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감춰진 그 마음] 67

자유 예찬

자유 예찬 / 한승구 사랑해서 아프고 사랑해서 힘겨우면 그 사랑 하지 말아야 할까 누군가는 사랑을 찾으려다 열정으로 산화했고 더러는 사랑을 갖지 못한 아픔으로 죽어갔다. 잃어버린 사랑을 끝내 찾을 수 없어 목마른 사랑에 눈물지었던 슬픈 사랑꾼들 사랑보다 더 크고 숭고한 가치는 없다. 우리를 병들게 했던 것이 사랑이라 해도 치유도 사랑의 몫이 아니었던가. 사랑의 힘으로 인간을 더 인간이게 했고 더 큰 이상의 나래를 필 수 있었으며 불만족의 현재를 살았어도 미래를 꿈꾸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지금 우리의 시들어 가는 사랑은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며 목숨을 건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피폐한 영혼은 사랑이 병든 탓이며 병든 사랑엔 인간의 존엄이나 존재감 따위는 없다. 사랑의..

광끼

광끼 / 한승구 무엇엔가 미쳐보지 않고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지 마라. 미쳐서 살다 생을 접은 그들이 부러워도 부족한 용기 탓에 미쳐서 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미치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그 세계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광끼를 가져보지 않은 자 광끼의 가치를 함부로 말하지 마라. 청각을 잃은 자에겐 세상이 고요할 수밖에 없고 시각을 잃은 자에겐 세상은 언제나 어두울 수밖에 없겠지만 세상은 고요하지도 어둠만 존재하는 곳도 아니다. 목표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그들을 광끼로 밀어 넣었고 그들의 에너지로 세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라. 자존감 없이 떠밀려 자신도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는 그렇고 그런 가벼운 존재이고 싶지 않다면 당신도 한번쯤 미쳐보라 떠밀려 가는 수십억의 숫자가 되기보다 그들을 떠..

일류와 삼류

일류와 삼류/한승구 이기려고만 하는 자 삼류 지식을 뽐내려는 자 삼류 물질의 가치만을 쫓는 자 삼류 품을 내어주지 않는 메마른 자 삼류 강자에게 숙이고 약자에게 이기려는 자 삼류 양심을 팔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삼류. 삼류가 넘쳐나는 삼류사회 삼류가 삼류만을 쫓는다. 스스로를 낮출 줄 모르는 삶 자기성찰이 없이 사는 삶 반목만 깊어져가는 삼류사회. 봄이다. 언 세상이 풀리듯 고형화된 삼류를 벗어 던지고 스스로 일류의 성숙한 삶을 지향해 봄은 어떨까 일류사회를 살아가는 만족을 더불어 즐기고 싶은 춘몽을 꾸어 본다.

일탈

일탈/한승구 일상으로 부터의 일탈을 꿈꾸면서도 스스로 만든 울타리 속에 구속된 삶을 사는 우리는 안주한 삶을 놓을 수 없는 용기의 부재로 선택을 포기하고 만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탈의 기회는 충분하지만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으로 망설이며 냉정과 열정이 둘이 아니듯 양면의 자신과 갈등하는 존재다. 일탈은 궁정의 선택이 될 수도 부정적 선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험이 없이 희생이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우리에게 친숙한 예언들이 선택한 삶이 그러했고 그들의 삶은 평범을 벗어난 일탈의 삶이었다. 그들이 일탈은 인류에게 던지는 화두었으며 평범과 두려움을 뛰어넘은 일탈의 선구자들이었다. 고독하고 힘겨웠을 그들의 일탈을 회자하며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그리고 우리에게 부재한 것이 용기가 아닐..

고립의 미학

고립의 미학/한승구 도심을 뒤로한 채 찾아든 적막한 산골 그곳은 포기와 체념을 배우는 고립된 곳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이나 좌절이 아닌 비움이라는 것을 알았고 비움에 따르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해와 용서 관용과 배려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은 일상적인 나로부터의 초월이자 고립의 미학이라 말하고 싶다. 걸림없이 누릴 것 같은 자유는 자유가 아닌 필연으로 받아 들어야 할 고독한 무원의 고립감이었고 더러는 비켜 살 수 없는 정신적 한계와 마주한 자아를 위로해야 했다. 산 속에서 나와야 숲을 볼 수 있고 산을 볼 수 있듯 우리의 삶과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 법이다. 비워진 만큼의 평화란 말은 아직도 요원하고 고립의 미학 속에서 여전히 과정을 ..

