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고 싶다 48

제 상처를 장대 삼아 높이뛰기를 희망한다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마지막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한 마디는 ‘나’라고 했다. 장일순 선생은 나락 한 알에도 우주가 있다고 했으니, ‘나’라는 우주 안에도 또 다른 우주가 있겠지, 생각한다. 그 우주를 쉽게 손을 뻗어 닿을 수 없는, 아무리 연모해도 충분히 만날 수 없는 ‘그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내가 그 분을 만나지 못했다 여기더라도 이미 그분 안에 내가 안겨 있다면, 내 사랑의 크기와 상관없이 더 큰 사랑 안에 잠겨 있다면, 이를 깨닫는 것으로 충분히 우리는 행복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 연구자였다가 한때 노동운동가였다가, 잡지 편집자였다가 한때 농부였고, 예술심리치료사였고, 나중엔 신문 편집을 맡기도 했다. 결국 지난 25년 동안 변변한 직..

하느님의 영원한 젖가슴, 엄마 마리아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6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하고 불렀다. 엄마는 없었다. 우리에게 호칭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부친과 모친, 아버지 어머니, 아빠 엄마라는 말이 있지만, 그 각각의 언어가 주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어머니와 달리 엄마란 ‘친밀함’을 드러내는 호칭이다. 나는 성장과정에서 한 번도 그렇게 불러 본 적은 없지만, 요즘은 누구나, 내 딸아이 역시 아버지를 ‘아빠’라 부른다. 그런데 이른바 철이 들면서 아빠는 ‘아버지’로 굳어져 가며, 그 호칭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어릴 적 부르던 ‘엄마’는 우리의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하얗게 세더라도 여전히 ‘엄마’이며, 그 역시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짐짓 체면상 ‘엄니!’ 또는 ‘어머니’라..

원더풀 크리스마스, 예수님은 늘 문밖에서 서성거릴 뿐인데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5 전라도 무주 땅이었다. 눈이 펄펄 내리던 날 그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니, 때 이른 사춘기가 시작되어 ‘아빠’ 말도 잘 듣지 않고 제 고집을 피우고, 때로는 오히려 훈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어린 딸내미를 키우며 생각이 많다. 1999년 가을, ‘아수라장’인 서울 탈출을 감행하고, 경북 상주를 거쳐 전라도 무주에 귀농하였을 때 그 첫 수확이 딸아이였다. 그러므로 이 아이는 밀레니엄 베이비인 셈이다. 미국의 리 캐롤과 잰 토버가 1999년 봄에 출판한 이란 책에서는 “인류의 진화사에서 새로운 유형의 아이들이 속속 태어나고 있다”고 전한다. 우리 아이도 그런 아이일까? 인디고 아이들(indigo c..

나는 예수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4 라는 간행물이 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한현 선생님이 십수 년 동안 마스터 인쇄로 찍어서 값 없이 원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읽을거리다. 처음엔 ‘인성회’라는 가톨릭 기관에서 일하면서 발행하다가, 지금은 그도 접어 두고 천지사방을 바람처럼 떠돌며 책을 만든다. 출판사를 끼지도 않고, 생각을 나누어 가진 이들과 더불어 짬짬이 준비하여 세상에 좋은 생각을 한 달에 한 번씩 보태고 계신다. 눈망울이 크고 키가 아주 작아서 짧은 머리카락 덕분에 얼핏 보면 ‘소년’ 같다. 흰 머리카락이 머리를 덮도록 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분은 늘 ‘길 위에’ 서 계신다. 우리집에 찾아오 실 때는 언제나 빵을 사 오곤 하셨는데,..

가난한 인생을 향한 열정의 우울함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3 사진=앙리 가르띠에 브레송 우연히 인터넷을 드나들다가 발견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었는데, 샤르트르, 까뮈 자코메티 등 작가 예술가들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뜨이는 사진은 까뮈와 수전 손택의 사진이었다.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까뮈는 담배를 입에 물고, 손택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앉아 있었다. 금연을 고민하는 내게 그들의 멋진 제스처가 눈에 들어와 심기가 좀 불편하지만, 하여튼 참 멋진 모습이고, 그 몸에 밴 깊이가 헤아려진다. 그렇게 알게 된 수전 손택은 이란 책을 썼다. 우울한 열정이라니! 이 책은 폴 굿맨, 롤랑 바르트, 앙토냉 아르토, 엘리아스 카네티, 레니 리펜슈탈, ..

