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267

자작나무 상처/이진흥

자작나무 상처/이진흥 어느 시인*은 사랑에 빠져 하이델베르크에서 심장을 잃었다고 노래했지만 여행 중 안경을 잃어버린 나는 자작나무 숲에서 두 눈을 잃었다고 쓴다 사랑에 빠진 젊은 시인의 심장과 여행 안내서를 읽기 힘든 늙은이의 눈, 그 어디쯤 산양 한 마리 벼랑을 기어오르고 자작나무 잔가지가 흔들린다 추운 아침 어미를 잃고 돌아보는 어린 짐승의 커다란 눈과 북극 칼바람에 흰 껍질이 무수히 긁힌 자작나무 상처를 가늠하며 나는 원고를 고쳐 쓴다...... 오, 일흔의 아침나절 뛰는 심장과 밝은 눈을 잃어버리고 비로소 나는 안다 연민과 고통 너머 미혹의 안개 걷히고 나니 거기 빛바랜 상처 한 그루 그냥 그렇게 서 있음을 -시집 『어디에도 없다』 (동학사, 2016)- 독일 라인 강 지류인 네카르 강변에 위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