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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매화

달 매화 / 권대웅 찬바람을 맞고 피어나는 매화의 깊고 은은한 향기는 어딘가를 한 번도 아니고 몇 번 거쳤다가 돌아온 생 같아. 맨몸 맨살로 돌아와 추워도 춥지 않은 그 빙옥氷玉의 언어들. 추위 속에 향기를 자아내는 매화는 꽃이 아니라 정신이야. 겨울밤 달빛 아래 매화가 피어나는 것을 보았어. 달빛과 매화의 색깔이 같은 데도 명징하면서도 고고한 정신이 서로 맞닿아 어떤 경지와 절정 이른 것 같았어. 삼매三昧에 들었다는 것이 저런 것일까. 오래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세상에 모든 아픔과 슬픔 힘겨움을 겪어내는 것에는 향기가 있다는 것을 느꼈어. 뼈에 사무치도록 혹독한 추위를 겪은 후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은 매화처럼 말이야. 추워서 더 명징하고 슬프고 아팠기 때문에 더욱더 향기로워라.당신. 거룩하고 아름다운..

권대웅의 달시 2023.09.18

꿈 속의 달

꿈 속의 달 / 권대웅 성큼 또 다시 새해라지. 이 지구상에 새해는 도대체 몇 번째 오고 있는 것일까. 성큼! 이라는 말은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어느 거대한 거인의 한 걸음 같아. 한 해가 떠나가버린 하늘 어디선가 거대하면서도 가벼운 다리 하나가 성큼 발을 디딘 것 같은 새해. 매양 우리 곁으로 오고 있었는데 문득 갑자기 찾아온 것 같아 놀랄 때가 있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이, 홀연 세월에도 걸음이 있어. 선듯 선듯 내딛으며 오는 보이지 않는 거인의 그 한 걸음을 속절없이!라고 불러 봤어.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가는 것들 앞에 상처받지 말고, 상처주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고 살아. 새해에는. 자주 먼 나라에서 새해를 맞이하곤 해. 되돌아보면, 아니 멀리서 바라보면 내가 그토록 끙끙 앓고..

권대웅의 달시 2023.09.18

꽃 속의 달

꽃 속의 달 / 권대웅 우리가 사는 이 공간 어딘가 분명 다른 버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하곤해. 라디오를 틀고 주파수를 맞추면 진행되고 있는 목소리와 음악이 나오듯이, 텔레비전을 틀고 채널을 돌리면 드라마의 영상이 보이듯이, 이 공간 어딘가에 이 세상을 살다갔던 사람들과 그 이야기들이 동시대별로 저장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종종 들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며 거기 와글와글 모여 자신이 사는 모습과 생각들을 수없이 올리고 있는 페이북이나 트위터 같은 공간처럼 말야. 그렇게 당신을 만날 수 있는 비밀번화는 무엇일까. 어느 주파수, 몇 번 채널에 맞추어야 당신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바위를 볼 때마다 이 세상에 말할 수 없었던, 내보일수 없었던 모든 침묵이 그곳에 저장되어 있다는 생..

권대웅의 달시 2023.09.18

달새

달새 / 권대웅 한 달에 한 번식 밤하늘에 달을 낳고 가는 새는 얼마나 클까 우리는 왜 너무 큰 것은 보지 못하는 걸일까 새가 달을 낳는 동안 바다는 얼마나 뒤척였을까 하늘에 펼쳤던 저토록 큰 검은 날개 새벽이면 어디에다 접어 넣을까 날개를 펼칠 때 반짝이던 별들은 어디서 얻은 상처들일까 이제껏 밤하늘에 태어났던 둥근 달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달에서 나오는 환한 기운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달에 들어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외로울까 지붕 위에 달이 왔는데도 나는 얼마나 어두운 밤을 지냈을까 저 거대한 새가 둥글게 품고 있었는데도 나는 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달의 중력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니? 바닷물을 밀고 끌어당기는 조수간만이 아닌 달의 에너지 말이야. 달이 우..

권대웅의 달시 2023.09.15

연중 제23주일 2023년 9월 10(가해)

천안청당동성당(천안동부지구) 본당설립 : 2014.01.15 / 주보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 마태오 복음 18, 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