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6
얼마 전에 논자리에서 개구리들이 떼지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에 퍼뜩 잠이 깨는 듯하다. 이제 농사철이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설렘과 아울러 감당해 내야 할 노동으로 걱정이 앞선다.
1999년 가을에 귀농했는데, 나는 이를 입농(入農)이라 부른다. 입농이란,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농사를 이승에서 지어 보고자 하는 마음을 그렇게 지어 부른 것이다. 농사에 입문하는 초심자로서 경건하게 다소곳이 배우는 마음을 갖기 위함이다. 논밭을 갈면서 내 마음밭도 더불어 갈아 볼 요량에서 그렇게 지어 부른 것이다. 농사란 천지창조의 깊은 뜻을 새기는 원초적 노동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창세기」의 첫머리는 이렇게 장식되어 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그 하늘 아래 그 땅 위에 물을 내시고, 해와 달과 별을 박아 두시고, 온갖 동식물과 사람을 창조하셨다. 처음부터 땅에 푸른 움이 돋아났는데, 낟알을 내는 온갖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돋아났다. 사람에겐 이 작물들을 양식으로 삼으라는 명령도 내려졌다. 이 모든 걸 하느님은 흡족해하셨다.
처음에 사람은 자연스레 돋아난 곡식과 과일을 얻어먹었으나, 점차 거두어들인 작물의 씨를 이듬해 다시 뿌려서 더 큰 수확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농사라면, 농사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이들이 누리는 원초적 은총이다. 그리고 이런 기쁨을 얻어 누리기 위해선 당연히 수고로운 노동이 요구되었다.
성경에선 인간의 첫 범죄 이후에 받은 벌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의향대로라면 아마도 노동이 깨어진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치유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동은 자연과 더불어 농사짓는 가운데 가장 적절하게 효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사진출처=pixabay.com
이마에 땀을 흘려 그대의 빵을 얻어라
러시아의 작가였던 레오 톨스토이가 말년에 농사에 관심을 집중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귀족 출신의 대토지 소유자로서 어찌 몸소 농사짓는 일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돈 강 유역에 살던 테모페이 본다료프라는 농부였다. 그는 “그대 이마에서 땀을 흘려야 그대의 빵을 얻으리라”라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근면과 무위도식-농민의 승리>라는 책을 썼다.
"하느님이 사람에게 시킨 일을 요약하면 두 가지다. 즉 남자는 땀을 흘려 빵을 생산하고, 여자는 고통을 치러 아기를 낳으라는 것이다. 여자가 맡은 일은 변동이 없었다. 황후도 아기를 낳으려면 고통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남자들이 하는 일에는 불합리한 변화가 생겼다.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로 나누어졌으며, 모든 일 중에 가장 근본적인 일에 해당하는 농업을 오히려 멸시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돈으로 빵을 산다. 돈만 있으면 된다. 그 결과, 하느님이 당부한 일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다 쓰게 되었다. 들판의 짐승이나 하늘을 나는 새나 물속의 고기들이나 하느님이 시킨 대로 살고 있는데, 교육받고 지식이 있다는 인간만이 사명을 회피하고 있다. …… 노동을 외면하고 입으로만 떠드는 사랑의 설교는 위선이나 다름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짚신을 신고 매일매일 호미를 손에 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의무가 생활의 중심이자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민병산, 『똘스또이』, 창작과비평사, 1985)
