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자작나무 상처/이진흥

모든 2 2018. 4. 12. 01:05

 

자작나무 상처/이진흥

  

느 시인*은 사랑에 빠져 하이델베르크에서 심장을 잃었다고 노래했지만 여행 중 안경을 잃어버린 나는 자작나무 숲에서 두 눈을 잃었다고 쓴다 사랑에 빠진 젊은 시인의 심장과 여행 안내서를 읽기 힘든 늙은이의 눈, 그 어디쯤 산양 한 마리 벼랑을 기어오르고 자작나무 잔가지가 흔들린다 추운 아침 어미를 잃고 돌아보는 어린 짐승의 커다란 눈과 북극 칼바람에 흰 껍질이 무수히 긁힌 자작나무 상처를 가늠하며 나는 원고를 고쳐 쓴다...... 오, 일흔의 아침나절 뛰는 심장과 밝은 눈을 잃어버리고 비로소 나는 안다 연민과 고통 너머 미혹의 안개 걷히고 나니 거기 빛바랜 상처 한 그루 그냥 그렇게 서 있음을

 

-시집 『어디에도 없다』 (동학사, 2016)-

 

 

  독일 라인 강 지류인 네카르 강변에 위치한 하이델베르크는 14세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그림 같은 고성과 역시 이 무렵 설립된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명한 매력적인 도시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인구 14만의 이 도시에는 학생이 2만여 명이고, 괴테와 칸트, 헤겔과 하이데거가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 프리드리히 슈바르트가 "하이델베르크에서 다시 소생하지 못한다면 그는 죽어야 한다"고 말했듯이 하이델베르크는 삶에 지친 영혼에게 다시 힘을 주는 안식처 같은 곳이다. 유대계 시인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생을 마감한 ‘프릿쯔 뢰너 베다’은‘난 하이델베르크에서 심장을 잃었다’라는 시를 남겼다.

 

  “스무 살 쯤 되었을 적 어느 날 밤,/ 난 붉은 입술과 황금 금발에 입을 맞추었지./ 푸르고 복된 밤, 넥카강은 은빛으로 맑고/ 그때 난 알았었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난 하이델베르크에서 심장을 잃었다네./ 부드러운 여름밤/ 난 온통 사랑에 빠져 있었고/ 그녀의 입술은 귀여운 장미꽃같이 미소 지었지./ 성문 앞에서 우리 이별할 제/ 마지막 이별의 입맞춤에 그걸 분명히 알게 되었다네./ 난 하이델베르크에서 심장을 잃었다네./ 내 심장은 넥카강변에서 아직도 뛰고 있다네.” 키스를 얻은 대신 심장을 잃게 한, 그만큼 하이델베르크는 여행객의 심장을 강탈하기에 충분하였으므로 한해 4백만 명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시인은 서강대학교 독문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국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든 학업들이 시를 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신문(1970)과 중앙일보(1972)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일찌감치 등단한 시인치고는, 이번 세 번째 시집을 냈으니 과작도 그런 과작이 없다. 대학에서 시론을 가르치고 <물빛>이란 동인을 지도교수로서 33년째 이끌면서 연구서와 평론집 등을 냈지만 자기검열의 엄격으로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시인은 “철학이 묻는 것이라면 시 또한 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태한 일상 속에서 때때로 서늘한 느낌이 다가오는 어떤 순간에 시는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오는데, 눈을 부릅뜨면 사라지더라”고 말한다.

 

  시인은 몇 년 전 북유럽 여행 중 딸이 사준 안경을 자작나무 숲속에서 잃어버린 일이 있다. 당장의 불편함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아름다운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와 자작나무숲을 잘 구경하게해준 안경을 어느 순간 잃어버린 사건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문득 떠올랐던 시구가 ‘난 하이델베르크에서 심장을 잃었다’이다. 순간 이를 패러디하여 수첩에다 ‘나는 자작나무 숲에서 두 눈을 잃었다’고 적었다. 그렇게 적어놓고 보니 “단순한 사실(안경분실)이 의미 있는 신화(아름다운 풍경이 눈을 앗아갔다)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듯 “사실을 신화로 변용하는 것이 바로 시를 쓰는 일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듯 철학적 사유에 길들여져 있다. 눈을 잃고 나서 그 철학적 사유가 더욱 활기를 띤다. ‘그 어디쯤 산양 한 마리 벼랑을 기어오르고 자작나무 잔가지가 흔들리’는 것도 고스란히 보인다. ‘눈앞에 전개되는 잡다한 대상물은 본질이 아니라 껍질’이라고 그는 말한다. 생떽쥐베리가 <어린왕자>에서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처럼. ‘눈을 감으면 그런 외부의 대상들은 차단되고 내면이 열린다.’ ‘그때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존재를 만나게 된다.’ ‘일흔(45년생)의 아침나절’ ‘비로소 나는 안다 연민과 고통 너머 미혹의 안개 걷히고 나니 거기 빛바랜 상처 한 그루 그냥 그렇게 서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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