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고 싶다 48

너에게 기대면 죽음조차 가벼울까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7 사진출처=pixabay.com 이삼일 비가 오고 나더니 감자에 싹이 돋기 시작했다. 텃밭에 뿌린 래디쉬(홍무)는 일주일 만에 싹이 나고, 시금치, 쑥갓이 자라기 시작했다. 옥수수는 포트에 모종을 하였는데 조만간 본밭에 옮겨 심을 예정이다. 일주일 뒤에는 고추 모종을 밭에 심고 버팀목도 꽂아두어야 한다. 논에 만들어 놓은 못자리에선 볍씨가 싹을 틔워 비닐터널 안이 연초록빛을 띠고 있다. 만물이 생기를 얻고, 비 한 줄금 올 때마다 부쩍 키가 클 것이다. 가뭄 중간에 비가 긋고 나자, 며칠 전에는 오전에 고사리를 끊으러 숲에 들어갔다. 우선 임도 끝에 있는 논 뒷산을 헤집고 다녔는데, 소문대로 등성이 하나를 넘으니 온통 무덤이다. 사람들..

농부 하느님의 아들, 예수에게 배우다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6 얼마 전에 논자리에서 개구리들이 떼지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에 퍼뜩 잠이 깨는 듯하다. 이제 농사철이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설렘과 아울러 감당해 내야 할 노동으로 걱정이 앞선다. 1999년 가을에 귀농했는데, 나는 이를 입농(入農)이라 부른다. 입농이란,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농사를 이승에서 지어 보고자 하는 마음을 그렇게 지어 부른 것이다. 농사에 입문하는 초심자로서 경건하게 다소곳이 배우는 마음을 갖기 위함이다. 논밭을 갈면서 내 마음밭도 더불어 갈아 볼 요량에서 그렇게 지어 부른 것이다. 농사란 천지창조의 깊은 뜻을 새기는 원초적 노동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창세기」의 첫머리는 이렇게 장식되어 있다. “한 처..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 최민식을 생각하며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5 아내는 본래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그 노래만 듣는 버릇이 있다. 요즘에는 김윤아라는 가수가 발표한 (琉璃假面)이란 음반을 연일 듣고 있다. 예전에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야상곡〉이란 곡을 들었는데, 참 인상적이어서 기억해 두었다. 얼마 후에 집에 찾아왔던 손님이 갑작스레 들르게 되는 바람에 뭐 선물로 따로 준비한 것이 없다면서 자기가 듣던 음반을 하나 꺼내 놓았는데, 알고 보니 그 음반이어서 깜짝 놀랐다. 노래도 인연을 따라 가는 모양이다. 아니면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이 말했던 ‘동시성의 현 상’인지도 모른다. 의미상으로 일치하는 사건이 공간을 달리하여 발생하는 현상인데, 멀리 사는 형제가 교통사고가 ..

제 절을 마땅히 받으실 분, 우리들의 하느님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 영화 , "Killing Jesus" 스틸컷 억울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 한 토막이 내 삶을 깊숙이 흔들어댔던 때가 있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던 고등학생 때인데, 한 친구가 빌려준 책을 읽고 무척 혼란스런 한 시절을 건너갔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김성동이 쓴 였다. 법운(法雲)이라는 수행자가 어느 산사에 들었는데 그 절에는 지산(知山)이라는 파계승이 찾아와 잠시 머물렀다. 아마도 주지스님과 인연이 깊었던 스님일 텐데, 말 그대로 땡중이었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지만, 하루는 이 스님이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아서 목각으로 부처를 만들고 있었던 모양인데, 부처의 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법운 스님이 그 까닭을 묻자, 지산 ..

사십대 문턱에서 발음하는, 아버지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3 *이 글에서는 사십대 문턱이라 했으나, 지금 내 나이가 쉰여덟이니, 이 글을 쓴지 벌써 15년 이상은 된 듯하다. 이 글을 다시 편집하면서, 새삼 새록 그날의 적적함이 올라온다. -필자 사람마다 다른 것일까 아니면 나만 그런 것일까. 예술치료사라는 명함을 한 장 쥐고 있지만, 나 역시 모르겠다, 정작 사람의 마음은. 나이 사십이 되면 해명할 수 없는 슬픔이 이따금 밀려온다. 사람의 위로가 소용이 없는 것은 내가 그 슬픔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이유가 없지는 않을 텐데, 그저 먹먹할 때는 먹먹한 채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큰 길을 가다가 횡단보도에서 밀물처럼 때로 썰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을 볼 때, 아니면 등만 보..

연민, 조금은 연약해 보이는 사랑으로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2 시골에 살다 보니 거울을 쳐다볼 일이 별로 없다. 무주는 ‘청정지역’이라더니 공기가 하도 맑아 나를 빼곤 모두가 투명하다. 쨍하게 푸른 겨울 하늘을 보거나, 눈을 부시게 만드는 눈밭을 걷거나, 새끼 꿩들이 뒤뚱뒤뚱 푸르륵 지나가거나, 처마에 눈 녹은 물이 점점이 떨어지는 광경이 또렷하다. 어느 날 문득 눈이 침침해져서 한참을 갸웃거리다 생각한다. 아참, 안경알을 닦으니 금새 세상이 밝아진다. 그렇게 모든 맑은 것은 내 밖에 있고, 모든 침침한 구석은 내 안에 내 곁에 있음을 깨닫고는 순간 발끝을 오므려 본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기가 망설여진다. 문득 거울 본 지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에도 거울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마..

안녕하세요? 안심입니다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1 사진출처=pixabay.com 서울이란 도시에 안녕(安寧)을 고하고, 전라도 땅 무주 산골에 자리 잡은 지 1년하고도 몇 달이 더 지나갔다. 그 사이 겨울을 두 번 넘겼는데, 내내 농사짓느라 바쁘고, 겨울엔 땔감 장만에 마음을 쓰며 살았다. 이곳에 자리 잡은 뒤 선배, 후배, 지인들이 한사코 묻는 것은, 살만하냐는 것이다. 대답은 물론 살만하다는 것. 그들이 나의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것은 따숩고 정다운 일이겠거니와, 나처럼 시골살림을 잘 모르는 처지에 막연히 불편하고 힘들게 살지 않겠는가, 하는 추측에서 안부를 묻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엔 늘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 일과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람은 어디에 살든지 무엇인가를 생산..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글머리 그동안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길 위에 잔정을 흩뿌리고 무주로, 경주로 거처를 옮기며 살다 족히 십년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평생 내가 갈망하던 그분이 오기로 한 그 장소를 알지 못했다. 마침내 오고야 말 그 자리를 잊어버렸다.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안간힘이 여행이 되고, 또 다시 여비를 벌기 위해 서울에 머물러 있다. 나는 시방 글을 써서 밥을 벌고 있는데, 글발이 나가지 않을 때마다 회귀본능 처럼 참고서처럼 들여다보는 시인들이 있다. 김수영, 이성복, 황지우, 도종환이다. 이 시간에는 황지우를 통해 나를 만나고 있다. 황지우는 에서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