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그리고 시 159

그리운 부석사/정호승

그리운 부석사/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소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죽음도 불사한 '사랑의 의지' 먼 남녘에서 만났던 고등학교 1학년 벗에게서 카드 메일이 왔다. 열어보니 정호승 시인의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가 안치환의 목소리로 흘러 나온다. 노래에 잠긴다. 시에 잠긴다. 시가 그대로 노래인,어둔 밤 눈물 같은 이 반짝거림. 내 어린 벗은 요즘 정호승 시인의 첫 시집『슬픔이 기쁨에게』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

사랑 사랑 내 사랑/오탁번

사랑 사랑 내 사랑/오탁번 논배미마다 익어가는 벼이삭이 암논 등에 업힌 숫메뚜기의 겹눈 속에 아롱진다 배추밭 찾아가던 배추흰나비가 박넝쿨에 살포시 앉아 박꽃을 흉내낸다 눈썰미 좋은 사랑이여 나도 메뚜기가 되어 그대 등에 업히고 싶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온몸이 눈동자' 살아가다 보면 눈(目)이 많아지는 때가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그리움의 눈을 수도 없이 가지게 된다. 바람으로라도 '그 사람'에게 가려고 하고 돌멩이라도 되어서 그 사람의 발치에 놓여있고 싶다. 그 사람의 주변에 무엇이든 되어서 그의 눈에 띄고 싶고 그 사람을 바라보고 싶다. 그때 우리의 눈은 신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만상(萬象)이 다 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을 때,막연히 길을 나서 보는 심사를 ..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이근배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이근배 한세상 살다가 모두 버리고 가는 날 내게도 쓰던 것 주고 갈 사람 있을까 붓이나 벼루 같은 것 묵은 시집 몇 권이라도 다리를 찍으러 가서 남의 아내를 찍어온 나이든 떠돌이 사내 로버트 킨케이드 사랑은 떠돌이가 아니던가 가슴에 붙박여 사는 인사동 나갔다가 벼루 한 틀 지고 온다 글 쓰는 일보다 헛것에 마음 뺏겨 붙박인 사랑 하나쯤 건질 줄도 모르면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소설. 나는 지금까지 사랑을 주제로 한 많은 시와 소설을 읽어왔지만 그 어느 작품에서도 사랑에 대한 바른 답을 읽지 못했고 나 자신이 어떤 해석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소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으면서 내 무딘 감성에도 불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