신앙과 삶을 통합시키고 싶었던 톨스토이는 그 후로 자신이 철저한 농부가 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다가 객사하였는데, 유언에 따르면, 자기 소유 토지를 인근의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 주었다고 한다. 물론 농민들에겐 10년 안에 그 땅을 되팔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고 말이다. 자신의 저서에 붙은, 그래서 그 가족에게 엄청난 부를 주었던 인세를 포기하고, 누구든지 자신의 책을 마음대로 번역해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농부의 마음으로 돌아가면서 톨스토이가 이처럼 삶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이루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대답은 쉽지 않다. 다만 짐작하건대 자기 삶에 ‘돈’을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소유를 떠나 흙에 조응함으로써 정직하게 천지만물을 마주하고, 하느님 앞에 떳떳이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의 노 동을 통하여 자신을 정화하고 거룩한 영혼을 입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간단없이 하루의 땀으로 하루의 양식을 얻고, 제 힘으로 옷을 지어 입고, 손수 집을 지어 살면서, 인간이 딛고 사는 땅과 하늘의 기운을 온전하게 빨아들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천지간(天地間)의 미물조차 자신의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하듯이, 그 존재 자체가 산천을 제단으로 삼아 하루의 노고를 봉헌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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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농부의 잠이여
사람이 농부(農夫, 農婦)로 산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합당하게 노동과 일상을 재조직하는 것을 뜻한다. 경칩(驚蟄)이 오면 왁자지껄한 개구리 떼 울음소리에 놀라 씨 뿌릴 날을 예감하듯이 목련꽃이 피기 시작하면 고구마 종자를 묻고, 배롱나무에 꽃이 피면 고추모종을 본밭에 옮겨 심고, 보랏빛 칡꽃이 피면 김장배추와 무를 파종한다. 비가 오면 서둘러야 할 일이 따로 있고, 눈이 오기 전에 서둘러야 할 일이 따로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땔감을 하고, 비가 오기 전에 물꼬를 보아야 한다. 김남주 시인은 「농부의 밤」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우두둑 우두두두둑
느닷없이 한밤중에 쏘내기 쏟아지고 잠귀 밝은 할머니 젤 먼저 들어 소리친다
비 온다 아그들아 내다봐라
웃통바람 애비는 가래 들고 들로
속곳바람 에미는 멍석 말아 헛간으로
눈 비비고 손주 놈은 소 몰아 마구간으로
아, 여름밤 쏘내기여 고단한 농부의 잠이여."
자연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마치 신랑이 언제 올지 몰라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밤을 지새우는 신부처럼, 섬세한 감수성으로 자연의 변화를 주시하고 예측해야 낭패를 면할 수 있는 게 또한 농부의 삶이다. 예수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곧 닥치리라는 사실을 안다”(마르 3, 28)고 했다.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대뜸 비가 올 것을 예측하고, 남풍이 불어오면 즉시 날씨가 곧 무더워짐을 내다본다고 했다.
예로부터 농부들은 마을 당산 나뭇 잎이 위아래로 고르게 일시에 피면 그해 모내기가 순조롭고, 잎이 일시에 피지 않으면 가뭄이나 들쭉날쭉한 기후로 모내기에 애를 먹을 것이라 했다. 봄에 갈대를 살펴서 잎에 주름이 한 가닥이면 한 번 홍수가 나고, 두 가닥이면 두 번 홍수가 난다고도 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는 제멋대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세심한 눈길로 응시하면 변화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고, 순리에 따르면 화(禍)가 없다.
아스팔트 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보고 봄이 온 것을 알고, 도로 위에 떨어져 쌓이는 가로수 은행잎을 보고서야 가을빛이 깊어진 것을 안다는 말은 자못 운치 있는 도회지 사람들의 표정인지는 몰라도, 그 사람의 구체적 일상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불행한 표징이다. 추워지면 히터를 틀고, 더워지면 에어컨에 의지하는 도시는 계절을 잃어버렸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절이 그다지 의미롭지 않다. 다만 철따라 유행하는 패션을 창조해야 하는 업계와 광고주의 필요에 응답할 뿐이다.
더위를 견디며 노동하고, 이따금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는 농부의 삶은 고단하면서 한가롭다. 눈밭을 더듬어 삭정이를 고르고, 작대기로 중심을 잡아가며 위태롭게 땔감을 지게에 지고 나르는 산촌의 겨울은 그이가 숨을 몰아 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입김마냥 적막하지만 아름답다. 도시에선 추위와 더위를 이기려고 난방비와 냉방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지만, 시골에선 그의 노동이 일상을 따뜻한 구들로 인도하고, 무상으로 불어주시는 바람과 나무 그늘은 더운 등짝을 식혀 준다.
