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일꾼 CATHOLIC WORKER 156

도로시 데이 영성센터 2022년 가을호

예수님도 친구가 필요해 한상봉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요한 11,35)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딱 두 군데 장면에서 눈물을 보입니다. 한 번은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을 예감하며 우셨고, 또 한 번은 나자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하나는 공적인 눈물이었고, 또 하나는 사적인 눈물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

그래요 그대라는 소설을 쓰게 된 이유

그래요 그대라는 소설을 쓰게 된 이유 , 한상봉, 성서와 함께, 2022 사는 게 고달플 때마다,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으며 "괜찮다, 괜찮다."다독거려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덧날 때마다 입김을 불어주고, 말이 앞뒤가 맞지 않더라도 삶의 무게에 휘둘려 하소연할 때 "그래요, 그대"하며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다보면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자꾸 낮아집니다. 그래서 작은 친절에도 명치끝이 아릴만큼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치유를 받았다고 복음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래요, 그대 말이 맞아요."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율법과 전통을 넘어 한 사람의 슬픔과 고통으로 직진할 줄 알았던..

한 다리 건너면 다 가족이고 지인인데

한 다리 건너면 다 가족이고 지인인데 류근 아침에 들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는데 현관 문고리에 우유와 유산균 음료가 매달려 있습니다. 순간, 최근에 “요구르트 아줌마”가 된 지인이 생각났습니다. 중국에서 사업하다가 코로나 여파로 견디지 못하고 돌아와서 남편은 공사현장에 잡부로 나가고 부인은 우유라도 배달하자고 나선 것입니다. 요즘 중국에서 철수한 분들 가운데 이런 처지가 된 분들이 많다고 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인수인계를 보통 3주 이상 받는다고 하는데 전임자가 단 3일 동행한 후 손을 놓는 바람에 천애고아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달처 숙지가 아예 안 된 것은 물론이고 배달 카트조차 손에 익지 않은 상황. 하필이면 처음 보급소장이 된 30대 직원이 함께 나섰지만 둘 다 초보이다 보니 시각장애인..

아레오파고스 언덕 위의 사도 바오로

아레오파고스 언덕 위의 사도 바오로 양승국 신부 사진 캡션 예수의 유혹 By Otto Dix 가톨릭평화방송 TV 기획 프로그램 아레오파고스에 출연하면서 아레오파고스라는 단어에 새삼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레오파고스는 일종의 지명입니다. 고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낮은 언덕을 말합니다. 초창기 아테네 귀족 회의가 열리던 장소였는데, 나중에는 아레오파고스라는 말의 개념이 확장되어 회의 자체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아레오파고스 회원들은 왕의 자문위원회 역할을 수행했고, 행정, 종교, 교육 분야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이토록 대단한 장소 아레오파고스 한가운데 섰습니다. 당대 난다긴다하던 석학들과 당시 사회를 주름잡던 세력가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여러 첨예한 주제에 대한 토론과 비판의 전..

부서진 마음은 살아있다

부서진 마음은 살아있다 엄문희 By Otto Dix 오래 전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제목은 어떤 이의 이름이었다. 며칠 전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앞에서 야외 상영화가 있어서 새롭게 기억되었다. 그 영화에서 북미지역에 오래 전 부터 살았던 이들의 이르짓기 전통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모든 사물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인식하는 그들의 이름은 삶을 단정 짓지 않았고, 그래서 역동적 가능성과 연민이 있었다. 역사상 가장 최후까지 백인에게 항전했던 나바호족 추장의 이름은 [검은 잡초]였다. 어떤 여자의 이름은 그의 남편이 지어주었는데 [그 눈 속에 파란하늘과 하얀 구름]이었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부모나 어른이 일방적으로 짓지 않았다. 대다수 문화권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가 아이의 인생에 바라는 의..

