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동방의 등불/타고르

모든 2 2018. 4. 13. 20:37



동방의 등불/타고르

  

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1861~1941)는 인도의 시인이며, 사상가요, 교육자다. 그는 1913년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기탄자리(신에게 바치는 송가)’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인도문학의 정수를 서양에 소개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조국 인도와 비슷한 처지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그 관심의 수준은 확인되지 않으며 다만 '동방의 등불'이란 시 하나로 모든 걸 유추할 뿐이다. 

 

  '동방의 등불'은 그가 192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당시 동아일보 도쿄지국장이 한국에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대신 한국인에게 보낸 격려의 시로 알려져 있다. 그해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시를 받게 된 경위와 함께 주요한의 번역본이 실려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비록 일제강점으로 그 등불이 꺼져있어 동방의 한쪽이 어둡지만 언젠가는 등불이 다시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주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하지만 이 시가 너무 짧아 아쉽게 생각해서인지 주요한은 번역본에서 이 뒤에 ‘기탄자리’의 35번째 시를 덧붙여 유통시켰다. 이 시는 타고르가 영국에 항거하는 인도인을 위해 쓴 것으로 우리의 처지도 그와 비슷하여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것 같다. 하지만 전해지고 있는 긴 시는 분명히 짜깁기한 것이며, 특히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라’고 한 마지막 구절의 ‘코리아’는 원전에도 없는 창작이며 각색이었다.

 

  솔직히 위 번역된 시의 내용도 원문이라고 알려진 영문과 비교하면 다소 왜곡되고 임의 해석되어진 부분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타고르의 등불은 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등불로 본 것인데, 번역에선 그 등불을 조선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당시 서구와 일본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만큼 잘 나가는 타고르의 한 마디는 우리에게 매우 큰 의미였을 것이며, 그런 그에게 기대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시대적 필요에 의한 절실함으로 다소 과장되게 의역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어쨌거나 인류의 스승이라 불리는 타고르는 이 짧은 시로 인해 우리에겐 친숙하다. 오늘은 이 시의 예언적 내용에 주목한다.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을 오늘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2016년 가을의 촛불항쟁은 위대한 국민과 민주주의의 승리이다. 적폐의 본산이라할 박근혜의 탄핵을 국민의 힘으로 이끌어낸 것은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리라. 탄핵 이전의 대한민국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확 달라져야 한다. '바르게 살자'란 돌덩이를 걷어내는 일부터 정치혁명까지 없앨 것은 없애고 바꿀 것은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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