비움이 주는 평화

비움이 주는 평화/한승구 한 해를 정리하며 되돌아보면 세속의 격량에 휩쓸려 소중한 시간들을 잃어 왔다. 거대한 벽을 마주한 절망. 항변의 무기력함이 주는 분노는 이제 접자. 제각기의 영토에서 누군가는 과욕에 몰락하고 누군가는 탐욕의 꿈을 이루고 또 누군가는 청빈함으로 고달파도 세월은 유유히 흐르고 세상은 치유의 상흔 위에서도 언제나 건재하다. 사람을 탓하는 건 어리석은 일. 생성과 소멸의 이치 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들의 집착일 따름 인간사 모든 것은 시간만이 해결의 답이다. 나는 나의 영토에서 그들은 그들의 영토에서 서로 다른 꿈의 씨앗을 심고 가꾸어 갈 뿐이다. 그 꿈 역시 시간이 거두어 갈 헛된 망상에 불과할 테지만. 영원한 것은 없고 불사불멸한 것도 없다. 지금 누리는 것은 찰라에 지나지 않음..

지혜의 눈

지혜의 눈/한승구 연륜에 따른 행동지침이 없듯 세월이 반드시 인격을 부여하거나 지혜를 주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다듬어 가지 못한 인격이나 지혜는 흘려보낸 세월이 무색할 따름이다. 연륜이 어떠하건 간혹은 허점이 보이고 더러는 가벼워도 그것이 흠이 되지않는 지혜로운 사람이 귀한 세상. 지식은 자칫 넘칠 수 있으니 그런 지식은 독이 되기 마련이나 지혜는 넘칠 일이 없으니 덕으로 쌓인다. 지혜로운 이가 덕을 쌓으면 그가 곧 귀인이자 진인이다. 우리가 진인을 만나지 못함은 지혜를 볼 수 있는 눈을 뜨지 못한 자의 문제임을 인정하고 진아(眞我)를 위한 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 볼 일이다.

진리의 눈

진리의 눈/한승구 자기 자신의 욕심을 깨달아야 하고 분노를 벗어나려하면 진리에 눈을 떠야 한다. 사견에서 벗어나려면 부지런히 수행을 해야 하고 세상일에 매달리지 않으려면 자신이 하는 일에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함경의 한 구절이다 이 나라가 처한 작금의 상황에 지도자 국민 할 것 없이 새겨보아야만 할 구절이 아닌가 한다. 이 혼란의 근원이 탐욕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사견에서 벗어나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염화미소

염화미소/한승구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뜻으로 쓰여지는 이심전심,심심상인,교외별전, 그리고 세존께서 말없이 들어 보이신 연꽃에 미소로 화답한 가섭 존자. 이른바 염화미소의 장면이 있다. 지금 우리는 이와 같이 심오한 뜻은 아닐지라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자세만이라도 가져야 할 때라 여겨진다. 보이고 들리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감춰진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 그러한 성향이 심화되어 한 치의 양보 없이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형국,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부족으로 생겨난 부조화를 깨뜨리는 것은 역지사지의 자세다. 상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알고 합리와 진실에 이르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편협한 이념으로 눈 가리고 귀 막은 채 진실을 피해가는 어리석음 보다 염화미소가 주는 가르침이 무엇..

견지망월見指忘月

견지망월見指忘月/한승구 어리석음을 빗대어 말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본다는 뜻으로 쓰여지는 '견지망월'이다. 손가락이 달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 이라면 달은 내가 찾는 목적이다. 수단에 매달려 목적을 잃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것이다. 지나친 욕심으로 자신의 유불리를 먼저 내세우다 보면 판단의 오류를 불러오기도 한다. 타자의 올바른 충고마저도 귓둥으로 흘려보내고 자신의 주관만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보여주려는 것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과거의 잘못된 판단이 달이라면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현재여야 하지 않을까.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려고 하는 근시안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냉철하고 현명한 이성을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