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웅의 달시

파란여름 달공작

모든 2 2023. 9. 5. 11:15

 

 

파란여름 달공작 / 권대웅

 

마음에 떠있는

그리운 별과 달을

당신 잠든 밤하늘 꿈 속에서

활짝 펼쳤다가

새벽이면 고요히 접는

파란하늘 달공작

 

양탄자를 타고 밤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었어, 어릴 적, 산동네 창문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면 그 속에 누군가 살고 있을 것 같아. 양탄자를 타고서 그 별의 창문을 들여다보고 싶었어.

 

작은 오두막별 창문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하모니카를 부는 소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 갔다 돌아와 늦은 밤 앉은뱅이 책상에서 숙제를 하는 여학생이 저 별에도 분명 있을 것 같아. 그들을 위로하러 가고 싶어. 나는 간절하게 양탄자가 필요했어.

 

그 꿈을 이루고 싶어 시인이 된 것 같아. 동화를 썼던 것 같아. 외롭고 가난한 것에 대한 연민 같은 것 말이야.

 

다락방에 엎드려 '보물섬'을 읽다가 깜박 든 잠에서 깨어난 적이 있어. 마당에서 물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문간방에 혼자 사는 공장 다니는 아줌마가 목욕을 하고 있었어. 결혼을 안 했으니까 누나라고 부르라던 아줌마. 어느 무더운 여름 마당에 앉아 야윈 어깨를 내보이며 까맣고 작은 점 세 개를 찾아보라고 했어. 비스듬히 기울어진 일직선의 점 세개.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밤하늘을 가리키는데 그 아줌마 어깨에 있는 세개의 점과 똑 닮은 세 개의 별이 보였어. 그 별이 오리온좌라는 것을 그때 알았지. 다락방 작은 창밖, 마당에서 조용히 물을 끼얹으며 목욕을 하고 있는 아줌마의 어깨 위에서 오리온좌 별 세 개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어. 무더운 여름 밤이면 자신이 오리온좌에서 왔다던, 셈베과자를 자주 사주던 그 아줌마가 생각나. 지금은 그 아줌마 정말 오리온좌가 되어 있겠지.

5대 독자로 태어난 나를 늘 무릎에 앉히고 좋아하던 할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는 별. 주정뱅이 아버지가 술 가지고 오라고 소리지는 별. 그 옆에는 엄마가 포장마차를 하고 있는 별. 그토록 지겹고 지난했던 것들마저 먼 별처럼 빛나서 그리워지는 여름밤이 있어. 외로운 별들의 방(房)이 떠도는 여름밤 말이야.

 

그러다가, 그러다가 오십이 된 어느 여름밤 달을 보다가, 문득 알게 됐어. 밤하늘에 보이는 수많은 별들은 보이지 않는 아주 거대한 공작새가 활짝 날개를 펼친 것이라는 걸. 펼쳐진 공작새의 날개에 매달린 수많은 밤별들과 초승달과 반달과 보름달들, 우리는 공작새의 날개에서 접혔고, 다시 활짝 펼쳐졌던 거야.

 

한 아이가 공원에서 풍선을 들고 가다가 그만 놓쳐버렸어. 잃어버린 풍선을 찾고 싶은 아이의 간절한 눈빛과 손. 곁에 있던 엄마가 울고있는 아이의 손에 솜사탕을 쥐어 줬어. 그런 것 같아. 들고 있던 풍선을 놓치고 솜사탕을 쥐는 것. 삶은, 어쩌면, 어쩌면 말이야.

 

날개를 활짝 펴는 수컷 공작을 피콕 peacock이라고 해. 밤이면 날개를 펼치는 거대한 공작새. 그 속에 사는, 살았던, 별들과 달들이 그리웠어. 그리워서, 그리워서, 그려 담았어. 파란여름 달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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