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그리고 시

영혼을 소유하는 법/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모든 2 2018. 5. 10. 04:33





영혼을 소유하는 법/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영혼을 소유하게 된다.

 끊임없이. 영원히 그것을 가지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일 년. 그리고 또 일 년.

 영혼이 없이도 시간은 그렇게 잘만 흘러간다.

 어린 시절 이따금씩 찾아드는

 공포나 환희의 순간에

 영혼은 우리 몸속에 둥지를 틀고

 꽤 오랫동안 깃들곤 한다.

 때때로 우리가 늙었다는

 섬뜩한 자각이 들 때도 그러하다


 

가구를 움직이거나

커다란 짐을 운반할 때

신발 끈을 꽉 동여매고 먼 거리를 걷거나

기타 등등 힘든 일을 할 때는

절대로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설문지에 답을 적거나

고기를 썰때도

대개는 상관하지 않는다.

 

수천가지 우리의 대화 속에

겨우 한 번쯤 참견할까 말까.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원체 과묵하고 점잖으니까.


우리의 육신이 쑤시고 아파오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근무를 교대해버린다.

어찌나 까다롭고 유별난지

우리가 군중속에 섞여 있는 걸 탐탁지않게 여긴다.

하찮은 이익을 위해 목숨 거는 우리들의 암투와

떠들썩한 음모는 영혼을 메스껍게 한다.

기쁨과 슬픔

영혼에게 이 둘은 결코 상반된 감정이 아니다.

둘이 온전히 결합하는 일치의 순간에만

우리 곁에 머무른다

 

우리가 그 무엇에도 확신을 느끼지 못할 때나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는 순간에만

영혼의 현존을 기대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물 가운데

추가 달린 벽시계와 거울을 선호한다.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하므로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갈 건지 아무 말도 않으면서

누군가가 물어봐주기를 학수 고대한다.

보아하니

영혼이 우리에게 그러한 것처럼

우리 또한 영혼에게

꼭 필요한 그 무엇임에 틀림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끝과 시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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