우울한 시대, 설교는 끝났다

우울한 시대, 설교는 끝났다 김광남 1. tvN 주말 드라마 에 다운증후군 문제가 등장했다. 같은 드라마가 몇 주 전에는 고딩 임신 문제를 다뤘다. jtbc의 주말 드라마 의 남자 주인공은 호스트빠 마담 출신이다. 같은 드라마의 지류 한 곳에서는 애 딸린 홀아비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야기들의 전개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기도 하다. 요즘 교회에 가지 않는 주일에는 예배를 빼먹는다. 교회에서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 예배를 송출하고 있으나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주 충실한 예배자였던 아내조차 그러하다. 그런 우리 부부가 토요일 밤마다 시간을 맞춰 놓고 TV 앞에 앉는다. 내가 서재에서 일을..

오토 딕스, 우리들의 형제인 민중 예수를 그린 화가

오토 딕스, 우리들의 형제인 민중 예수를 그린 화가 한상봉 오토 딕스(Wilhelm Heinrich Otto Dix, 1891-1969)는 1891년 12월 독일 운터하우스에서 태어났으며, 철주조 노동자인 프란츠 딕스와 재봉사이자 아마추어 예술가였던 루이스 딕스의 장남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시를 썼다. 오토의 사촌 프리츠 아만(Fritz Amann)은 초상화 작가여서, 오토 딕스는 일찍 예술계와 접촉할 수 있었다. 15세의 나이에 오토 딕스는 조경 화가 칼 센프와 함께 4년간 견습을 시작했고, 센프의 작업장에서 딕스는 첫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1910년 견습기를 마치자 드레스덴 예술공예학교에 입학했으며, 초상화를 그려 지역 주민들에게 판매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공예학교에서 오토 딕스는 ..

어머니이신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다

어머니이신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다 헨리 나웬 연민의 하느님 참으로 기쁜 소식은 하느님이 멀리 있는 하느님이 아니며, 두려워하거나 피해야 할 하느님, 복수의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 때문에 아파하는 하느님이고 인간 투쟁에 전적으로 참여하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이다. 이분은 연민의 하느님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있는 하느님이 되기로 선택하는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우리와 함께 있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게 되자마자 우리는 그분과 새로운 친밀함의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연대해서 살고, 우리의 즐거움과 고통을 나누고, 우리를 옹호하고 보호하며, 우리와 함께 삶의 모든 것을 아파하며 살기로 투신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와 ..

그리스도교, 생선 비린내 나는 어부들의 종교

Book Review 그리스도교, 생선 비린내 나는 어부들의 종교 한상봉 , 돈 에버츠, 규장, 2007 인생의 깊이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혹시 예수님과 그리스도교가 그 해답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가 '가슴 뛰게 하는 진리'인지 '바보 같은 소리'인지 고민하면서 쓰여진 책이 한 권 있다. "당신이 직접 예수님을 보라."고 권하는 이 책은 돈 에버츠가 쓴 146쪽에 지나지 않은 작은 책 (규장, 2007)이다. 에버츠는 먼저 "예수가 누구인지?" 묻는다. 그리스도교가 예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야 말로 십인십색(十人十色)이 아닌가? 담배 피우지 않고 욕도 하지 않는 착실한 사람들에게 복을 준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르쳐준 온화한 예수님이 있는가 하면, 해방..

우정을 쌓는 <사춘기 문예반>,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우정을 쌓는 ,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박규옥 읽다가 덮어둔 장정희 선생님의 을 꼼꼼히 다시 읽었다.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이 책 속에 무슨 답이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상처 받은 선우는 또래 아이들이 칭찬하는 친구의 글을 위선적이라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로 현실을 왜곡시키는 억지소리라고 말하는 아이다. 그러면서도 문예반을 벗어나지 못한다. 선우는 문예반 아이들이 맹신하는 문쌤을 '사악한 교주'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카페에 글을 쓴다. "그의 치명적인 매력은 자신이 교주임을 모른다는 것, " 자신도 문쌤의 매력에 빠져 있지만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거기까지 읽고 한참 책을 펴지 않았다. 선우, 문쌤,내 얘기 같았다. 학교 작은 도서관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