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웅의 달시

달 매화

모든 2 2023. 9. 18. 14:16

 

달 매화 / 권대웅

 

찬바람을 맞고 피어나는 매화의 깊고 은은한 향기는 어딘가를 한 번도 아니고 몇 번 거쳤다가 돌아온 생 같아. 맨몸 맨살로 돌아와 추워도 춥지 않은 그 빙옥氷玉의 언어들. 추위 속에 향기를 자아내는 매화는 꽃이 아니라 정신이야.

겨울밤 달빛 아래 매화가 피어나는 것을 보았어. 달빛과 매화의 색깔이 같은 데도 명징하면서도 고고한 정신이 서로 맞닿아 어떤 경지와 절정 이른 것 같았어. 삼매三昧에 들었다는 것이 저런 것일까.

오래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세상에 모든 아픔과 슬픔 힘겨움을 겪어내는 것에는 향기가 있다는 것을 느꼈어. 뼈에 사무치도록 혹독한 추위를 겪은 후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은 매화처럼 말이야. 추워서 더 명징하고 슬프고 아팠기 때문에 더욱더 향기로워라.당신.

 

거룩하고 아름다운 날들이야. 어두어서 더 환하고 외로워서 찬란한 날들이야. 모든 생 앞에 고요한 영광이 깃든 날들이야. 불안해하지 말자. 두려워 말자. 주어진 이 삶에서 안심하자. 행복하자. 오 탄넨바움! 오 탄넨바움! 달빛 아래 핀 매화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어. 그런 향기와 미소를 건네고 살아도 좋았으련만.

먹고 살기 위하여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아홉을 가지고 있는데 열을 채우기 위하여 우리는 너무나 거친 호흡과 모난 입김들을 뿜어내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근심으로 가득차/잠시 멈춰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인가/ 눈가에서 시작된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윌리엄 헨리 데이비즈가 쓴 시에 나오는 구절이야. 나뭇가지 아래서 양과 소의 순수한 눈길로 펼쳐진 차분한 풍경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이겠니?

 

많은 현자들이 말했듯이 삶은 '지금 이 순간'이야 지금 이 순간에서 과거가 생기고 미래가 오고 있어. 슬픔이 생기고 기쁨이 만드러지는 것이야. 다음에 가자, 다음에 보자, 다음에 먹자, 다음에 줄게, 라고 말하는 사람의 다음은 늘 후회만이 있을 뿐. 이 세상에 다음은 없어, 다음은 포털사이트 daum만이 있을 뿐이야.

없는 가운데에서도 바쁜 와중에도 마음을 내어 지금 떠나고 사색을 하고 누군가를 도와주고 나우려하는 사람과과 다음에 좀더 여유가 생기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는 지금 이 순간은 천지 차이야.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매화를 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정신으로 보았어. 선비들은 말을 타고 열흘 길게는 한 달을 걸쳐 매화가 피는 것을 보려고 여행을 하기도 했어. 추위를 지나 오랜 여행 끝에 매화가 활짝 핀 것을 보고 돌아오는 거야. 근사하지 않니?

어쩌다 우리 삶은 달려야만 하는 삶이 되어버린 것일까. 멈추면 대열에[서 밀려나고 쉬면 못 살게 되는 삶이 되어버린 것일까. 회사를 그만 두고 직업을 바꾸고 여행을 떠나고 잠시 자기 중전을 위해 노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야. 용기를 내.

 

갈망하고 열망하며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마음 속에 품고 그려가며 그쪽을 향하여 말하고 행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일들이 이루어지기 마련이야. 결국 염원도 사람의 생각도 기류 즉 에너지이기 때문이지. 좋은 기운은 좋은 기운끼리 모이기 마련이야. 서로 찾아 오고 찾아가게 돼. 갈망하고 열망하는 모든 기운들은 아름다워.

 

눈사람이 녹아 없어질 알면서도 만드는 것처럼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웃고 떠들고 싸우고 미워하고 편드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삶이란 곧 녹아 없어질 눈사람을 만들어가는 것. 녹고, 녹고, 또 녹아도, 녹아진 그것들보다 또다시 만들어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뭉클함 말이야. 이 세상에 와서 우리는 그렇게 죽음을 아니 없어짐을 만들고 배우는 거야. 참 바보스러운 사랑법이지. 그러니까 추워도 향기로워야 해. 매화처럼.

매화가 피는 달에서 나와 당신이 그해 봄여름가을겨울 한 철을 살았어. 꽃이 피었는데도 졌고 나뭇잎이 무성하게 푸르렀는데도 없고 눈사람이 서 있었는데도 사라져버렸어. 없는데도 묘하게 있었던 거야. 진공묘유眞空妙有. 환영幻影이야! 그러니까 지금 행복하자. 어려워도 힘들어도 지금 여유를 갖자. 추워도 정신으로 살아가자.

매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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