새벽에 그를 만나, 혁명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2 이런 새벽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죽어 넘어지더라도 세상은 여지없이 예전처럼 회전하겠지. 어린 자녀들의 아직 잠들어 있는 뽀송한 얼굴을 바라보곤 이른 새벽 어느 가장은 연장가방을 메고 첫 버스를 탈 것이며, 아직 동트기 한참 전부터 거리를 쓸고 있는 미화원들의 하얀 입김이 새벽공기를 데울 것이며, 또록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은 영어 단어를 읊조리며 학교로 갈 것이다. 어느 집에선 압력밥솥에서 잘그락잘그락 김이 오르고, 새떼들은 일제히 담장으로 날아들 것이다. 새벽 5시 청진동 해장국 골목에선 새벽 첫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려는 밤샘 취객들이 서성거릴 것이다. 태안반도의 그 어부는 아침마다 기름으로 얼룩..

그래, 아직 우리집이다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1 사진출처=pixabay.com 사람이 살고자 하면, 먼저 찾는 것이 ‘집’이다. 몇 해 전까지 우리집은 산중에 있었다. 전라도 무주 땅 해발 500미터에 자리 잡은 산골이었다.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파란 불똥을 피우며 지천으로 날아다니는 말 그대로 청정한 땅이다. 살던 집이 흙집이라 강풍이 불어대거나 온 종일 비가 내리면 그 소리를 맨몸으로, 온몸으로 들어야 한다. 뒤란에서 대숲이 윙윙거리며 울고, 처마를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한밤 내 뒤 숭숭한 꿈결을 헤집고 다닌다. 무주 우리 시골집은 이제 사라지고 사방에 양식이 널려 있는 계절엔 덜하지만 날씨가 싸늘해지고 들판에 풀들이 서리 맞아 고개를 숙이고나면, 한사코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려..

여비가 필요한 인생길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0 십수 년 만에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 하면 기억나는 것은 옥빛 바다와 빨치산들이 은거하던 좁고 길고 어두운 땅굴의 통로뿐이다. ‘제주’ 하면 언제나 4・3항쟁과 연결 짓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저 가족여행으로 이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딸 결이는 생애의 첫 비행기 탑승으로 흥분되어 있었고, 비행기가 지상을 뜨기 시작하자 창에 찰싹 달라붙어 그 무엇도 놓치지 않으려는 호기심으로 눈빛이 팽팽해졌다. 흐린 김해공항을 벗어난 비행기는 한동안 구름 속을 지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그곳은 구름 사이였고, 분간할 수 없는 앞길 때문에 다소 답답하였다. 그러나 구름 위에..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39 그동안 너무 느슨하게 살아왔던 탓일까 서울로 인천으로 오며가며 사람과 일을 찾아다닌 지 얼추 다섯 달이 되어 가는데, 일정과 약속을 빠짐없이 채우는 게 서툴다. 한꺼번에 여러 일을 동시에 치러내는 과정에서 실수도 많다. 그날 아침엔 권오광 선배에게 문자를 띄웠다. 오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고. 그날은 가톨릭 노동사목 수련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그 선배와 더불어 함백까지 동행하기로 약속했던 날이었는데, 다른 일정이 생긴 것이다. 사실 약속 장소인 송내역으로 나간 것은 그 전날이었다. 날짜를 헛갈린 것이다. 우리는 승용차를 타고 함백에 갔다가 그 밤으로 서울로 되돌아오기로 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다음날에는 다른 일정을 잡아두고 있..

지상을 건너는 길벗, 가족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38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의 일부다. 여기서 사자란 그저 용맹하기만 한 짐승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자란 불교에선 법신(法身), 곧 깨달음을 얻은 부처를 상징하고, 무소는 인도에서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 귀하게 다룬다. 살면서 그 삶 이상의 것을 꿈꾸는 사람은 ‘자비와 고요’를 모두 익혀서 행해야 하는데,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기꺼이 봉헌하는 자비를 베풀고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 고요히 수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