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간격/안도현

모든 2 2018. 4. 13. 20:39



간격/안도현

   

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시집『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 2004)-



  자연의 현상을 노래한 많은 시가 그 상징과 비유를 통해 인간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이 시도 숲을 원경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인식과 실제 숲속에 들어가서 본 본디의 모습이 다른데서 얻은 깨달음으로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보았을 때는 나무들 간격의 빼곡한 밀착으로 숲을 이룬다고 믿었으나, 불 타버린 숲의 한가운데 들어서서 보았더니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숲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로, 나무와 나무는 공동체의 구성원인 개개인을 일컫는다. 이 나무들의 모습에서 인간사회의 바람직한 관계를 발견한다. ‘어깨와 어깨를 대고’있다는 것은 얼핏 간격 없이 붙어있기에 결속과 일사 분란함이 가능하고, 그것으로 울창한 숲을 이룬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와 달랐다. 촘촘하지 않고 ‘넓거나 좁은’ 적절한 간격,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그 이유로 각각의 나무는 성장하고, 그 간격들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우리들 삶의 모습에도 적용된다. 진정한 사랑이나 우정은 맹목적인 밀착(혹은 집착)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바라보는 여유와 조화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나무들 사이의 적당한 간격처럼 사람들 사이에도 이만한 간격은 필요하고,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도 한발 떨어진 위치에서 관조할 수 있는 여유는 있어야한다는 의미이다. 그 간격으로 바람이 통하고 햇빛도 들며 조화의 아름다움도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칫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가 깊어지면 필경 사단이 나고 만다. 이런 간격의 소중함에 대한 잠언은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관하여’란 시에도 볼 수 있다. “너희는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 두 언덕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함께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있고 참나무와 참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그 적절함과 적당함이 대충 대강으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적당히 사랑해야 적당히 아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이해타산을 따지지는 않는 우정도 보기 드물다. 얼핏 인간적 순수성의 결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맹목의 사랑과 우정, 믿음과 밀착은 사달이 났을 경우 그 폐해는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너무나 크고 광범위하다. 맹목으로 윗도리 아랫도리 홀딱 벗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자, 반드시 심장을 잃게 되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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