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4
<참사람되어>라는 간행물이 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한현 선생님이 십수 년 동안 마스터 인쇄로 찍어서 값 없이 원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읽을거리다. 처음엔 ‘인성회’라는 가톨릭 기관에서 일하면서 발행하다가, 지금은 그도 접어 두고 천지사방을 바람처럼 떠돌며 책을 만든다. 출판사를 끼지도 않고, 생각을 나누어 가진 이들과 더불어 짬짬이 준비하여 세상에 좋은 생각을 한 달에 한 번씩 보태고 계신다.
눈망울이 크고 키가 아주 작아서 짧은 머리카락 덕분에 얼핏 보면 ‘소년’ 같다. 흰 머리카락이 머리를 덮도록 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분은 늘 ‘길 위에’ 서 계신다. 우리집에 찾아오 실 때는 언제나 빵을 사 오곤 하셨는데, 뵌 지 벌써 꽤 된 것 같다. 한 번 연락을 드려야지,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첫발을 디딘 직장은 ‘천주교사회문제연구소’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과 천주교 사회운동을 하던 분들이 모여서 만든 연구소였는데, 창립된지 3년 만에 재정 문제로 문을 닫았다. 그게 벌써 아득한 옛일이다. 1991년이었다. 레오 13세 교종이 발표한 〈노동헌장〉 반포 100주년이 되던 해였다.
그때 연구소에서는 기념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인천교구의 호인수 신부님과 나에게 ‘노동헌장의 한국적 적용’ 문제를 다루게 하였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노동신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다. 이때 만난 사람이 인성회에서 일하던 한현 선생님이다. 그분은 나랑 같은 대학 동문이었다. 서강대학교 사학과 출신의 대선배. 부드럽고 편안하고 작지만 다부진 여성이었다. 원두커피를 무척 좋아하는 그분을 만났다.
한현 선생 (사진=가톨릭일꾼)
한현 선생을 만나고 노동현장에 들어가다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님이 처음 만드신 인성회(한국카리타스)는 사회운동과 사회복지를 통합하려고 애쓰는 교회기관이었다. 여기서 일찍이 영성과 사회적 실천의 통합을 꾀하는 소책자들이 무수히 발행되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선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미 아시아주교연합회를 비롯한 세계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실천적인 영성과 사목에 관하여 고민이 깊었다.
이 당시 내가 노동신학에 대하여 고민했을 때, 노동현장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라고 조언해 주셨던 분이 그분이다. 그래서 나는 노동운동이 아닌, 그저 단순히 ‘노동자’가 되기 위해 의자 공장에 취직하였다. 노동자가 자기 삶의 현장에서 고백하는 하느님 이야기가 곧 노동신학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노동신학은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체험을 써야 할뿐더러, 이제는 나의 노동을 통하여 나의 하느님을 탐색하자는 것이었다.
나중에 공장 생활을 접고서, 노동사목 활동가로서 살았던 3년은 나의 삶과 생각에 결정적인 잣대를 제공해 주었다. 돌아보면, 이현주 목사님 말마따나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서’ 온다는 것도 배웠다. 우리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어떤 사람과 말을 건네며 곁에 두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생애를 결정 짓는다. 내가 지금 참 사람과 만나고 있다면 그것이 지복(至福)이다. 내가 마음으로 무릎을 치며 감탄하고 있는 책이 참된 언어라면 그것이 진복(眞福)이다.
이현주 목사 (사진=한상봉)
빙앤두잉 영성학교를 시작하며
수년 전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던 ‘빙앤두잉 영성학교’의 강좌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글을 이현주 목사님이 시작하셨던 드림주식회사의 인터넷 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다. 바로 목사님의 댓글이 달렸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한 선생님. 저희는 시작할 때부터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명분 있는 일이라도 하지 말자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이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저희는 어떤 일에도 미리 회비를 받거나 돈을 거둔 다음에 일을 추진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사소한 문제로 보일 수 있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돈의 논리에 끌려 다니기 십상인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근본적 저항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간혹 어떤 모임을 안내하면서 ‘회비’가 얼마라고 밝히는 글이 올라오는데, 그때마다 올리신 분께 부탁드려 글을 삭제해 왔습니다. 우리 스승이신 예수님은 회비 얼마를 내어야 무엇을 해주겠다고 하실 분이 아니라고 봅니다. 돈을 아예 받지 말자는 게 아니라 받더라도 먼저 주고 나서 받자는 거지요. 받고 주는 게 아니라 주고서 받는 겁니다. 바로 이 순서를 지키는 데 자본주의 병폐를 극복할 대안이 있다고 저희는 봅니다.
온 세상이 연봉을 미리 정하고 일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예수님이나 바울로가 미리 연봉을 계약하고 일하지 않은 이상, 그분들을 본받겠다고 나선 저희에게는 세상의 당연한 상식에 저항하고 거역할 신성한 임무가 있지 않을까요 저희 뜻을 널리 헤아리시어 위의 안내글을 내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목사님과 그분의 생각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분의 말씀은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에게 상당히 커다란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차, 싶었고, 나는 곧 이렇게 댓글을 달고 안내문을 삭제하였다.
“아, 그러네요. 선생님께서 구체적인 화두 하나를 던져 주셨네요. 사실 관념 속에선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지만, 구체적인 일상에선 그게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때가 많지요.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하여 그분의 말씀과 의향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게시글은 내리겠습 니다.”
그리고 빙앤두잉 영성학교의 회비를 아예 없애 버렸다. ‘가톨릭 일꾼운동’을 창립한 도로시 데이 역시 만사에 값을 매기지도 않았으며 재단과 법인도 없이 하느님의 자비에 의존해서 수십 년 동안 노숙자들에게 밥을 먹이고 평화운동을 해왔다.
<참사람 되어> 역시 원하는 이들에게 거저 책을 보급하고, 드림주식회사도 마찬가지로 거저 책을 제공한다. ‘드림-주식회사(主式会社)’란 “주님 방식대로 모여서 드린다”는 뜻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돈’을 끼워 넣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돈 때문에 일을 그만두거나 문을 닫는 일이 없었다. 그 분들은 하느님 방식으로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成功)이란 사실 ‘공덕을 쌓는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권력과 부를 쌓거나, 자기만족을 위한 열성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열려 있는 애씀이 성공이며, 그렇게 성공은 하느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신화(神化)의 길이다. 성공에 대한 에머슨의 유명한 말이 빈말이 아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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