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고 싶다 48

좀 손해 보며 살아야 심간心間이 편하다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7 예술심리치료라는 걸 배우기 시작한 지 어느새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한 후배의 권유로 시작한 공부였는데, 예술치료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과 영 딴판인 세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의 시대나 지금이나 사회적 질병이 개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치료받아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는 숙원하던 1급 치료사 자격증도 얻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치료사로서 성장해야 할 책무가 따르는 일이기에 걱정도 함께 늘어났지만, 나의 의식이 성장하는 만큼 세상과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루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고 스스로 다독거린다. 예술치료 임상을 하다 보면, 유난히..

그이는 골목에서 기적을 기다렸다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6 사진출처=pixabay.com "아직 가을꽃들이 다 스러지지 않았는데, 밤새 이슬 맞아 추레해진 꽃나무 보기 싫다고 뽑아버리고 잘라버립니다. 사람의 마음씀씀이 이렇습니다. 어수선한 것보다, 지우고 치우고 난 정갈함과 단순함이 좋아 보이는 것도 병이지 싶습니다. 타고난 성정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나……, 그렇게 접어두고 삽니다. 제 집, 제 밭에 태어난 것들은, 그렇게 불운합니다. 가을이슬도 맞고 초겨울 서리도 맞고 찬 눈바람 속에서 하얗게 빛바래도록 살아가게 두어도 좋을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조바심 많은 사람이 가을 들자 치워버리려 합니다. 그 마음을 가만히 살피고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주변에 끼친 상처가 적지 않은 것 새삼스..

깨끗한 고통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5 살다 보면 참 다양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고 또한 헤어진다. 설 전에 양수리 사는 선혜 누님 댁에 놀러 갔다가, 그 막내오라버니를 만났다. 그 가족들은 불연(佛緣)이 깊어서 큰오빠도 스님이시고, 막내인 선혜 누님도 본래 스님이셨는데 예전에 다녀온 청도 운문사에서 5년여를 도반(道伴)들과 머물며 수행했다고 한다. 선혜 누님은 이젠 속가(俗家)에 살며 환경운동에도 동참하고 사람들의 몸을 돌보는 일이며 마 음의 짐도 덜어 주면서 살고 있다. 그분의 막내오빠는 제재소 사업도 하고, 지금은 목수 일을 배워 집 지으러 다니신다는데, 집이 경주였다.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나니, 불국사 앞 우리 아파트 인근 토함산 끝 자락, 말방(末方)이란 산..

날 머뭇거리게 하는 파랑, 그 하늘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4 며칠 전에 모진 바람이 불더니, 하늘이 파랗다. ‘파랑’이라는 발음이 방금 수면을 얼핏 스치며 다시 차오르는 새의 깃털 모양 가볍고 명징하게 들린다. 잉그리트 리델이 쓴 라는 책을 보면, 파랑은 ‘천상의 지식을 지닌 진리에 결속된 사람’의 특징을 갖는다고 씌어 있다. 파랑은 성모 마리아의 망토 빛깔이며, 교회는 그분을 ‘바다의 별’로 흠모한다. 창해(蒼海)에 뜬 별빛으로 밤하늘 역시 푸를 것이다. 12세기의 위대한 신비주의자이며 대수도원장이었던 빙엔의 힐데가르트 수녀는 라는 책에서 자신이 본 비전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빨갛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인간 형상을 한 사파이어 색의 아주 밝은 빛을 보았다.” 사파이어의 푸른 빛을 가..

날아라 사슴, 눈부신 가벼움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3 FM라디오에서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방송이 나오는 오후 여섯 시, 석굴암을 머리에 이고 있는 토함산 위로 펼쳐진 하늘이 온통 먹빛 품은 파랑이다. 깊디깊은 물빛이 이러할까 속 깊은 사람의 눈동자가 이런 빛일까 알 수 없으나 석굴암 범종 누각이 형체를 가늠하는 곳에서 등을 밝혀, 캄캄한 밤에는 그 불빛이 하늘에 홀로 떠 있는 것 같다. 경주에 자리 잡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은 토요일마다 경주박물관대학엘 간다. 교양 수준이기는 하지만 고고학, 역사학, 민속 학, 불교학, 건축학 등을 두루 배우고 있다. 경주 주변에 널려 있는 고적(古跡)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 석탑과 불상 등 불교미술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한 달에..

