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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서 아름다운 것

멀어서 아름다운 것 / 권대웅 달이 쓰고 가는 저 기러기와 기러기가 읽고 가는 저 달의 문체와 기러기의 문장이 이어져 가을밤이 된다. 길밖의 기러기와 길안의 달 우리는 늘 서로 그렇게 만나지 못하고 가을이 되면 묻는다. 어디로 가는 길인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자꾸 해결하려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풀려고 할수록, 말하고 떠들수록 더 꼬이게 되는 경우가 있어. 그냥 내버려두는것, 가만 두면 저절로 풀리게 되는 것 같아. 어떤 문제나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순간 뇌가 판단해서 지시하는 답을 나는 곧바로 따르지 않으려고 해. 내 판단에 오답이 많았기 때문이야. 나는 내가 아니 인간이 배워온 이성적 판단을 믿지 않는 편이야. 우리의 삶은 유화나 페인트칠이 아닌 번짐, 스며들어 배어나..

권대웅의 달시 2023.10.12

아득한 한 뼘

아득한 한 뼘 / 권대웅 달은 경계가 없어, 내가 이곳에서 보는 달과 당신이 저곳에서 바라보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모두 한 동네야. 한국, 일본, 중국, 미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지구 위에 경계가 그어진 그 어느 나라에서 보아도 달 아래 인류는 모두 한 동네야. 비단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달뿐만이 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이 밤이면 바라보았을 달을 생각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긴 달빛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아. '바라본다'라는 말은 '그리워하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북간도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바라보던 달,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바라보던 달, 그런 그리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쉽고 보고싶고 쓸쓸하고 슬프고 애타는 것들이 합쳐진 마음 그 ..

권대웅의 달시 2023.10.12

모두 사라지는 것들

모두 사라지는 것들 / 권대웅 집 앞 마당에 서 있던 해바라기가 사라졌어. 불이 득실한, 아주 넉넉한 웃음을 가진 듯 생긴 둥근 해바라기였는데 담장 아래 고개를 푹숙이고 있다가 그만 팔월 그 여름의 태양을 따라 갔나 봐. 허전했어. 아침저녁으로 창문에서 바라보던 꽃이었는데. 해바라기가 유독 키가 커서 그랬지 사라진 것은 비단 해바라기 꽃만이 아니었어. 봄, 여름, 가을, 매 계절마다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들을 보고도 우리가 영원할 줄만 알다니, 언젠가 사라질 것을 잊고 있다니, 나도 당신도 사라져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 높고 멀어져 가는 하늘 위로 뭉게뭉게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어. "Everything will be taken away" 몇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 갔다가 흑백사진 위에 씌여져 있는 ..

권대웅의 달시 2023.10.12

달의 고요

달의 고요 / 권대웅 비가 오고난 후 여름밤 하늘에 뜬 달을 보면 참 고요하고 환한 연못 같아. 저것이 바로 명상이지. 경전經典이지. 달에 적힌 저 경 經을 봐. 달빛이 읽고 있는 경 經을 들어 봐. 그 달이 비추는 지상의 연못에 연꽃이 피어나고 있어. 후드득 연꽃이 날아가 달에 닿고 있었어. 누가 놓고 가는 생일까. 이제 막 떠나가는 순간과 탄생하는 순간이 겹쳐지는 시간에 닿는 것 같은 달의 고요. 달팽이가 아득한 은하수를 건너가고 있었어. 배낭을 맨 여행자 푸른 구름들이 잠시 달에 짐을 풀고 머물고 있었어. 연못 속에 비친 달을 찾아 한평생을 가는 달팽이처럼 우리 삶이 그런 것 같아. 있으면서도 없는 것, 보이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 존재하면서도 없어지는 것, 언젠가 모두 사라져 가는 것을 향해 우리..

권대웅의 달시 2023.10.12

둥글어지는 것

둥글어지는 것 / 권대웅 비가 내리는 소리는 자연이 연주하는 음악 같아. 가만히 빗소리를 들어봐. 비가 부딪히는 곳마다 서로 다른 빗소리들을 들어봐. 통통통 처마 밑에 놓은 깡통에 부딪히는 빗소리. 두둑두둑 나뭇잎에 부딪히는 빗소리 톡톡톡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방울이 어디에 부딪히느냐에 따라 그 음향과 질이 달라지듯이 우리도 어느 곳에서 누구와 부딪히고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소리도 달라진다는 생각을 했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누구와 만나서 어떤 소리를 내고 있니? 빗소리가 둥글다고 생각했어. 아니 이 세상에 오는 모든 것들은 둥글어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동그란 몸짓을 지으며 꽃들은 피어나고 열매는 자기 몸이 매달려 있을 동그란 자리를 허공에 만들고 둥근 알에서 날개를 둥글게 퍼..

권대웅의 달시 2023.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