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못 위의 잠/나희덕

모든 2 2018. 4. 12. 00:57



못 위의 잠/나희덕

 

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나는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비평사, 1994)-

  



  닷새 전 낯선 번호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시 쓰는 나희덕 이라고 합니다.” “매번 고맙게 보내주시는 책을 계속 그냥 받아도 될지 모르지만” “주소가 바뀌어서 알려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불러주는 대로 바뀐 주소를 받아 적었다.그리고 그저께 나희덕 시인의 부친께서 별세했다는 단체 부고를 접했다. 오늘이 그 발인이다. 처음 통화에서 단박에 팬임을 밝힐 정도로 내게는 친밀한 시인이고 오랜 기간 작품을 좋아했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조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과공으로 비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뒀다.

 

  못 위에서 잠을 자는 ‘아비 제비’의 모습을 보며 과거 아버지의 모습을 연상한 시 한 편으로 지금 시인의 심정을 가늠해 본다. 그리고 위로의 마음을 얹어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시는 시인이 여행길 한 시골집에 머물며 우연히 올려다본 처마 밑 풍경을 통해 어린 시절 가족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고단한 삶에 대한 연민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시인이 회상한 장면엔 종암동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내를 마중하는 한 사내와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그 사내는 바로 시인의 아버지이고 시인은 그 아이들 가운데 맏딸이다.

 

  오랜 실직 생활로 어머니에게 미안함을 감출 길 없는 아버지는 창백하리만큼 피곤에 지친 어머니에게 다가서지조차 못하고, 골목길에서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늘 식구들보다 한 걸음 늦게 따라오곤 했다. 시인은 66년 충남 논산의 한 보육원에서 태어났다. 친지가 운영하는 보육원의 총무 일을 보던 어머니로 인해 고아 아닌 고아로 열 살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이후 서울로 이사 와서도 어머니의 직장인 보육원에서 스무 살 처녀가 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지냈다. 필경사였던 아버지는 닭을 치며 채소를 가꾸면서 곤고한 생활을 이어갔다.

 

  보육원 생활은 그를 일찍 철들게 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었지만, 그는 친구들에 비해 피부가 뽀얗고 예쁘장했다. 양녀를 구하러 오는 사람들의 눈에 번번이 띄어 그가 지목 당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불편하고 불안했다. 고아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함께 생활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친구들, 그는 일찍부터 남을 생각하고 배려해야 했다. 그들에 대한 부채감은 그녀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시인이 그곳 친구들의 이야기를 문학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것도 그들에게 누를 끼칠 것 같아서다.

 

  또래의 마음을 헤아리며 처신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법까지 터득하면서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갔다. 만물에 대한 글썽임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많은 그의 시들이 ‘슬픔이나 연민의 공명에서 시작된’것이라고 한다. ‘눈물을 다스리는 힘이 없이는 슬픔을 제대로 노래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못 위의 잠」에서 '눈물'을 똑 떨구는 게 아니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보는 것도 그래서란다. 연민과 애틋함으로 점철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시인은 그의 바람대로 더 넓게 흐르는 ‘슬픔의 강물 하나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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