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고 싶다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 최민식을 생각하며

모든 2 2020. 7. 4. 10:22

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5

 

아내는 본래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그 노래만 듣는 버릇이 있다. 요즘에는 김윤아라는 가수가 발표한 <유리가면>(琉璃假面)이란 음반을 연일 듣고 있다. 예전에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야상곡〉이란 곡을 들었는데, 참 인상적이어서 기억해 두었다. 얼마 후에 집에 찾아왔던 손님이 갑작스레 들르게 되는 바람에 뭐 선물로 따로 준비한 것이 없다면서 자기가 듣던 음반을 하나 꺼내 놓았는데, 알고 보니 그 음반이어서 깜짝 놀랐다.

노래도 인연을 따라 가는 모양이다. 아니면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이 말했던 ‘동시성의 현 상’인지도 모른다. 의미상으로 일치하는 사건이 공간을 달리하여 발생하는 현상인데, 멀리 사는 형제가 교통사고가 났던 같은 시각에 우리 집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컵이 갑자기 미끄러져 떨어지거나, 아끼던 화초에 처음으로 꽃망울이 터지는 순간에 누이동생이 첫아기를 낳았다거나 하는 현상이다.

고통 받은 사람들에게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

김윤아의 음반 가운데, 아내는 특히 〈봄이 오면〉이란 노래를 즐겨 들었다. 6번째 트랙에 담긴 것은 좀 애잔한 느낌을 주어서, 아내는 ‘희망사항’을 노래한 것 같다고 했고, 변주곡인 것 같은 9번째 트랙의 같은 노래는 경쾌한 리듬에 담아서 마음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바구니엔 앵두와 풀꽃 가득 담아
하얗고 붉은 향기 가득,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연두 빛 고운 숲속으로
어리고 단
비 마시러, 봄 맞으러 가야지
풀 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묻고
마음엔 한껏 꽃 피워, 봄 맞으러 가야지.

봄바람 부는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다정한 당신을 가만히 안으면
마음엔 온통 봄이,
봄이 흐드러지고 들녘은 활짝 피어나네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봄이 오면"


When spring comes (Guitar ver.) (봄이 오면 (Guitar ver.))

www.youtube.com/watch?v=41we7KJe39w&feature=youtu.be

 

봄이 오면, 풀 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묻고,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그리던 임과 함께 봄 맞으러 가야겠다는 노랫말은 화려한 꿈이 아니라서 좋다. 그는 자기 삶을 그늘지게 했던 과거에 대하여 분노하는 거친 호흡이 없다. 그 새까만 앙금마저도 생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배어 나온다.

그 성숙함만큼 ‘임’으로 상징되는 다가올 미래마저도 흥분을 동반하지 않는다. 잔잔한 희망사항이며, 좌절되어도 슬픔이 더해질 뿐, 생의 한 부분으로 다시 끌어안고 일상을 계속할 것처럼 느껴진다. 생의 희망을 버릴 수 없지만, 생의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많이 고통 받은 사람들에게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 고난을 담담하게 지고 살았던 바닥 민중의 슬기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봄이 오면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뭔가 달라지는 게 있다는 것. 그것은 삶을 둘러싼 우연적 환경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우연적인 물리적 환경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경험이다. 개천에 서 용 난다는 말 자체가 옛말이고,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내면적 차원에서 사람은 이른바 ‘진화’하는 것이다.

돈 안 되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현실 사이

얼마 전 서울에서 예술심리치료사 자격시험을 보았다. 마지막 일주일 동안 아내의 양해를 얻고 무주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면서 공부했지만, 정작 시험지를 앞에 두고,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생각했다. 어렵게 기억을 살려 답안지를 메우고 나왔다. 구로에 사는 막내누나가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집에 들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나는 비교적 마음이 담담한 모양이지만, 올해 초에 둘째형이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라, 다들 불안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날 밤 둘째 누나네 집에서 잠을 자기로 했는데, 이번 참에 시 험을 끝낸 기념으로 그 집에서 비디오를 두 편이나 보았다. 시골 우리 집은 텔레비전도 없고 물론 비디오도 없다. 최민식이 주연으로 나오는 〈꽃피는 봄이 오면〉과 〈올드 보이〉였다.

개인적 취향으로 나는 남자 배우 가운데 한석규와 최민식을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그 사람의 진면목이야 알 수 없지만, 간혹 인터뷰 하는 걸 보거나 영화 속에서 오는 느낌으로 '혈족'(血族)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다. 한석규가 비교적 부드럽고 지적인 강렬함 또는 편안함으로 온다면, 최민식에게선 어쩔 수 없는 생의 그림자를 안고 비틀거리며 살지만, 본연의 인간성이 현실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인상을 받는다. 영화에서 그동안 최민식이 맡았던 역할은 비슷한 이미지다. 현실에서 실패하고, 그러나 끝내 망가지지 않는 인간성을 보여준다.

처음 그를 본 것은 MBC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였다. 아참, 그때 한석규의 친구로 나왔지. 그리고 〈파이란〉.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그녀는 날 사랑이라 한다”는 기막힌 문구가 박힌 포스터를 잊지 못한다. 최민식과 위장 결혼을 하고 시골 세탁소에서 일하던 파이란이란 중국 여성은 뒷골목 양아치인 최민식에게 편지를 남겼다. “당신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강재 씨……,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현실은 양아치와 이주노동자에게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겨울에 ‘영적으로’ 사랑하여 경계를 헐어냈다.

영화 "파이란" 송해성 감독, 2001


불우한 화가 장승업, 그리고 15년 동안 이유를 모르고 갇혀 살다가 복수를 다짐하는 올드 보이, 그들은 절망 끝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삶은 어설프지만, 자신(Self)은 자기(Ego)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른바 돈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음악(예술)만을 생각하던 청년이 도시에서 사랑을 잃고 광산촌 중학교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겨울 한때를 그리는 영화가 〈꽃피는 봄이 오면〉이다.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밴드부’라 부르고 저들은 ‘관현악단’이라 부른다. 돈 안 되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현실 사이를 흰 눈발처럼 오락가락하면서 고민하는 사이에, 그래도 봄은 오고 사랑이 회복된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바탕에 깔 고 있는 영화들은 그래서 아름답다. 삶이 구차해도 희망은 구제된다. 혹시 김윤아의 〈봄이 오면〉이란 노래와 최민식의 〈꽃피는 봄이 오면〉 이란 영화는 사전에 서로 입을 맞추었던 것일까

김윤아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봄바람 부는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다정한 당신을 가만히 안으 면, 마음엔 온통 봄이, 봄이 흐드러지고 들녘은 활짝 피어나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