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일꾼 CATHOLIC WORKER 156

춤을 출 수 없다면 혁명은 없다

춤을 출 수 없다면 혁명은 없다 백기완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한상봉 그분이 이승을 떠나신 날은 몹시 추웠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사랑하던 이들과 작별인사를 하던 날에는 서울광장에 다시 봄인가. 싶은 따뜻한 기운이 되살아나더군요. 시대의 스승이라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백기완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문정현 신부님의 안녕을 염려하게 됩니다. 선생님이라고 부를만한 어른이 그리도 절박하게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두 분 모두 길 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몸으로 복음을 선포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스승이고, 그래서 전사이고, 그래서 새 길을 여는 분들입니다. 그 길 끝에서, 열결식에서 자꾸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은 누이였던 백인순 님의 인사말이었습니다. 병상에서도 아내와 쉴 새 없이 편지를 ..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서영남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에도, 엄청난 사고를 당할 때에도,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남을 돌보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이반 일리치) 삼년 전 어느 날입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장성 성 글라라 봉쇄 수도원에서는 매년 수녀원 수입의 십일조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종교 불문하고 한 곳을 찾아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눈답니다. 올해는 감옥에 갇혀있는 분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분들과 나누고 싶다면서 민들레국수집에서 그 일을 대신해 달라고 하십니다. 수녀원 십일조를 한꺼번에 보낼 수도 있고 매달 보낼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매달 주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 내년 1월까지 1년 동안 매달 70~80만 원 정도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광주대교구 유..

뚜벅뚜벅 시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

뚜벅뚜벅 시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 장영식 2020년 12월 3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청와대까지 걷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호포역에서부터 '희망뚜벅이'행진이 시작됐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85호 크레인 고공 농성 때 '한진스머프'로 알려졌던 빛바랜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항암으로 옷을 줄여야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달려왔습니다. 원동역까지 걷는 길에는 한 걸음을 떼어 놓기가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손에는 동그란 하얀 부채가 있었습니다. 그 부채 한쪽에는 "한진중공업 고용 안정 없는 매각 반대!"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구호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이른바 '..

예수처럼 망할 때까지,성공회 김경일 신부

예수처럼 망할 때까지, 성공회 김경일 신부 김유철 시냇물 흐르듯이 잔잔한 삶들이 있는가 하면 파란만장한 삶 또한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것이 불자(佛子)의 시각으로 보면 자신이 지어낸 업의 얼굴이며, 기독자(基督者)의 시각으로는 하느님이 준비한 십자가의 길이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공기의 무게만큼이나 가벼우면서 동시에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임에 틀림없다. 삶은 먹먹하도록 거룩한 신비일 뿐이다. 김경일 신부를 뚜렷이 기억나게 하는 일이 있다. 2006년 빛고을 광주 어느 식당에서 펼쳐진 장면이다. 일고여덟 명의 사람이 식당에 앉자마자 김 신부는 사람들 앞에 수저를 놓기 시작했다. 흔히 릴리전 룩(religion look)이라 불리는 로만칼라를 하지 않았지만 그가 성직자임을 아는 누군가 '황송해..

도로시 데이에게 배운 여덟 가지

도로시 데이에게 배운 여덟 가지 짐 포리스트 도로시 데이는 제일 먼저 '기도에서 시작되는 정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수도원에서도 도로시 데이(Dorothy Day)만큼 기도하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성찬례를 위해 그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녀는 이미 죽은 이들과 살아있는 사람들의 긴 목록을 들여다보면서 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그녀는 매일미사를 드리고, 항시 묵주를 놓치지 않았으며, 토요일 저녁마다 고해성사를 바치러 성당에 갑니다. 도로시 데이의 삶에 영감을 준 것은 무엇일까요? 그녀의 깊은 인내심과 용기,그리고 다른 이들에 대한 철저한 사랑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도로시 데이의 영적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녀는 "우리는 배고픈 사람..

