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시대, 설교는 끝났다
김광남
1. tvN 주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다운증후군 문제가 등장했다. 같은 드라마가 몇 주 전에는 고딩 임신 문제를 다뤘다. jtbc의 주말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남자 주인공은 호스트빠 마담 출신이다. 같은 드라마의 지류 한 곳에서는 애 딸린 홀아비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야기들의 전개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기도 하다.
요즘 교회에 가지 않는 주일에는 예배를 빼먹는다. 교회에서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 예배를 송출하고 있으나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주 충실한 예배자였던 아내조차 그러하다. 그런 우리 부부가 토요일 밤마다 시간을 맞춰 놓고 TV 앞에 앉는다. 내가 서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내가 부른다. “여보, <블루스> 시작했어.” 그러면 쪼르르 달려 나가 TV 앞에 경건하게 앉는다.
목회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평생 교회에 다녔던 내가 보기에, ‘설교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설교자들이 이전보다 열등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세상이 바뀌어서다. 오늘날 삶에 관한 메시지는 세상 곳곳에서 말 그대로 분출하고 있다. 하느님과 특별히 더 가깝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메시지를 독점하던 시대 자체가 끝난 것이다. 세상보다 더 나은 메시지를 만들어내려는 노력 같은 걸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메시지의 독점’이라는 낡은 개념 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 오래된 꿈에서 깨어나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2.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전면 개정판을 다 읽었다. 1990년대 초에 초판을 한번 읽었으니 3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셈이다. 전문서적은 아니지만 20세기를 형성했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꽤 상세하게 보도하는 역작이다. 다 읽고 나서 서문을 다시 읽었다. 유시민은 인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역사의 발전을 예전처럼 확신하지 않는다.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을 집단적 의지와 실천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한 번의 사회혁명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인간 이성의 힘을 신뢰하지만 생물학적 본능의 한계로 인해 호모사피엔스가 스스로 절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항하는 청년’이 ‘초로의 남자’가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자들 덕분에 인간의 물리적 실체와 생물학적 본성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어 그러는지도 모른다.”
유시민은 역사의 미래를 확신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 자신의 미래도 믿지 않는다. 그는 10년 전에 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자신은 영생(永生)을 원하지 않는다고, 아니 더 정확하게 ‘영생이 싫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는다. 그 책에서 그의 결론은 이러했다.
“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가까이 온 만큼 남은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만큼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 애통함을 되도록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 이런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면서 잘 준비해야 그런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나는 그렇게 웃으며 지구 행성을 떠나고 싶다.”
불로장생이나 영생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이의 꿈이 아니다. 이처럼 어떤 이들은 개인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순순하게는 아닐지라도 개인과 역사의 종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의외로 꽤 많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이들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영생과 천국에서의 지복을 고리 삼아 그리스도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점점 더 설득력을 잃어가는 이유일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세속화 과정이 얼추 마무리된 세속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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