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그리고 시 152

고독과의 대화 /민병도

고독과의 대화/민병도 어제도 오늘도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이 화실로 찾아왔다. 이제는 예기치 못한 손님을 맞는 일에도 길이 들여져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요즈음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눈 덮인 풍경을 만끽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화가들이거나 글 쓰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반가운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대접은 차 한 잔 내어 놓는 것이 전부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눈 덮인 창 밖 풍경을 다식 대신 덤으로 내어놓기도 한다. ​몇 잔의 차를 나누는 동안 손님들의 옷깃에 묻혀온 도심의 이야기들이 다 소진되고 나면 한결같이 ‘혼자서 적적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걱정을 쏟아놓는다. 아마도 ‘적적’하지 않느냐는 물음은 ‘외롭지 않느냐’라는 물음의 조심스러운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물음에는 딱히 준..

매화시(梅花詩)/퇴계 이황

매화시 (梅花詩) 桐千年老恒藏曲 동천년노항장곡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품고 있으며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는 않는다 月到天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그대로이고, 柳經百別又新持 유경백별우신지 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一樹庭梅雪滿枝 일수정매설만지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 풍진해몽차지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消月 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鴻雁聲中有所思 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퇴계 이황의 "매화시첩"중에서-

마음에 두지 말라/문정윤 수필가

마음에 두지 말라/문정윤 수필가 만행을 하는 스님이 날이 저물어 작은 암자에 들었다. 다음 날 스님이 길을 떠나려 할 때 암자의 노승이 물었다. "스님은 세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상은 오직 마음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노승은 뜰 앞의 바위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바위는 마음 안에 있느냐? 마음 밖에 있느냐?" "마음 속에 있습니다." 스님이 대답하자 노승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왜 무거운 바위를 담아가려고 하는가?"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마라/지지 않는 꽃/나태주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마라/나태주 ​ 너,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했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 조그만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 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도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했다 너, 너무도 잘 하려고 애쓰지 마라 지지 않는 꽃/나태주 하루나 이틀 꽃은 피었다 지지만 ​ 마음속 숨긴 꽃은 좀 더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조미하

이 또한 지나가리라/조미하 밤을 꼬박 새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둠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힘든 일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모두 지나간다는 것을 사람을 잃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게 사람이라는 것을 누군가를 미워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자신만 힘들다는 것을 포기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인내와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을 기나긴 겨울을 지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따뜻한 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야 정확히 깨닫고 알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 있다 힘든 일도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닿고 싶은 곳/최문자

닿고 싶은 곳/최문자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쪽으로 슬픔의 방향을 정하고 서야 꽉 움켜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죽을 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해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슬픈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 최문자(1943년 서울 생) 1982년 등단. 시집外

십일월/쓸쓸한삽화/바람의 머리카락/홍성란

십일월/홍성란 사람은 두고 마음만 사랑할 수 있을까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네 마음을 사랑했다고 가을도 다 지난 산언덕 가끔 지는 가랑잎 널 보내고 네 마음 다시 그립다고 먼 파도소리처럼 살 비비는 가랑잎 떼와 오백 년 그 너머 歌人에게 말해줘도 좋을까 쓸쓸한 삽화/홍성란 사랑받지 못하여도 사랑할 수 있으므로 고단한 속눈썹은 들꽃을 만나러 간다 이름도 풍화해버린 풀잎 같은 꽃들을 서러움의 뒷모습은 어떤 빛일까 어떤 몸짓일까 귀 먼 너에게 다시 묻지 않으리 길이 든 영혼 호올로 사랑 할 수 있으니 공허한 목소리가 억새처럼 흩날린다 안개 내린 11월에 온몸을 수장하고 풍어도 눈먼 사랑을 놓아준다 놓아준다 바람의 머리카락/홍성란 대추 꽃만한 거미와 들길을 내내 걸었네 잡은 것이 없어 매인 것도 없다는 듯 날개도..

법정 스님의 8가지 명언

법정 스님의 8가지 명언 1.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2.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3.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4.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

실비아 플라스의 시

유아론자의 독백/실비아 플라스 나? 나는 혼자 걷는다, 자정의 거리가 발아래서 빙빙 회전한다, 눈을 감으면 이 꿈꾸는 집들은 모두 사라진다. 내 기분에 따라 박공벽 위로 천상의 양파 같은 달이 높이 걸려 있다. 나는 멀리 감으로써 집을 오그라뜨리고 나무를 축소한다. 내 표정이 띠는 염격함은 자신이 어떻게 작아지고, 웃고,입 맞추며, 술에 취하는지 알지 못하고, 내가 눈을 깜박이기라도 하면 죽게 될 것임을 상상하지 못하는 꼭두각시들을 허공에 매달아놓는다. 나는 기분이 좋을 때 풀잎에 녹색을 부여하고 하늘을 파랗게 꾸미며, 태양을 황금빛으로 만든다. 하지만,기분이 우울할 때,나는 색깔을 거부하고 꽃의 자태를 금하는 절대 권력을 지닌다. 나는 네가 생생하게 내 곁에 나타나는 것을 안다. 내 머릿속에서 네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