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 41

인연 따라 운명을 건져 올리는 황홀한 만남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31 이상기온이다. 아직 시월인데 한 번은 우박이 쏟아져 컴프리잎이며 배추잎에 구멍을 냈다. 준비 없이 겨울을 맞이해야 할 때 느끼는 당혹감을 겪으면서, 아이가 콧물을 흘리는 걸 보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렇게 추웠던 날 손님이 찾아왔다. 아내는 시골에 내려온 뒤 처음 찾아오는 후배 부부를 맞이하느라 부산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찾아온 손님들은 주로 방안에서 무릎까지 이불을 덮고 도란거렸다. 방은 그래도 아늑하고 따뜻하였고, 아이들만이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댔다. 결국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닭장으로 배추밭으로 끌려다녔는데, 바람이 거세다. 서울 근교 분당에서 온 그 집 딸아이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파카옷 자크를 채울 생각도 안 하고 ..

평등한 죽음, 저마다 뜨거운 절실한 가슴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30 열사흘 동안 늦은 장마가 왔다. 우울증 걸리기 쉬운 시간들이었다. 오줌을 아직 가리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빨래는 쌓이는데 햇볕은 감감 소식이 없었다. 고추밭엔 연일 내리는 비 때문에 먹이가 없는지 산비둘기 등 새들이 달려들어 풋고추든 붉게 여물어 가는 것이든 가리지 않고 부리를 갖다대어, 고추가 물이 차고 무지러져서 땅바닥에 질펀했다. 하늘이 개이자 마음이 바빠졌다. 이삭이 패기 시작한 논은 멧돼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성기게라도 울타리를 칠 수밖에 없고, 넘어진 고춧대는 세워줘야 한다. 그래서 새로 말뚝이 여럿 필요했는데, 마침 아랫마을 분이 논에 오리를 부리느라고 쳐놓았던 울타리를 걷어낸다면서 거기에 박았던 쇠파이프 말뚝을 뽑아 쓰라고 한다. 고마운 일이지만..

기형도의 생각 읽기, 상현달 같은 여자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9 몇 달 만에 서울 갈 일이 생겨서 가방을 챙기다가 읽을거리로 집어 든 책이 이었다. 1989년 봄소식이 들리는 3월 7일 새벽, 스물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어느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죽었다는 기형도 시인. 그의 시와 산문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이 쉽게 가르친 상식의 세계를 잠시 밀어내고 한여름에도 한겨울처럼 외투를 입고 가슴속 뻥 뚫린 구멍을, 윙윙거리는 찬바람을 응시하라는 전갈 같다. 기형도가 발견한 세상은 언제나 ‘인간의 겨울’이었고, 그나마 소망스러운 것은 겨울에도 ‘눈’이 내린다는 것뿐이다. 1985년 그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도 ‘당선소감’을 보면 삶이란 여전히 쓸쓸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당선연락을 받는 순간 그 어둡고 길었던 습작시절..

온마을에 비, 내일은 새싹이 돋을 거야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8 [비오는 날] , 유리 슐레비츠, 시공주니어,1994 올봄엔 비가 많이 내려서 가뭄 걱정이 없는가 했더니 유월 내내 ‘가뭄에 콩 나듯’ 비가 내렸다. 하늘에 기대어 짓는 5월 농사는 물 걱정 없이 치렀지만, 유월 가뭄은 당장에 샘물까지 말려버려 마실 물조차 염려하게 만들었다. 유월에 마지막으로 심는 고구마 모종은 때마침 한차례 내려준 비 때문에 간신히 심었는데, 물이 귀해지니 인심도 고약해진다. 얼마 전부터 쟁쟁하던 태양빛이 수그러들고 구름이 끼고 있었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월드컵 축구 8강전에서 우리나라가 스페인을 기어이 이겨버린 다음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축복처럼 내리는 비다. 그날 아침에 ‘가뭄 끝에 비’를 기념이라도 하듯이..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 - 27 ​ 사진출처=pixabay.com 가축을 키우자 하면 새로 얻은 목숨에 대한 환희와 더불어 상실의 아픔을 일상으로 경험하게 되는 모양이다. 내 손길이 닿으면 내 식구가 되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짐승에게도 정(情)이 쌓이게 마련이다. 산골에 들어올 때부터 3년 가까이 함께 살던 고양이가 지난 겨울 며칠 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증발해 버려 다시는 ‘이야옹’ 거리며 머리를 비비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마을에 갑자기 늘어난 개들의 등쌀을 이기지 못한 탓인지, 아님 제때에 밥을 챙겨주지 않는 주인에 대한 원망 때문인지 한번도 사람을 할퀴는 법이 없었던 온순한 우리 고양이가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아내는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아서 뒤척였고, ..

