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객 한대수, 음이 앞서고 가시가 뒤 따른다
한상봉
<올드보이 한대수>(생각의 나무, 2006)라는 책에는 앞글에 두 명의 추천사가 따라 붙는다. 도움 김용욱은 한대수가 자유로운 영혼을 실어 노래한 두 곡을 소개한다.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또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도 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춘다면 ...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행복의 나라로)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님, 무명 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바람과 나)
한대수는 자유롭게 춤추는 하느님, 그렇게 맘껏 자유로운 인간을 노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박정희 유신정권에서 나온 노래이기에 새삼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한대수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과거를 탄식하며 사과한다. 아버지는 <행복의 나라로>를 읊조리며 “제게는 밥 딜런의 나 존 레논의 보다 이 노래가 주는 북받치는 강렬한 감정이 더 깊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성가(Anthem)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한 대수는 “내가 왜 음악을 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어떤 자극이나 영감을 얻으면 나도 모르게 모래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정말 모차르트만큼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가 작곡에 대해 남긴 말 한 마디 인용한다.
“작곡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이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기사가 훌륭하다고 하지만 사실 좋은 음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가사도 무의미해진다. 가사 없는 훌륭한 음악이 많지 않은가? 클래식 심포니 대부분, 그리고 재즈와 뉴에이지 음악이 좋은 예다. 음이 인간의 몸매라면 가사는 옷이다. 일단 몸매가 완벽해야 무슨 옷을 입혀도 매력적이다.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밥 딜런이나 레너드 코헨의 문학적인 가사를 대중들이 중시하는데, 사실상 그들의 곡이 일단 완벽하다. 딜런의 나 은 곡 자체가 명곡이다. 말하자면 아름다운 몸매에 착 달라붙는 세련된 패션의 옷을 입힌 셈이다. 그러니 그들의 곡은 예술이 아닐 수 없다.”
말을 듣고 보니, 우리의 삶이 아름답지 않으면 그가 뱉은 언어 역시 아무리 거창해도 누추하기 짝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곡이 좋아야 가사가 돋보이는 것처럼, 내 삶이 반듯하다면, 나의 언어가 다소 거칠어도 사람의 마음에 아름답게 가서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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