아시간의 지문에 갇힌 깊은 고요, 환하다​보지 않고 듣지 않고 알지 않고 말하지 않고날마다 길을 버리면 스스로 길이 되나밑줄 친 행간에 감춘 한숨마저 읽었다  시평  꽃이 핀다. 단단하게 다물었던 입술이 살짝 벌어지는가 싶었는데, 붉은 기를 머금은 이파리들이 몸을 일으킨다. 미심쩍은 듯 주춤거리던 행동이 어느 순간 자신감이 붙었는지 활짝활짝 몸을 뒤로 젖힌다. 화려한 자태, 카메라가 당겨 놓은 시간의 속도가 꽃의 생명을 더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영상은 꽃의 절정을 보여주고 나서 순간 거꾸로..

바람 소리 / 장진희

[걸리어 흔들리는 마음의 소리]  바람 소리 / 장진희바람은 소리가 없지바람이 지나갈 때걸리어 흔들리는 것들의 소리솔가지 바람 소리대숲 바람 소리오월 푸른단풍잎 바람 소리휘돌다 걸리어빠져나가지 못하는마음의 바람 소리삼성각 댓돌에넋놓고 앉아 있다  [세상의 모든 말들 묶어 두고 말간 숨만 나오라]  밤 비 / 장진희세상의 모든 말들떠도는 방창호지를 때리며밤새 굵은 비 내린다자라말들은 자라숨결만 곱게 살고물기 털고 날아오른아침 새들이 부른다불어난 개울물이큰소리로 부른다족쇄는 풀어서세상의 모든 말들 묶어 두고가벼운 발걸음만 나오라말간 숨만 나오라[마음은 천하호걸, 몸은 밴댕이 소갈딱지]  철없는 위장 / 장진희밥때 되어뱃속에서 꼬로록 소리 나는 거야사람 짐승으로 태어났으니탓할 게 없지만이놈의 위장은배 찼다 그..

매화시(梅花詩)/퇴계 이황

매화시 (梅花詩) 桐千年老恒藏曲 동천년노항장곡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품고 있으며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는 않는다 月到天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그대로이고, 柳經百別又新持 유경백별우신지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一樹庭梅雪滿枝 일수정매설만지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 풍진해몽차지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消月 옥당좌대춘소월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鴻雁聲中有所思 홍안성중유소사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퇴계 이황의 "매화시첩"중에서-

마음에 두지 말라/문정윤 수필가

마음에 두지 말라/문정윤 수필가 만행을 하는 스님이 날이 저물어 작은 암자에 들었다.다음 날 스님이 길을 떠나려 할 때 암자의 노승이 물었다."스님은 세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세상은 오직 마음 뿐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자 노승은 뜰 앞의 바위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이 바위는 마음 안에 있느냐?  마음 밖에 있느냐?""마음 속에 있습니다."스님이 대답하자 노승은 웃으면서 말하였다."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왜 무거운 바위를 담아가려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