김남주 시인, 햇살이 되고 싶은 가을 아침에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2 경주에 와서 처음 아이를 보낸 곳은 어린이집이었다. 산골 살던 아이는 한 반에 30여 명을 웃도는 집단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엔 호기심에 잘 다니는가 싶더니, 어느 날부터 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어린이집 가기를 그만두었다. 산골에 살 때는 아이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놀면 그뿐이겠지만, 여기선 어디라도 다녀야 동무들이 생기고,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집단생활도 익혀야 한다. 결국 다시 찾아서 아이를 넣은 곳은 영지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다. 불국사 입구에서 울산 방향으로 10여 분 더 가다가 오른쪽으로 철도 건널목을 지나면 나타나는 곳이 영지(影池)다. 영지는 불국사 경내에 세워진 석가탑을 만들었던 백제의..

하느님은 영원한 젊음이다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1 경주로 이사 온 지 벌써 4개월째 되어 간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 안에 딸아이는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지금 여섯 살짜리 내 딸내미는 결혼하고 8년 만에 얻은 자식인데, 어쩔 수 없는 금지옥엽이었고, 그 아이가 경주에 와서 겪어야 했던 과정들 때문인지 요즘은 잠든 아이를 바라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 아이는 눈이 펑펑 내리던 한겨울에 전라도 땅 무주 산골로 초대되었다. 귀농한 지 1년 만에 얻은 아이는 추운 흙집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부터 몸으로 기어다니며 무릎에 흙을 묻히기 시작했다. 엄마 등에 업혀 산골 언덕바지를 오르고, 기어다니던 아이가 걷고 뛰면서 아늑한 광대정 산골은 어느새 아이들이 몰려다..

새로 산 묵은 차, 록스타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0 지난 5년 동안 화물차를 타고 다녔다. ‘포터 슈퍼캡 초장축’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상관없이 그 차는 좀더 많은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도록 화물칸을 길게 늘여서 만든 짐자동차였다. 시골에서 살자 하니, 화물차가 가장 요긴하였다. 퇴비를 실어 나르고, 이삿짐을 옮겨주고, 때로는 화물칸에 아이들도 잔뜩 태우고 다녔다. 자동차에 흠집이 생겨도 ‘이건 화물차니까!’하는 생각에 마음 쓰이지 않았다. 문짝은 한 번에 한 짝씩 농로에 받혀둔 경운기에 긁어먹었다. 그 화물차를 타고 어지간히 돌아다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강원도 홍천에서 전라도 해남, 강진까지 우리 국토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여름엔 영덕에서 폭우 속을 뚫고 집으로 돌아왔고, ..

그래야 사람이 깊어지겠다...그래야 사람이 착해지겠다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19 대학이란 곳에서 강사 생활을 한 학기 보내고, 여름방학을 맞았다. 선생이란 직업이 방학이란 게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시간강사에겐 방학이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첫째는 강의가 없으니 월급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방학이란 더운 여름이거나 추운 겨울이라는 점이다. 여름과 겨울은 피서를 위해서든 난방을 위해서든 비용이 많이 나가는 계절인 셈인데, 수입과 지출이 엇박자인 셈이다.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 농사짓기 좋은 계절이고, 농사짓기 좋은 계절이 놀러 가기도 좋은 계절이 아닌가. 따라서 기왕에 생활이 바뀌었으면, 방학을 잘 보내는 방법을 학생들처럼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 얼마 전에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 주..

교리보다 영성을, 종파보다 종교성을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18 사진출처=pixabay.com 이삿짐을 싸서 경주로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오늘 다시 전라도 무주 집에 다녀와야 했다. 자동차로 세 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이다. 무주에 닿으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엔 가랑비가 폭우로 변하여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길이 막혀서 멈춰 서 있는 동안엔 와이퍼를 멈추고 유리창에 줄줄 흐르는 빗물을 만끽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길손의 행로를 멈칫거리게 하지만, 농부들에겐 얼마나 반가운 단비인가. 올 들어 농사를 접고 이번엔 경주의 아파트로 이사하였지만, 농사짓던 자의 관성이 남았는지 은혜를 베푸는 하늘에 대고 ‘고맙다’ 손 흔들고 싶다. 비안개가 서린 산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