돈을 매개로 하지 않고도 지천으로 피어 있는 진노랑빛 산국(山菊)은 말려 두었다가 차를 달이면 손님맞이에 그만이다. 산색이 화려해지는 가을엔 여름내 고단했던 노동의 대가만큼이나 풍성한 결실이 있다. 그의 노동이 일상에 바로 연결되고, 그의 일상이 노동과 분리되지 않는 게 농부의 삶이고 보면, 농부는 자못 통합된 삶을 산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창세기」에선 하느님께서 엿샛날까지 일하시고 이렛날엔 쉬셨다고 한다. 이는 하루의 휴식을 위해 엿새 동안 노동하였다는 뜻도 될 텐데, 실상 농부의 삶은 노동과 휴식이 그다지 선명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생각 없이 밭에서 돌을 골라내다 보면, 집에서 들고났던 복잡하게 뒤엉켰던 잡념들이 말끔히 사라진다. 그렇다면 노동이 곧 자기정화 과정인 동시에 영적 휴식이 되지 않는가. 노동이 갖는 치유력을 믿는다면 휴식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분명히 말하자면 노동 때문에 휴식이 휴식일 수 있음 또한 기억해야 한다. 비탈밭에서 감자 이랑을 만들다가, 잠깐 쉬면서 산길을 거슬러 오르는 이웃을 내려다보면서, 어이 어이, 소리 지르면 온 산이 어이 어이, 응답하고 이 내 그 사람의 정다운 음성이 뒤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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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에서 쉬다
내가 사는 산촌엔 겨우 여섯 가구가 올망졸망 살고 있기에 사람 하나 하나가 귀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무상으로 주시는 햇빛과 바람과 물과 미물들과 더불어 흙을 일구고 먹을 것을 구한다. 밤이면 그분이 밝히신 별을 보거나, 산등성이에 그림자 짙은 낙엽송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제 몸을 드러내는 초승달에 감탄한다. 시인 신석정은 “들판에 서서 별을 바라보는 것은 거룩한 나의 과업”이라고 하였는데, 산촌에서 농부들은 밤을 밤인 채로 받아들이고 낮은 낮인 채로 남겨둔다.
우리 마을엔 보안등이 마을 입구에 딱 한 군데 있는데, 저녁마다 그 불을 밝힐 것인지 여부를 두고 주민들 사이에 갑론을박한 적이 있었다. 결국 밤길은 손전등으로 밝히면 될 텐데, 구태여 밤마다 등을 켜서 산천초목이 영 쉽게 잠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게 온당치 못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또한 보안등을 켜면 눈이 부셔서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별밤은 여름에 제일 장관을 이루는데, 쏟아져 내릴 듯이 검은 하늘에서 명멸하는 별은 태초의 그 하늘을 가늠하게 만들어 준다.
노동이 자기 정화의 과정인 동시에 현실적 삶을 지탱해 주는 실천이라면, 휴식의 진면목은 아무래도 관상(觀想)의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산촌에 사는 농부들에게 가장 분명하게 휴식을 가져오는 것은 언뜻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장날 읍내에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면 같은 겨울철의 휴식이다. 인적이 드문 산촌에 사는 사람에게 장날은 사람이 북적인다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을 흥분시킨다. 아랫마을 사는 어르신들은 오일장에 나가실 때마다 양복을 차려입는 분도 계신다. 이참에 단골로 정해 두게 마련인 슈퍼에 앉아 술 한 잔 드시고 다른 동네 사람들과 소식도 주고받는다. 농협과 농약상에선 온갖 농사 정보가 나누어진다.
임길택 시인은 <그리움 1>이란 시에서 일상에서 문득 홀가분하게 이탈한 자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버스삯만 남겨 놓고 주머니를 털어 사 넣은
밀가루 한 봉지, 설탕 한 봉지 빨랫비누 한 장, 편지봉투 한 묶음 어쩌다 책도 한 권
바랑에 집어넣고 저녁노을 마주하며 산길 돌아오는데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그리움인 줄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관상이란 낯익은 것들을 낯선 눈으로 다시 보는 데서 발생한다. 이를 위해 때때로 우린 일상을 벗어나 있을 필요가 있는데,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도시에 살 때 특별하지 않았던 사소한 사물마저도 시골에 와서 살다보면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물이 예전에 내가 생각하던 그 사물의 이미지는 아닌 게 분명하다. 제 몸으로 집을 짓고 살림을 돌보다 보면, 정작 요긴한 물건과 내 허영심이 낳은 군더더기에 불과한 물건이 구분되지 않을까. 정작 필요한 몇 가지는 기실 볼품없지만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에 그쯤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장날은 내가 도시에 남겨두고 온 많은 혼란스러운 것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다가, 이윽고 적절하게 정리되는 날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본격적인 관상의 때는 하우스 시설 재배를 하지 않는 우리 산촌에선 농한기에 해당하는 겨울이다. 세 계절을 일하고 그 수고한 만큼의 넉넉함으로 겨울을 맞는다. 그 분위기를 아는 데는 임길택의 <아궁이 앞에서>를 읽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찾아오는 이 없이 날은 저물고 아궁이 앞에 앉아
타들어 가는 불길만 바라봅니다.