사는 게 다 죄짓는 것인가?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6 사진출처=pixabay.com 고사리를 끊으러 산에 갔다. 뒷산 숲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길이 끊어진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등성이를 오르면 어떤 묘가 드러나고, 그 주변엔 항상 고사리가 많았다. 햇볕을 받아야 돋아나는 고사리인데, 요즘은 인적이 드문 산속에 소나무와 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이런 묘 근처가 아니면 고사리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묘 주변엔 잡목들이 베어져 울타리처럼 넘어져 있어서, 이곳이 망자(亡者)의 영역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람은 죽어서도 자기 영역을 금긋고, 산 사람들은 죽은 자의 음덕을 되갚기라도 하려는 듯이 묘에 떼를 입혀 가꾸며, 앞자락엔 잔디를 심어 마당을 꾸민다. 그래서 죽어서도 삶을 누리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어느 ..

대숲에 가려진 집은 아늑했다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5 사진출처=pixabay.com 봄이다. 뒤꼍 쪽으로 낸 책방의 창문을 올해 들어 처음 열었다. 겨우내 두꺼운 천으로 바람을 막아두었던 창을 여니 숨통에 낀 때가 말갛게 씻겨 나가는 것 같다. 그렇게 좋은 아침이다. 항상 새해는 새로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지난 3년 동안 몸이 몹시 아프고 농사에 입문하고 아기를 키웠다. 도시에서 시골로 자리를 옮기고, 세상공부에서 마음공부로 생의 흐름이 나아가는 것도 느낀다. 책상 밑 내 발치에서 놀고 있는 15개월짜리 생명 결이의 눈빛과 옹알거리는 소리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작은 행복을 따뜻하게 감당하고 있다. 한 달 전에 둘째 형이 위암 판정을 받고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암(癌)이란 육적 생명이 빛을 ..

전사들의 신앙, 머리로 살피지 말고 몸으로 때우라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4 내가 천주교에 귀의한 것은 애초 내 의지가 아니었다. 처녀 때부터 신자였던 어머니는 내게 유아세례를 받게 함으로써 천주교회에 내 호적을 올렸으며, 기억이 닿는 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 성당에 다녔다. 미사 중에 의자에서 발돋움하면서 제단을 보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무당굿을 보는 것이 죄가 되니, 길을 가다 굿을 하거든 보지도 말고 귀를 막고 지나가라고 했다. 혈우병에 걸렸던 종배네 집에선 이따금 큰 굿판을 벌이곤 했는데, 딱 한번 기웃거려 본 기억이 날 만큼 난 순진한 아이였다. 어려서는 허약했던 탓에 학교 수업에 빠지는 날이 많았는데, 초등학교 6년 동안 주일미사를 빠진 적이 없었다. 판공성사 등 교회에서 요구하는 의무를 ..

어쩔 수 없이 닭을 키우기로 했다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3 시골에 살면서 아내와 뜻을 모은 게 하나 있었다. 짐승은 키우지 말자는 것이었다. 다만 서울에서 이사오던 날 한식구가 되어버린 고양이 한 마리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두 사람도 제대로 산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다른 생명을 양육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짓이라고 여겼다. 더군다나 짐승을 키우면 집을 비우기도 어렵고, 짐승의 먹이를 이웃에게 매번 부탁하기도 미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골생활 1년 만에 우리 삶 한가운데로 진입해 온 아기의 등장은 또 다른 생명을 받아들이도록 부추겼다. 아기가 이유식을 먹게 되면서 달걀이 필요했던 것이다. 두 해 전에 닭똥을 거름으로 쓸 요량으로 양계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집단으로 사육되는 닭의 처지가 가련했다. 로마 함대의 배..

줄포가는 길...김동주 어르신이 그리운 날

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2 사진출처=pixabay.com 날씨를 헤아릴 재간이 없다. 아침부터 처자와 함께 한껏 서울 갈 행장을 갖추었는데, 눈발이 거세어지는 바람에 때를 놓쳤다. 아내는 눈발이 날리자 오히려 마음이 들떴고, 어디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오자고 했다. 지난번 함양에 ‘풀빛’이란 별칭을 가진 벗을 만나러 갈 때도 눈발이 휘날리더니, 연신 먼길을 떠나려 하면 눈을 만난다. 점심을 지어먹고 나니 눈발이 그쳤고, 내친 걸음에 살살 언덕받이를 내려와 차를 변산반도 아랫녘에 붙은 줄포로 몰았다. 도로안내책자만 의지해서 떠난 초행이었다. 그곳엔 아는 수녀님이 살고 있었고, 그 참에 바다구경도 좀 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지도를 보니 임실―정읍으로 가는 길이 전주를 거쳐 김제―부안으로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