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카운티의 다리/ 이근배
한세상 살다가
모두 버리고 가는 날
내게도 쓰던 것
주고 갈 사람 있을까
붓이나 벼루 같은 것
묵은 시집 몇 권이라도
다리를 찍으러 가서
남의 아내를 찍어온
나이든 떠돌이 사내
로버트 킨케이드
사랑은 떠돌이가 아니던가
가슴에 붙박여 사는
인사동 나갔다가
벼루 한 틀 지고 온다
글 쓰는 일보다
헛것에 마음 뺏겨
붙박인 사랑 하나쯤
건질 줄도 모르면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소설.
나는 지금까지 사랑을 주제로 한 많은 시와 소설을 읽어왔지만 그 어느 작품에서도 사랑에 대한 바른 답을 읽지 못했고 나 자신이 어떤 해석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소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으면서 내 무딘 감성에도 불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이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 프란체스카와 떠돌이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트가 만들어가는 사랑의 실체, 한 순간의 불길로 끝난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서로의 가슴에 화인(한문)처럼 찍혀 있음을 읽게 한다. 흔히 소설이나 영화를 소재로 쓰여지는 시가 있다. 그러나 스토리를 전하거나 감상이나 비평의 수준에서 머문다면 그것은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질 뿐 아니라 예술작품으로서의 독립성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근배 시인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는 소설속의 키워드를 잡아서 자신의 삶의 영상에 오버랩시킨 매우 특이한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한 세상 살다가/ 모두 버리고 가는 날/ 내게도 쓰던 것/ 주고 갈 사람 있을까”에서 화자가 소설속의 주인공의 절대적 사랑에 대비시키는 자신의 생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녹아있다. 이것은 이근배 시인만의 것이 아닌 아마도 중년 남성들의 보편적 생각에 맞닿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붓이나 벼루같은 것/ 묵은 시집 몇 권이라도”에서 “붓” “벼루” “묵은 시집” 은 로버트 킨케이트가 생애를 마감하면서 프렌체스카에게 보냈던 사진기재에 맞먹는 이근배 시인의 정신적 자산일 것이다. 여기서 정신적 자산은 하나의 상징물이며 그것은 물질이 아닌 곧 사랑의 증거가 된다. “사랑은 떠돌이가 아니던가/ 가슴에 붙박여 사는”에서 사랑은 소모적이거나 가변적이라는 일반적 통념을 넘어서는 진정성을 적시하고 있다.
이근배 시인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소설의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글감으로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해석을 하므로서 자신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제시한다 . “글 쓰는 일보다/ 헛것에 마음 뺏겨 / 붙박인 사랑 하나 쯤/ 건질 줄도 모르면서”에서 이근배 시인의 의도는 역력히 살아난다. 시인으로서의 이근배 시인은 그의 정혼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쓰기의 무력함을 스스로 준엄하게 꾸짖고 동시에 사랑에 대해서도 함몰할 수 없었던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많은 시인들이 ‘사랑’을 주제로 쓴 시를 읽었다.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를 소재로 한 시들도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읽어 왔다. 그런데 이근배 시인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3수 연작의 시조로 아주 평이한 문체로 서술적으로 엮어진 듯 하지만 <한 세상 살다가>의 첫 수 도입에서 셋째 수 종장까지 한올의 틈새도 주지 않고 긴박하게 호흡을 이끌면서 시조 한 편이 한 시인의 전 생애와 정신의 넓은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음을 보여 주는 역작이라 하겠다.
<제주인뉴스 윤종남 논설위원·시인>
(세계로 열린 인터넷신문 제주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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