검은 나무 붉은 불 만드느라
조금씩 조금씩 제 몸뚱이 줄여갑니다.
불길 잦아들면 나뭇개비 올리고
또 잦아들면 다시 얹으며
언제까지라도 그 불길 살아 있게만 하고 싶습니다.
벌써 저녁 별들 돋아나고 등 뒤론 어둠 가득하건만
저녁 지을 생각 잊은 지 오래입니다.
사위어든 재 밑에 숨어든 불덩이들 발 앞으로 끌어내 손 덥혀서는
시린 무릎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스님은 어둠 속으로 묻혀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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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농촌, 포기하는 농촌사목
그 관상의 이면에서 들리는 음성이 있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이 발언은 예수의 입에 담겨 전해졌다. 성경 문맥을 떠나서 예수의 이 발언은 세상의 모든 농부들에게 복음이 되기에 충분하다. 농부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을 닮는다는 것인데, 어찌 그 마음이 기뻐 뛸 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늘 다른 이정표를 보여 준다.
예전에 농사는 양반들의 필요에 따라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반열 가운데 앞머리에 두어졌으나, ‘농투성이’라는 말이 지시하듯이 문명 개화의 속도에 따라서 계속 주변부로,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편의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최근의 추세에 따르자면 상사공농(商士工農)이란 표현이 더 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요즘은 장사꾼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 아닌가. 정치도 장사에 이바지하지 못하면 인기를 얻을 수 없고, 학자들은 지식을 팔아서 장사를 돕는 데 부끄러움이 없고, 공장 노동자는 장사할 상품을 생산하고, 농부들 역시 수익성이 높은 농작물을 생산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게다가 농부들은 투기 작물을 재배하다가 실패하여 빚더미에 오르거나,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에 살면서도 농약 중독으로 몸을 망가뜨린다. 파종기에는 그야말로 해 뜨기 전에 밭에 나가서 날이 어둑해져야 괭이에 묻은 흙을 떨어내고 집에 돌아온다. 그만큼 고달픈 노동 탓인지 농부들은 대개 나이보다 늙어 보인다. 피부가 상하고 거친 손마디가 마른 나무껍질 같다.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 고생인가. 그래서 인지(人智)가 깨이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도회지로 유학가고, 일가족이 아예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밥벌이를 찾는다.
실상 교회마저도 농촌 사목을 포기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특수한 사례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사는 무주 성당엔 말 그대로 농사를 짓는 신자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개 장터에서 물건을 팔거나 리조트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파견 나온 공무원 출신 신자들인 경우가 많다. 무주 전체에 성당은 하나이고, 공소가 더러 있을 뿐이다. 이른바 농사꾼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원래 신자가 적은 탓일 수도 있겠고, 이젠 그마저도 대개 노인들인 탓에 자녀들이 도시에 나가 사는 경우에, 운송수단이 없기 때문에 자동차로도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성당이나 공소를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어쩌 면 그들은 점차 교회 안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잊 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봉성체를 모시러 사제가 그들의 허 름한 거처를 찾지 않는다면 그들은 성사聖事 없이 외롭게 임종을 맞이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느님 없이 교회 없이.
설사 신자들 가운데 농부들이 많다고 해도 사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몇몇 평신도 선교사들이 파견된 공소를 제외한다면, 신자들은 제대로 된 신앙의식과 교리교육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으며, 그나마도 농부들의 심성에 적절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농촌 신자들, 특히 어느 정도 나이 드신 분들에게 교리문답식의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 내용을 ‘믿을 교리’라는 명목으로 들이미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교구청이나 읍내 성당에 앉아서 몇몇 사제와 전문가들이 책상물림으로 작성한 주보의 내용도 농촌 신자들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리이며 고역이기까지 하다. 농촌 지역의 교구 역시 농부들 보다는 소도시의 샐러리맨이나 주부들의 취향에 맞게 주보를 작성하며, 농부들의 일상과 체험이 배어 있는 글을 준비하지는 않는다. 읽어도 좋고 못 읽어도 할 수 없다는 식이다.
