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징검다리/원무현

모든 2 2018. 4. 13. 20:45



징검다리/원무현

 

듬해는 유급을 해야 할 처지였던

그해 겨울 돼지가 새끼를 낳았다

그중 젖을 찾아먹지 못하는 약골 두 마리 있었다

아버지는 끼니때마다 그것들을 품에 안아

학교에서 배급받아온 전지분유를 풀어먹이곤 했다

 

젖을 뗀 녀석들을 내다 판 이듬해

상급반 교실에 무사히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시냇물이 흐르는 풍경을 그리던 미술시간

징검돌과 징검돌 사이에 징검돌을 놓았다

까맣게 웅크린 새끼돼지 두 마리

거친 물살을 견디고 있었다

 

-시집『사소한, 아주 사소한』(지혜,2012)-




  흔히 1955년생부터 1963년생까지를 ‘베이비부머‘세대라고 묶어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전후 정치적 격동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원무현 시인은 이 세대의 막내 격이다. 그들이 초등학교 다닐 땐 한 학급 학생 수가 백 명에 육박했고, 수업을 오전반 오후반 부제로 나눠 받기도 했다. 당시에도 법적으론 의무교육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서야 초등학교 무상의무교육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의무교육 대상을 중학교로 확대하고자 그 전 단계로 1970년 중학교 무시험제를 실시했으나 재원 부족으로 즉시 시행되지는 못 했다.

 

  ‘새끼돼지 두 마리’를 팔아 그것을 ‘징검다리’ 삼아 ‘상급반 교실에 무사히 발을 디딜 수 있었다’고 했는데, 초등학교 때인지 중학교 시절인지 명확히 알지는 못한다. 당장 시인에게 전화 한통이면 의문은 풀리겠지만 어느 경우든 무상의무교육이 정착되기 전이다. 그리고 공연히 말라붙은 고형의 눈물이 용해될 우려가 있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구호물자로 배급했던 전지분유가 70년대 중반이후 사라졌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초등학교 시절일 것으로 추측된다.

 

  새끼돼지 두 마리 팔아봐야 얼마 될까만 그 돈이 없어 상급학교도 아니고 상급학년에 올라가지 못할 처지를 지금 젊은이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당시엔 사친회비라 일컫는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학부모의 자발적 지원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지금은 중학교까지 무상의무교육에다가, 어떠한 환경에도 고등학교는 기본이고 엄청난 등록금에도 ‘인간 구실’하려면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들 생각하니 격세지감이 깊다.

 

  70년대 농촌의 수많은 학부모들이 소를 팔아 도회에서 대학 다니는 자식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세운 대학 건물이라 해서 ‘상아탑’으로 상징되던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빈정대어 불렀다. 당시의 소는 농촌에서 재산목록 1호였다. 부모가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소 팔고 땅 팔아 자식 공부 시키면 다들 좋은 미래가 올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실제로 그들은 산업화의 주역으로 과실을 나눠가지며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그들 ‘베이비부머’세대가 벼랑 끝에 선지 오래다. 급변하는 사회 흐름에 떠밀려 조기퇴직하고, 퇴직 후 준비 안 된 노후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제 베이비붐 이후 세대들이 그 고통을 이어받았다는데 있다. 요즘은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부모 등골이 빠진다 해서 대학을 ‘등골탑’이라 한다. 그렇게 대학 나와 봤자 태반이 백수거나 예전 중고등만 졸업하면 얻을 수 있는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 등골에 얼마나 무거운 ‘징검돌’을 더 놓아야 ‘거친 물살’을 견뎌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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