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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도,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

모든 2 2022. 6. 25. 20:56

 

Editor's Letter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도,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

 

"모든 인간은 풀고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오직 사랑만이 영원히 남는다. 그러므로 허망한 껍데기를 부러워하지 말고 영원히 스러지지 않는 덕행을 쌓는데 힘쓰라."

 

 <교부들의 사회교리>(최원오, 분도, 2020)에서는 요한 크리스소토무스 성인의 ,라자로에 관한 강해>를 소개하며,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들은 저 세상에서도 부자 신문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묻는다. 인생은 한바탕 연극과 같고, 이승의 돈과 권력은 가면에 지나지 않다. 그러니 인생이 저물고 연극이 끝나면 우리 모두 무대 저편에서 부와 가난의 가면을 벗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부자와 권력자의 탈을 쓰고 사는 후안무치한 이들도 머잖아 그 두꺼운 철가면을 벗고 벌거숭이 민낯으로 주님 앞에 서리니, 그때는 배역이 아니라 오로지 행실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

 

교부들의 가르침은 가차 없이 인생의 본질을 꿰뚫어 발언한다. 그들은 진실 앞에서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요한 크리소토무스 는 황제권력 앞에서도 비판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설교 때마다 황실의 허례허식과 사치를 준엄하게 꾸짖었으며, 특히 에우독시아 황후의 허영심과 탐욕을 모질게 비판하였다.

“지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통치자들이 하느님께서 뽑아 세운 자들입니까? 그렇다면 저들이 제정한 모든 법률과 규정이 선한 것이요 따라서 이의 없이 복종해야 할 텐데, 과연 그렇습니까? 대답은 ‘아니’올시다. 많은 통치자들이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여 거대한 재산을 모으느라 백성을 착취하고, 저들의 악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처벌하며, 이웃 나라와 불의한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저들의 법이 그릇되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것에 불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최고의 권위는 땅의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입니다. 만일 이 두 법이 서로 충돌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하느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결국 요한에게 앙심을 품은 황후가 요청하여 열린 ‘참나무 주교회의’에서 요한은 주교직을 박탈당했다. 대성당에서 쫓겨난 요한은 콘스탄티누스 목욕탕에서 부활전야 미사를 거행하다가 군병들에게 연행되었다. 죽음을 예감했던 요한의 마지막 강론이다.

“머잖아,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형제들과 누이들을 떠나야 할 것 같군요. 하느님이 주신 일터에서 나쁜 사람들이 나를 데려갈 겁니다. 나는 지금 슬픕니다. 비통합니다. 화가 납니다. 하지만 절망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희망을 느낍니다. 이 희망의 원천은, 비록 내가 육신으로 형제와 누이들과 이별하지만 영으로는 결코 헤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를 입증하십니다. ...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 비로소 사도들은 깊은 가슴으로 그분을 알게 되었지요. 마찬가지로 내 육신이 형제와 누이들을 떠날 때 나는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게 그들을 알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느끼는 이 슬픔은 녹아내리고, 비통한 감정은 달콤하게 바뀌고, 분노에 찬 이 가슴 또한 어루만져지겠지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린 사랑을 깨뜨려 부술 수 없습니다.”

요한은 결국 아르메니아의 작은 마을로 유배되었고, 그래도 안심하지 못한 권력은 요한을 흑해 동쪽 해안에 있는 피티우스의 한 요새에 유배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요한은 넝마 조각으로 겨우 몸을 가리고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며 맨발로 걸어서 유배지로 가다가 탈진하여,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이라는 유명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었다. 407년 9월 14일이었다. 요한의 연극이 끝나면서, 천년만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것 같았던 황제와 황후의 연극도 막을 내렸다.

인노첸시우스 교종은 412년에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그의 유해는 438년 콘스탄티노플 사도교회에 묻힐 수 있었고, 1626년 5월 1일부터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 성가대 경당에 안치되어 있다. 요한은 죽어서 동방교부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이들 중 한 분이 되셨지만, 아르카디우스 황제와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황후는 역사 속에서 수치를 당했다. 하느님 앞에서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되었다. 요한 크리스소토모는 이렇게 말했다.

“무대에서 왕이나 장군을 연기하는 사람이 종종 하인이거나 시장에서 무화과나 포도를 파는 사람임이 드러나듯이, 부자도 이따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임이 드러납니다. 여러분이 그의 가면을 벗기고 그의 양심을 드러내며 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면, 그의 덕행이 상당히 빈곤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곧, 그가 세상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극장에서처럼, 저녁이 되고 청중이 자리를 떠난 뒤, 왕이나 장군 역할을 했던 배우들이 무대의상을 벗고 밖으로 나가면, 숨겨져 있던 그들의 모습이 모든 이에게 드러나고, 그러면 그들의 신분도 훤히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죽음이 찾아와 이 세상이라는 연극이 끝나면, 모든 사람은 부나 가난이라는 가면을 벗고 다른 세상으로 떠납니다. 모두가 각자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으면, 더러는 진실로 부유하고 더러는 가난하며, 더러는 고귀한 신분이고 더러는 하찮은 신분임이 드러납니다.

 

by Ade Bethune



이승에서 주교나 사제, 수도자였거나, 대통령이나 검찰총장이었다 해도, 하느님 앞에 나갈 때는 모든 계급장과 무대의상을 벗고 알몸이 됩니다. 오직 ‘사랑의 크기’만으로 하느님은 우리를 심판합니다. 하느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시니 죄 있는 자는 검찰이 없어도 기소되고, 그분의 재판정에는 어떤 사법 비리도 없습니다. 이승에서 맺은 정치-재벌-사법 카르텔이 힘을 잃고, 가난한 이들이 배심원이 되어 주님과 더불어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현실 파악이 안 된 부자는 저승에 가서도 쓸데없이 라자로에게 명령을 내리지만, 라자로는 아브라함과 더불어 복락을 누립니다. 이승에서 고난을 받았으니 저승에서는 축복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