만일 교회가 아직도 농부들을 교회 안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상정한다면, 도농 직거래나 농촌 살리기 운동에 앞서 농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문화와 일상, 그들의 노동과 휴식 속에서 하느님이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건네기를 원하시는지 깨달아야 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농부들의 가난한 처지를 헤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영혼을 구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은가. 아니 교회가 마음으로 바닥에서 농부들의 정서에 침몰할 수 있다면 그 순간 구원받는 것은 농부들이 아니라 교회인지도 모른다.
예수가 전한 복음은 농부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개신교회가 도시-상업자본과 더불어 성장했다면, 가톨릭교회는 지난 이천년 동안 농촌 공동체를 중심으로 성장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미 흙과 친숙했던 교회, 흙 냄새 풍기는 영적 자산을 쌓아 왔던 교회가 농부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모두에게 불행이다. 예수 자신이 농부인 양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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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이며 농부이신 예수
예수가 육적으로 요셉의 아들이라서 노동자였다면, 영적으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서 마찬가지로 농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요한복음에서처럼 스스로 아버지가 농부라고 고백했던 예수는 아버지처럼 생명을 심고 보살피고 거두는 거룩한 천직(天職)을 마다할 것 같지 않다. 그분은 농사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탓일까, 그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농사짓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자 하였다.
‘씨뿌리는 이의 비유’에서 예수는 농부였다. 어느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갔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쪼아 먹었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 햇볕에 말라죽었으며, 어떤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몇몇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 져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수확을 냈다고 한다(마르 4,1-9).
이 이야기는 어느 멍청한 농부의 한심한 파종을 묘사하는 게 아니다. 팔레스타인에선 건기(乾期)가 대략 4월에서 10월까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 밭 가운데로 사람들이 지나다녀 길이 생길 수 있었고 돌밭이 되거나 잡풀이 자랄 수도 있었다. 그러나 11월에 우기(雨期)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드는데 이때 내리는 비의 양이 엄청나 어제 사막이었던 곳에 오늘 갑자기 강이 흐를 정도 라고 한다. 따라서 좋은 땅과 나쁜 땅을 미리 가려낸다는 것은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여기저기 씨를 뿌려 두는 것이 더 유용했을 것이다. 그러면 박토가 옥토 되고 옥토가 박토 되는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곳에서도 좋은 소출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여기저기 심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사마리아 땅에선 야곱의 우물가에서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느 여인과 몇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그 땅이 옥토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이처럼 예수는 농부들의 사정을 잘 알고 적절한 비유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였던 것이다.
그 하느님 나라는 나무처럼, 여느 작물들처럼 하루아침에 결실을 맺는 게 아니다. 농사는 절기마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땅에 거름을 내야 할 때가 있으면 씨를 뿌릴 때가 있고, 물을 줘야 할 때가 있으면 김을 매야 할 때가 있고, 지주를 세워서 묶어 줘야 할 작물이 있으면 튼실한 줄기가 뻗도록 가지를 쳐야 할 작물이 있고, 나락을 거둘 때가 있으면 참깨를 털어야 할 때도 있다. 농사란 마음이 조급하면 망치는 법이어서 배추처럼 거름을 많이 내서 좋은 작물도 있고, 거름이 적어야 결실이 많은 콩과 같은 작물도 있다. 농사는 부지런하되 서두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새벽마다 빠짐없이 밭둑을 걷노라면, 그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작물이 자란다는 말도 있다. 섬세하게 관심을 가지면서 무리하게 욕심을 내지 않아야 한다. 한번 농사를 망치면 일 년이 헛수고이고 한번 몸을 망치면 평생 농사를 망친다.
예수는 농사의 과정을 익히 알고 있기에,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할 줄도 알았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할까, 혹은 무슨 비유로 그것을 표현할까, 겨자씨앗과 같습니다. 그것이 땅에 뿌려지면 자라서 어떤 푸성귀보다도 크게 되어 큰 가지를 뻗칩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습니다”(마르 4,30-32).
눈에 뵈지 않는 땅속에서도 겨우내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는 농부는 좋은 농사꾼이 될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중생의 가슴속 응어리진 상처를 알아채고 어루만져 줄 수 있을 때 그만큼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온다. 차별 없이 서두름 없이 만인 만사에 모든 것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교회는 희망이 없다. 예수가 농부의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농부의 청사진으로 하느님 나라를 일구었듯이 어쩜 우리 교회는 농촌사목을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농부의 마음을 회복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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