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일꾼 CATHOLIC WORKER 156

샤를 드 푸코, 사막에서 일으킨 고요한 시위

샤를 드 푸코, 사망에서 일으킨 고요한 시위 Charles de Foucauld(1858~1916) 나자렛에 가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이라도 기회가 닿는다면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주변에선 그리도 쉽게 가는 것처럼 보이는 성지순례입니다. 제가 아는 사제와 수도자들은 거의 다 가 보았다는 나자렛입니다. 예전에 한참 배낭여행이 유행이더니 요즘은 젊은 친구들도 쉽사리 길을 떠나는데, 정작 마음뿐인 나는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지요. 어쩌면 마음속에서 그리는 나자렛이 더 아름다울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수학여행으로 공주며 부여며 경주를 다녀와선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삼삼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사물의 실상을 본다는 것은 내 안에 진상을 묻어 두지 않은 상태에선 그저 티끌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내 마음속 갈..

도로시 데이 영성센터 2022년 여름호

혼자 남은 밤, 별 볼 일 없는 섭섭한 밤이 지나면 한상봉 잔나비 찐팬인 아내 덕분에 듣게 된 노래가 있어요. 제목은 이지만 약간 쓸쓸하고 가슴을 툭툭 건드리는 아픔이 느껴집니다. 최정훈, 참 곱게 생겼지만 이 가사를 지으면서 많이 아팠었구나. 생각합니다. 내 마음처럼 닿을 수 없는 사랑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를 최정훈은 "버려지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섭섭한 밤도 있어요 오늘도 그런 밤이었죠 창을 열고 세상 모든 슬픔들에게 손짓을 하던 밤 노래가 되고 시가 될 수 있을 만큼 그만큼만 내게 오길 하지만 상처가 무늬가 될 만큼만, 노래가 되고 시가 될 만큼만 슬픔이 내게 오길 기대하는 마음을 이해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도,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

Editor's Letter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도,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 "모든 인간은 풀고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오직 사랑만이 영원히 남는다. 그러므로 허망한 껍데기를 부러워하지 말고 영원히 스러지지 않는 덕행을 쌓는데 힘쓰라." (최원오, 분도, 2020)에서는 요한 크리스소토무스 성인의 ,라자로에 관한 강해>를 소개하며,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들은 저 세상에서도 부자 신문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묻는다. 인생은 한바탕 연극과 같고, 이승의 돈과 권력은 가면에 지나지 않다. 그러니 인생이 저물고 연극이 끝나면 우리 모두 무대 저편에서 부와 가난의 가면을 벗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부자와 권력자의 탈을 쓰고 사는 후안무치한 이들도 머잖아 그..

세상을 뒤집는 열정으로, 예언적 그리스도인

세상을 뒤집는 열정으로, 예언적 그리스도인 한상봉 , 브라이언 왈쉬, 새물결 플러스, 2010 "세상이 우리에게 가하는 고통 때문에 주여 , 우리가 배신하지 않게 하소서. 하느님, 당신의 자녀들을 그날에 대한 비전으로 축복하소서." -브루스 콕번- "그리스도인의 예언자적 비젼은 슬픔일 뿐 아니라 현재 역사의 종결에 대해 크게 애통하는 것"이라며,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희망하되 "뒷짐을 지고 기다리지 말고 우리 역시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 나라의 동역자로서 기다리자."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브라이언 왈쉬가 쓴 가 바로 그 목소리의 진원지다. 그리스도교의 예언자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왈쉬의 음성은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회복하다는 측면에서 귀 담아 들을 만하다. 왈쉬는 이렇게 먼저 묻는다. “그리스..

가객 한대수, 음이 앞서고 가시가 뒤 따른다

가객 한대수, 음이 앞서고 가시가 뒤 따른다 한상봉 (생각의 나무, 2006)라는 책에는 앞글에 두 명의 추천사가 따라 붙는다. 도움 김용욱은 한대수가 자유로운 영혼을 실어 노래한 두 곡을 소개한다.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또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도 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춘다면 ...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행복의 나라로)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님, 무명..

