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이 주는 평화/한승구
한 해를 정리하며 되돌아보면
세속의 격량에 휩쓸려 소중한 시간들을 잃어 왔다.
거대한 벽을 마주한 절망.
항변의 무기력함이 주는 분노는 이제 접자.
제각기의 영토에서 누군가는 과욕에 몰락하고
누군가는 탐욕의 꿈을 이루고
또 누군가는 청빈함으로 고달파도
세월은 유유히 흐르고
세상은 치유의 상흔 위에서도 언제나 건재하다.
사람을 탓하는 건 어리석은 일.
생성과 소멸의 이치 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들의 집착일 따름
인간사 모든 것은 시간만이 해결의 답이다.
나는 나의 영토에서 그들은 그들의 영토에서
서로 다른 꿈의 씨앗을 심고 가꾸어 갈 뿐이다.
그 꿈 역시 시간이 거두어 갈 헛된 망상에 불과할 테지만.
영원한 것은 없고 불사불멸한 것도 없다.
지금 누리는 것은 찰라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않고 살기로 하자.
어둠 짙은 적막한 산골
오랜만에 평온이 내려앉는다.
서당 한승구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하고 중요 무형문화재 제118호 이수자로서 단청, 개금,사찰벽화, 불화와 함께 통도사, 은혜사, 옥천사 등에 고승진영을 봉안하였고 국내외에서 18회의 개인전 및 초대전을 가졌다. 현재 경남 고성의 작업실에서 후학지도를 하며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