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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가치/한승구

사유의 가치/한승구 감당할 수 없다면 차라리 놓아 버려라. 그러나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이겨내야 한다. 시련은 삶이 있는 한 끊이지 않는 것이며 시련을 극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해 가는 성장통이라고 여겨야 한다. 절망이 깊다 해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를 보는 것처럼 시련이란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흘러가는 것이기도 하니 흘러가도록 두라. 크고 작은 일들에 쉽게 낙담하는 것은 인생을 멀고 깊게 바라보지 못하는 근사안적이고 소극적인 생각 탓이다. 생이 짧다지만 우리의 생에서는 충분히 긴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어느 순간 마주한 시련을 두고 생의 모든 것이 걸린 양 절망하지 마라. 기나긴 우리의 삶에서 시련이란 한 순간 휘몰아 치고 지나가는 태풍과도 같은 것이니..

달꽃밥

달꽃밥 /권대웅 스물 살 적 시집와서 우리 엄마가 처음으로 지은 꽃밥 밥알 한 알 한 알 어루만진 그 마음씨 너무 예뻐서 초저녁 하늘에 뜬 초승달이 한 그릇 빌려간 우리 엄마 달꽃밥 초저녁 하늘에 뜬 초승달을 보면 늘 배가 고파진다. 그 초승달 위에 얹혀진 집이 보이고 굴뚝연기가 올라오고 부엌에서 저녁을 짓고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언제나 환하고 따뜻해서 그리운 저 달 창문. "밥 지어 줄께!"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이 있다면 바로 이 말을 꼽고 싶다. 밥 지어 줄게 밥 먹고 가! 손수 밥을 지어준다는 행위에 내포된 따뜻함, 정성, 배려, 마음씨, 어루만짐... 그런 밥을 먹어 본 적이 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더 힘겹고 지치고 춥고 무엇보다 ..

권대웅의 달시 2023.09.05

파란여름 달공작

파란여름 달공작 / 권대웅 마음에 떠있는 그리운 별과 달을 당신 잠든 밤하늘 꿈 속에서 활짝 펼쳤다가 새벽이면 고요히 접는 파란하늘 달공작 양탄자를 타고 밤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었어, 어릴 적, 산동네 창문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면 그 속에 누군가 살고 있을 것 같아. 양탄자를 타고서 그 별의 창문을 들여다보고 싶었어. 작은 오두막별 창문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하모니카를 부는 소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 갔다 돌아와 늦은 밤 앉은뱅이 책상에서 숙제를 하는 여학생이 저 별에도 분명 있을 것 같아. 그들을 위로하러 가고 싶어. 나는 간절하게 양탄자가 필요했어. 그 꿈을 이루고 싶어 시인이 된 것 같아. 동화를 썼던 것 같아. 외롭고 가난한 것에 대한 연민 같은 것 말이야. 다락방에 엎드려 '보물..

권대웅의 달시 2023.09.05

달빛 바느질

달빛 바느질 / 권대웅 수백 년 수천 년 전에도 저 달을 바라보던 눈들을 생각하면 밤이 하나의 긴 통로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그 일직선에 깃들여 살며 이생도 저생도 달 아래 모두 한 공간 한 동네 어떤 마음자리였을까 굽이굽이 사무친 말과 옹이 진 사연 풀잎 같은 눈물이 저기 저리 모여 환하구나 연못에 얼굴을 들여다 보듯 서로 달을 바라보던 인연 어느 생에서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때로 너무 오래되어 헤진 사연 잊혀질까 달빛이 꿰매고 있다 달에는 국경이 없다. 시간과 공간도 없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달과 저곳에서 바라보는 달이 같으니 달 아래 모두 한동네다. 오늘밤 바라보는 달과 백 년 전 아니 천년 전 살던 사람이 바라보던 달이 같으니 달빛으로 우리는 이생과 저 생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경계가..

권대웅의 달시 20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