시계가 지배하는 세상에 영성은 깃들지 못한다

시계가 지배하는 세상에 영성은 깃들지 못한다 박병상 구내식당은 대개 12시에 문을 연다. 누구나 그 시간에 배고픈 건 아니지만 정한 시간에 일하고 쉬는 직장이니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제 나이가 있는 건 아니다. 취직을 위해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대학교 입학을 위해 어려서부터 국. 영. 수에 골머리 아파야 하는 건 아닌데, 의당 그렇게 한다. 그 터널을 어렵사리 통과하고 중견 기업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누구이고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면서 시계만 본다. 땅, 불, 물,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시간에 매듭이 없건만 많은 사람은 정초가 되면 막히는 길을 뚫고 동해안을 향한다. 어떤 다짐이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꼭 1월 1일 '해뜰녘'이어야 하나? 21세기 맞아 세계가 시끄러울..

누가 형제인지 물을 필요 없다... 모든 인간이 형제다

Book Riview 누가 형제인지 물을 필요 없다... 모든 인간이 형제다 끌로셰 프란치스코 교종의 사회 회칙 2020년 10월 4일 프란치스코 교종의 새 회칙(Fratelli Tutti) 전문이 공개되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발표한새 '사회회칙'은 국적, 인종, 성별과 같은 정체성을 뛰어넘어 인류를 향한 '형제애'와 그 토대가 되는 '사회적 우애'를 강조하고 있다. 은 총 287항으로 구성되어, 246항으로 구성된 에 비해서 긴 회칙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새 회칙 집필 가운데 벌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형제애의 절실함을 더욱 여실히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교종은 서로 다른 모습을 위해서는 정치, 경제 분야의 자기중심적 태도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불평등한 경..

다시 새기는 교황 요한 23세

다시 새기는 교황 요한 23세 김경집 1958년 10월 9일 바티칸 콘클라베(교황 선출회의)에서 의외의 인물이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신문은 새로운 교황의 가능성이 있는 추기경 20명을 뽑았는데 거기에 속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당시 선거에 참가한 추기경은 모두 다 합쳐 51명에 불과했는데도, 게다가 나이도 76세나 되는 노인이었다. 모두 깜짝 놀랐다. 당시 프랑스의 타르티니 추기경이 가장 주목받는 유력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첫 콘클라베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은 베네치아의 대주교 안젤로 론칼리 추기경이었다. 과반을 획득한 사람이 없어서 여러 차례 재투표 끝에 론칼리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이탈리아파와 프랑스파의 대립은 노골적이어서 자칫 추기경이 양분되어 교회의 ..

욕망과 불안의 시대 건너기

욕망과 불안의 시대 건너기 정다빈 "내 조건이면, 91년생 교사 만날 수 있어?" 인터넷 뉴스를 읽다 보면 종종 끼어드는 결혼정보회사의 광고다.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 옆에는 어김없이 청초한 얼굴의 여성이 웃고 있다. 여성을 위한 버전도 있다. "내 조건이면, 87년생 회계사 만날 수 있을까?" 역시 옆에는 해사한 얼굴을 한 내 또래 남성이 미소 짓는 사진이 뜬다. 소위 '결혼 적령기'라는 것에 들어섰기 때문인지 인터넷 광고 외에도 자기 회상의 회원으로 가입할 것을 권유하는 결혼정보회사의 홍보 전화를 종종 받았다. 뼛속까지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인 나는 이런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인 마케팅이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광고를 통해 세상의 욕망과 우리 세대의 불안을 엿보는 유익함도 있..

도로시 데이 영성센터 2021년 봄호

예수처럼 사랑하면 죽는다 한상봉 한시에는 신새벽 건너오는 바람이더니 세시에는 적막을 뒤흔드는 대숲이더니 다섯시에는 강물 위에 어리는 들판이더니 아홉시에는 길따라 손잡은 마을이더니 열한시에는 첫눈 내린 날의 석탄불이더니 열세시에는 더운 눈물 따라 붓는 술잔이더니 열다섯시에는 기다림 끌고 가는 썰물이더니 열일곱시에는 어둠 속에 떠오르는 둥근 빛이더니 스물한시에는 불바다 달려가는 만경창파이더니 스물세시에는 빛으로 누빈 솜옷이더니 스물다섯시에는 따뜻하고 따뜻하고 따뜻한 먼 나라에서 아름다운 사람 하나 잠들고 있다. 고정희 시인의 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사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겠지만,그분은 당신 모습을 저희에게 쉽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고정희 시인처럼 은유로 밖에 말할 수 없는 이가 그분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