모짜르트,하느님은 음악이시다

모짜르트, 하느님은 음악이시다 한상봉 '생활하는 영성'을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왜 갑자기 '모짜르트'가 손에 잡혔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도통 음악에 문외한이기에 그렇다. 아마도 평소 존경하던 로버트 엘스버그가 지은 에서 독일신학자 칼라너가 모차르트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는지 모른다. 막상 분도소채 가운데 모차르트에 관한 두 권의 책,(칼 바르트, 분도소책 68권)와 (레기날드 링엔바하,분도소책 41권)를 읽으며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모차르트에 관한 찬사 일색일뿐 구제성이 결여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묵상집에 가까운 글을 보면서, 도서관을 뒤져서 몇 권의 책을 더 찾아 읽었다. 그제야 좀 모차르트의 얼굴이 좀 떠오를 듯하다. (제러미 시프먼, PHPNO, 201..

누구나 나만의 방이 필요하다

누구나 나만의 방이 필요하다 최현숙 고통의 기록에 대한 답 없는 의심 가난에 대한 관찰이나 경로 찾기가 단지 구경이나 간접체험 정도로 멈추거나 심지어 '대변' 따위를 명분 삼아 생활비를 벌고 필명도 얻는 것이라면, 남의 가난을 팔아먹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관음증이나 노출증 혹은 가학이나 피학 등 분열적이고 이율배반이고 뒤엉킨, 그래서 더 질겨 죽어서나 쓸모없어질, 힘줄과 신경줄이 자신 안에 있다. “나는 왜 가난과 고난을, 고통을 듣고 관찰하고 쓰는가? 아니 그 전에 쓰고 싶은가?” 이 의심이 이른 아침 황 노인을 확인하러 가는 미경의 동력이고, 자살예고일 수도 있는 문자를 읽으면서 무의식중에 솟아올라온 심란함과 설렘의 이유다. 이번 경우는 심란해서 더 설렌다. 까놓고 말해 ‘남’의 심란함..

이콘, 듣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이콘, 듣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한상봉 아이콘과 이콘 이콘(icon)은 영어의 아이콘처럼 우리에게 컴퓨터 관련 용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디자인이 예쁜 조그만 그림을 클릭하면 곧바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 아이콘의 특징은 '휴지통'아이콘이 실제 휴지통을 잘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일종의 기호이며, 원하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고리 같은 것이다. 중세미술에서도 이콘은 예수와 성모,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형상을 뜻한다. 아이콘 때문에 컴맹이라도 쉽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이콘 덕분에 글을 몰라서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중세 민중들도 교리와 성인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하느님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믿음인, 2007)에서 이진숙은 "컴퓨터의..

그레이시 모비처, 내 친구들 같은 성인들

그레이시 모비처, 내 친구들 같은 성인들 지나 크리스티안(Gina Christian) 청년 예술가 그레이시 모비처(Gracie Morbitzer)는 대한 룸메이트를 모델로 사용하고, 중고품 가게에서 구한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들에게 현대적인 새로운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의 (Moden Saints) 컬렉션에는 신자들에게 잘 알려진 리지외의 성인의 이콘이 등장합니다. 전통적으로 성인들의 초상은 유럽의 특징과 그 시대의 의상을 입은 다른 세상의 시선으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모비처는 상상력을 발휘해 이 성인들을 미국의 백인뿐 아니라 흑인이나 라틴계 인물, 원주민 등 다인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성인들은 튜닉 대신에 티셔츠를 입고 있으며, 머릿단은..

도로시 데이 영성센터 2022년 봄호

눈물의 성모, 거룩한 갈망 한상봉 by Margaret Adams Parker "한 어머니가 죽은 이들을 안고 있었다. 그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여기서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는 작가 그 자신입니다. 독일의 판화가이자 조각가인 케테 콜비츠가 만든 이 작품의 이름은 피에타입니다." 음악평론가 진회숙의 라는 유튜브 영상물을 보면, 처음에 한참동안 비를 맞고 있는 ‘피에타’ 조각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설명하는 멘트가 이어집니다. 진회숙은 1990년대에 베를린을 여행하면서 훔볼트 대학 옆에 있는 노이에 바헤(Neue Wache)에서 처음 케테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1945)의 작품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노이에 바헤는 본래 독일제국 왕궁의 경비초소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