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희망이란 것/이규리

모든 2 2018. 4. 13. 20:47



희망이란 것/이규리

 

레옥잠은 팔뚝에 공기주머니 하나 차고 있다

탁한 물에서도 살 수 있는 건

공기주머니 속에 든 희망 때문이다

가볍게 떠 있던 물 속 시간들

희망이 꼭 미래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팔뚝에 희망 하나 차고 다닌 적 있다

잊을 수 없는 일마저, 건널 수 없는 세상마저

그 속에 밀어넣었던 적 있다

그런 희망이 텅 빈 주머니란 걸

 

언제라도 터뜨려 질 수 있는 눈물이란 걸

나는 몰랐을까

부레옥잠이 떠 있는 건

희망 때문이 아니다

속을 다 비워낸 가벼움 때문이 아니다

잎잎마다 앉은 한 채씩의 승가람

그 자리는 서늘해서 누구나

바람 소릴 노래처럼 안고 가는데

옥잠이란 이름에 부레 하나 더 얹은

쓸쓸한 감투가 그의 이름이듯이

 

-시집 『앤디 워홀의 생각』(세계사,2004)-



  1980년대 ‘사이버펑크’라는 새로운 과학소설 장르의 선구자로 불렸던 캐나다 소설가 윌리엄 깁슨이 2003년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 가운데 ‘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not very evenly distributed.’란 대목이 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안철수 교수가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연설에서 인용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는 정치 신인의 정치적 수사라고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미 와있는 미래’란 무엇인가. 인류의 지적 능력은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통해 문명을 일으켜왔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이었다. 과학기술의 축적은 정치·사회·문화 활동을 더 나은 단계로 안내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깁슨은 그러한 관점에서 미래의 희망을 내다보았고 21세기 문명의 화두로 제4차 산업혁명을 예측하였다. 하지만 안철수가 말한 미래에는 숱한 좌절을 겪은 뒤의 정치적 희망 같은 것도 함의하고 있다.

 

  박노해 시인의 ‘아직과 이미 사이’란 시도 이와 많이 닮았다.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라며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라며 시를 끝맺었다.

 

  ‘희망이 꼭 미래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부레 같은 공기주머니 속에 든 희망 하나씩은 차고 다녔으리라.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일마저, 건널 수 없는 세상마저 그 속에 밀어넣었’다가, ‘그런 희망이 텅 빈 주머니란 걸’ ‘언제라도 터뜨려질 수 있는 눈물이란 걸’ 깨달을 뿐이었다. 한편에선 ‘세상이 다 그런데 뭘’ ‘그놈이 그놈이겠지’란 말들 속에 사람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지고 내 희망의 주머니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상식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사람으로 희망을 듣는다. 버니 샌더스가 뿌린 정치혁명의 밀알을 이 땅에서 결실 맺고, 이미 와있는 미래를 널리 퍼뜨릴 그런 사람 하나 눈부시게 와주기를 희망한다. ‘잎잎마다 앉은 한 채씩의 승가람’이 쓸쓸하지만은 않기를 소망한다. 촛불민심이 만능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 민심을 잘 받들어 모든 낡은 질서를 청산하고 혁파해주기를 바란다. 변화의 열쇠는 우리들 한 사람마다에 있다.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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