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모든 2 2018. 4. 12. 01:11



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달걀 2

빵가루 2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작은 술

상추 4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곱게 다진다.

이 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명상의 첫 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 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 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 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4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1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분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레인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리 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추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리 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잘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추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 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아무리 친절한 래시피로서의 부가적 기능을 갖는다지만 너무 긴 시다. 이따위도 시로 취급해주냐며 의아해할 독자가 계시겠지만 이 첫 시집으로 장정일이 30년 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걸 보면 전문가들도 인정을 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평론가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 엉터리들! 나는 10년 뒤에나 올바로 연구될 것이다. 나는 내가 쓰는 모든 책에 다른 평론가들의 해설을 싣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나는 연구될 것이다” 당연히 그의 시집에는 평론이 없다. 예언대로 10년 좀 지나 그의 소설이 몇 편 영화로 만들어지고, 장정일에 관한 연구서도 발간되었다.

 

  비 호감의 빡빡머리로 한때 TV교양프로를 진행했으며, 최종학력 중졸(대구 성서중 졸업)의 이력으로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 노릇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인간 장정일과 함께 그의 시 역시 흥미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는 시에 소설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시를 희곡이나 시나리오 기법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영화 감상문을 시로 바꾸기도 한다. 그는 장르를 구체적으로 넘나들면서 시에 대한 전통적 관념을 완전히 분해하였다. 희곡으로 문단 데뷔한 경력이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장르해체를 시도한다.

 

  시인은 왜 전에는 금이나 꿈같은 단단하고 투명한 것들에 대한 명상만 하다가 물컹한 것들도 명상의 대상에 포함시켰을까? 전통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들만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인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에 속해있다는 말은 미국식 자본주의에 예속이 되었다는 판단일까? 그래서 마요네즈와 브라운소스의 입맛에 길들여진다는 것이 좋다는 건가 나쁘다는 건가? 반항적 독백의 어투로 보아서는 분명 비판과 조롱이 묻어있지만, 과거 소련과 중국이 그렇고 베트남이 지금처럼 변모한데는 맥도날드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환기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맥도날드가 들어간 나라들끼리는 전쟁이 없다는 말도 있다.

 

  되짚어보면 저 북녘에도 코카콜라와 맥도날드가 들어가기만 한다면 전쟁의 불안은 사라질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면 꼭 나쁘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이 초국가적 브랜드들이 지배하는 현실을 벤자민 바버 교수는 ‘맥 월드(Mc World)’ 즉 맥도날드가 지배하는 세계란 말로 표현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연상케 한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변 어느 빅맥 가게에서 먹은 엄청난 크기의 햄버거처럼 우리를 압도하고 질리게 하는 구석은 여전히 있다.

 

  장정일은 아무리 커도 “두 손으로 들고 먹지 않는 햄버거, 나이프와 포크로 먹는 것은 절대 햄버거가 아니다”라 했다. 그러나 포크와 나이프 아니면 햄버거를 먹지 못하는 공주마마도 있긴 있다. 햄버거의 기원은 독일이다. 17세기 독일 항구도시 함부르크 부두에서 물건을 나르는 이들은 식당에 갈 돈도, 시간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들은 질 낮은 고기를 갈았고, 이 고기를 소금으로 간해 구웠다. 이걸 점심 도시락으로 싸다녔다. 19세기 초 독일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이 고기가 뉴욕에 소개됐다. 함부르크 스테이크로 불렸던,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함박스테이크’다. 이 스테이크를 빵 사이에 넣어 간편하게 먹는 게 오늘날의 햄버거다.

 

  햄버거는 코카콜라와 함께 미국의 상징이다.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이란 미국식 자본주의 가치에 점령당한 생활 방식을 가리킨다. 오늘 백악관에 입성하는 트럼프는 과거 김정은과의 ‘햄버거 대화’를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자체가 초불확실성 존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간 대화에 일말의 기대를 갖는다. 때마침 지난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인민복을 벗고 양복을 빼입은 것도 좋게 보면 햄버거를 먹으며 북미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돼있다는 정치적인 시그널로 이해할 수도 있다. 아무쪼록 정크푸드 햄버거가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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