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바느질 / 권대웅
수백 년 수천 년 전에도
저 달을 바라보던 눈들을 생각하면
밤이 하나의 긴 통로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그 일직선에 깃들여 살며
이생도 저생도 달 아래
모두 한 공간 한 동네
어떤 마음자리였을까
굽이굽이 사무친 말과 옹이 진 사연
풀잎 같은 눈물이 저기
저리 모여 환하구나
연못에 얼굴을 들여다 보듯
서로 달을 바라보던 인연
어느 생에서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때로 너무 오래되어 헤진 사연 잊혀질까
달빛이 꿰매고 있다
달에는 국경이 없다. 시간과 공간도 없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달과 저곳에서 바라보는 달이 같으니 달 아래 모두 한동네다. 오늘밤 바라보는 달과 백 년 전 아니 천년 전 살던 사람이 바라보던 달이 같으니 달빛으로 우리는 이생과 저 생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경계가 없는 달, 그곳에는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움(yeaming),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 동경, 간절한 생각, 갈망, 달에 빌었던 소원도 그리움이다. 달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말을 했던 수 많은 그리움들. 그 그리움의 에너지가 우리를 꿈꾸게 하고 태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푸드득 물고기들이 튀어 오르고 썰물과 밀물이 오고 지구를 돌아가게 한다.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존재하는 현상, 햇빛에 반사되어 어둠을 환하게 비추는 달빛이 그러하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한다. 생겨나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 있음에도 없음에도 치우치지 않는 진공(眞空)이라는 달을 바라보던 눈빛들이, 간절한 염원과 소망들이, 그리움이라는 환한 에너지로 밤이면 우리를 비추며 내려오고 있다는 것, 그렇게 달빛 바느질처럼 우리 모두가 이어져 있다는 것, 너무나 근사하고 감격스럽고 눈물이 나는 일이다. 그 달빛 그물코 하나, 당신과 나 그리고 2000년 하고도 17년 어느 여름이라는 공간을 살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