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기자/김정환
그들은 닉슨을 탄핵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정의의 사도라고 불렀다.
언론의 권력은 언론을 자신의 입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권력이었으므로 두 기자는 영웅 대접을 받고
닉슨 일가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투사가 된 감격을 누렸다.
그것은 당연하고 또 자랑스런 일이다. 미국은 전세계
언론의 민주주의의 메카였다.
하지만 그렇다. 폭로는 배설의 허기진 아구에
그리고 일관성은 목표에 가깝다.
대통령을 쫓아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흥분의 도가니는 식고 그 폭로 정신은
육체를 쾌락으로 강간하고 고문하고 신격화하는
헐리우드 연예정보지 기자와 점심을 같이 한다.
당연하게 시시덕거리며
킬킬대며 아주 기분좋게 미쳐가면서.
요는, 끊임없이 실패하는 사랑만이 볼세비키적이다.
실패가 운명적인, 그러므로 더 나은
운명의 완성을 위한 권력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
영웅적인 두 기자는 거대한 허기 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화려하게 산발한 비명소리로 남는다.
-『김정환 시집 1980~1999』 (이론과 실천, 1999)-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하야한 사건의 계기가 되었던 스캔들이다. 탄핵소추를 받은 제37대 대통령 닉슨은 1974년 8월 9일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격 사임했다. 그는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서 탄핵결의안이 가결된 직후에 포드 부통령에게 자신의 특사를 보장받고 사임 형식을 택했다. 두고두고 미 국민 전체에게 치욕을 안긴 비통한 국치의 날이다. 게이트라는 용어도 이 워터게이트 사건이 시작된 워터게이트 빌딩에서 따온 것으로 현재 정치권의 대형 비리나 스캔들을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
워터게이트호텔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도청사건이 발생한 것은 1972년 6월 17일이다. 전직 FBI, CIA 간부요원들의 지휘아래 정보원들이 배관공으로 위장해 도청장치를 설치했고, 이 장비가 호텔경비원에게 발각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사람들은 닉슨이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연루돼 곧바로 하야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가 실제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약 2년2개월 뒤였다. 닉슨은 사건 은폐를 위한 공작에 매달렸으나 결국 증거로 제출된 테이프에서 거짓말이 들통 났다. 닉슨은 일관되게 워터게이트사건과 사건은폐 공작혐의를 부인했으나 테이프에는 CIA국장에게 직접 FBI 수사를 방해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낱낱이 녹음돼 있었던 것이다.
닉슨은 검찰 수사에 직면해서도 ‘대통령 면책 특권’을 내세우며 검찰 및 의회와 힘겨루기를 거듭하면서 끝까지 버티려 했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탄핵은 하원 전체 과반수 찬성 뒤 상원에서 재적의원 3분의 2의 유죄 판정을 받아야 한다.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었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들도 가세해 탄핵안 상원 통과가 확실시되자 그때서야 닉슨은 손을 들고 말았다. 이 사건은 대선 승리를 위해 도청이라는 비도덕적인 수단을 쓴 점도 문제였지만, 사건의 중심에 있던 닉슨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거짓과 무리수를 감행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미국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사건이기는 했으나 전문가들은 의회와 사법부, 그리고 언론이 직분을 다해 민주주의를 수호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처음 대수롭지 않은 절도사건을 취재하다가 우연히 인지한 이 음모를 닉슨정부의 갖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파헤쳐 큰 공헌을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10월 25일 JTBC뉴스룸의 심층보도가 있기 전까지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고, 국민들도 설마 그 지경까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국정농단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 이제 박근혜의 탄핵을 앞두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최근 “박근혜 스캔들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보다 훨씬 심각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우리는 긴 시간 큰 충격에 빠져있고 역사상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당연히 탄핵 후 민심은 수습되고 국정은 안정되어야 한다.하지만 오랫동안 열광하며 응원했던 팀이 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잠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가 이내 허무감에 빠져들듯 무력감에 휘말려서는 안 되겠다. 우리 모두 두 눈 부릅뜨고 역사의 중심을 지켜야할 이유다. 지난 세월호 때도 그랬다가 흐지부지되었지만 이젠 정말로 탄핵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한다. 이 나라의 모든 적폐와 부조리를 걷어내고 정치혁명도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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