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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망월見指忘月

견지망월見指忘月/한승구 어리석음을 빗대어 말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본다는 뜻으로 쓰여지는 '견지망월'이다. 손가락이 달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 이라면 달은 내가 찾는 목적이다. 수단에 매달려 목적을 잃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것이다. 지나친 욕심으로 자신의 유불리를 먼저 내세우다 보면 판단의 오류를 불러오기도 한다. 타자의 올바른 충고마저도 귓둥으로 흘려보내고 자신의 주관만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보여주려는 것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과거의 잘못된 판단이 달이라면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현재여야 하지 않을까.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려고 하는 근시안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냉철하고 현명한 이성을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

진실과 중도

진실과 중도/한승구 "내가 지금 사리를 찾고 있는 중이라네" 목불을 태운 재를 뒤적이며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단하 선사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다는 말이오?" 라며 반문했던 혜림사의 원주스님, "단하소불(丹霞燒佛)" 이라는 이야기에 얽힌 내용이다. 단하천연(丹霞天然)은 당나라 때의 선중으로 평범하지 않은 기행(奇行)과 행적으로 알려진 고승이다. 보이되 실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들리되 진실이 아닌 것은 거를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져야 한다. 올바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지능력을 갖추어야 함은 과거나 현재에나 다를 바 없다. 매이지 말아야 할 것에 구속되고 개인과 개인 간의 간극이 생기게 되고 양분된 진영이 생겨나 분열로 이어지는 작금의 형국이 단하 선사의 가르침에 ..

그 남자

그 남자/한승구 밤하늘에 어느 사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별이 빛나고 있었다. 별을 사랑하고 별을 그렸던 사내, 저 별들 중 어느 별에서 뜨거웠던 그 가슴으로 못다 이룬 꿈을 품고 있을 것만 같다. 깊고도 암울했던 그의 고독을 가늠할 순 없지만 절망의 순간에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비켜설 수도 없어 뜨거웠던 그 사내는 초연히 별을 향해 떠났으리라. 짧은 생애에 예술을 향한 열정을 담고 서둘러 떠나간 오래 전의 그 사내를 떠올리며 별을 보는 밤.

산골의 밤

산골의 밤/한승구 자신의 색깔을 뽐 낼 수도 드러낼 수도 없는 어둠이 내린 산골, 실루엣으로 드러난 산마루와 하늘이 맞닿은 무채색 풍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속엔 점점이 빛나는 별이 있다. 밤길 거닐고 밤하늘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된 어느 때부터 별은 적막한 산골의 밤을 함께 지키는 유일한 벗이 된다. 아를강가에서 누군가처럼 빛나는 별을 캔버스에 담지 않아도 어둠이 내리면 절로 내려와 담기는 별, 그래서 밤이면 간간히 내 가슴은 별을 담은 캔버스가 된다.

출구

출구/한승구 수많은 자각의 시간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숙연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데 걸린시간 육십년. 희망 한 점 갖는 것조차 사치인양 여겨졌던 절망의 순간들을 거쳐 비로소 미미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인정하는데 걸린 시간 육십년. 현실이란 열차에 기어이 헤집고 들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데 걸린 시간 꽉 찬 육십년이다. 그 기나긴 세월을 보낸 후에야 애초의 내 자리란 없었음을 알게 되고 긴 세월 입고 있던 각질 같은 마음을 한 점 한 점 벗겨 낸다. 내 젊음의 세월은 미완의 그림이자 혼돈이었으나 이제 또다른 삶의 지평을 꿈꾸며 무거웠던 육십년을 내려놓는다. 출구를 향해 서툰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