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6
사진출처=pixabay.com
고사리를 끊으러 산에 갔다. 뒷산 숲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길이 끊어진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등성이를 오르면 어떤 묘가 드러나고, 그 주변엔 항상 고사리가 많았다. 햇볕을 받아야 돋아나는 고사리인데, 요즘은 인적이 드문 산속에 소나무와 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이런 묘 근처가 아니면 고사리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묘 주변엔 잡목들이 베어져 울타리처럼 넘어져 있어서, 이곳이 망자(亡者)의 영역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람은 죽어서도 자기 영역을 금긋고, 산 사람들은 죽은 자의 음덕을 되갚기라도 하려는 듯이 묘에 떼를 입혀 가꾸며, 앞자락엔 잔디를 심어 마당을 꾸민다. 그래서 죽어서도 삶을 누리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어느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나 비석을 반듯하게 세운 묘소가 없다는 사실이다. 자손이 번성하면 조상에게 공덕을 돌리자고 먼저 묘소를 거창하게 꾸민다. 양지바른 곳에 석축을 쌓고 층층이 가족묘를 단장하는 사람도 있다. 묘 주변엔 나무를 심고 연마기로 갈아서 반짝이는 돌을 세우고 아들 손자 대대로 이름을 박는다. 망부석을 세워 사람 없는 산속에서 망자를 지키게 하고, 사람을 사서 묘를 돌보게 한다.
그러나 대대로 빈촌이었을 이 산촌엔 유세할 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거나 번성한 가문이 없는 탓인지 묘에 명패(名牌)가 없다. 공동묘지가 아니므로 어느 게 누구 묘인지 다들 아는 까닭에 따로 비석을 세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름은 살아서야 뜻이 있고 쓸모가 있지 죽은 다음엔 모두가 흙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봄볕이 깊어갈 즈음엔 자손들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들만이 묘의 주인을 헤아릴 틈도 없이 얼굴을 바꾸어 가며 다녀갈 뿐이다.
산속의 묘소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일종의 숨통이다. 얼굴에 얽혀드는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산그늘을 헤집고 다니다가 이 자리에 오면 주저앉아 담배도 한 대 피워 무는 여유를 찾게 된다. 페트병에 담아온 물을 마시고, 뚫린 하늘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발 아래 산들과 마을과 길을 잠시 넋을 내려놓고 바라본다. 산은 고요하고 사람은 조용하다. 시간이 속도를 늦추고 마음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순간에 스쳐가는 생각 한 점이 있다. 풀포기를 밟지 않고는 산을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창생이 다 하느님이 지으신 피조물일 텐데, 우린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목숨 붙여 살고 있는 생명을 신발로 뭉개고 있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은 그 길에 돋아났을 목숨들의 삶의 자리를 아예 원천적으로 박탈해 버리고, 사경을 헤매는 목숨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마음 부대낄 필요 없이 씩씩하게 가책도 없이 몸을 움직인다. 그러면 생각한다. 사는 게 다 죄짓는 것인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은 먹이사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먹이사슬이야말로 우주의 순리라는 편리한 생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밭을 갈며 잡초를 뽑아내며 어린 고사리를 끊으며 ‘먹이사슬’을 끊어내지 못하는 삶이 나를 억압한다는 심경에까지 이르곤 한다. 먹이사슬 속에서도 무수한 목숨들이 살며 사랑하고 다투면서 한 생애를 지켜내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발 아래 보이는 숲과 마을의 모든 것들이 ‘장엄한 슬픔’을 잉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창생의 온전한 해방을 기다리며 삶을 견디고 견딜 뿐 아니라 다른 생명을 낳고 키우고 돌보면서 창조를 거듭하고 있음을 가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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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못자리를 했다. 귀농해서 농사짓는 이들은 각자 알아서 산 흙을 구해다 모판을 만들고 제 논 한 귀퉁이에 못자리를 한다. 나는 우연하게 장에서 만난 산 아래 상오동 마을 분이 못자리를 따로 할 필요 없이 당신과 함께하면 어떨까, 말씀하시는 바람에 아랫마을로 내려가 동네분들과 못자리를 하게 되었다. 흙을 구하기도 쉽고 논을 갈거나 모내기를 할 때 도와주겠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 탓이었다.
우리집 논농사는 세 마지기, 그분 농사는 15마지기나 되었다. 그만큼 만들어야 할 모판도 많았지만 대여섯 명이 붙어서 하는 일은 그다지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이래야 할까 저래야 할까, 머리 굴리지 않아도 그분들이 하는 대로 따라 배우면서 하면 충분했다. 마을 분들과 어울려서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마을 앞을 지나가면서 가끔 자동차를 태워드리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정도에 머물렀던 사람들을 일 속에서 만나 이야기하며 몸을 놀리는 일은 이해관계를 떠나서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도 일이 많아서 좀 손해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늘 빚을 지고 산다는 생각이 들면 삶이 참 피곤하고 짜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보다 조금 더 몸을 부리고 마음 넉넉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이른바 정신건강에 이롭다.
봄이면 우리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작물을 키우는 데 열성을 보인다. 먹을 양식을 얻고 이래저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직장을 얻어 일을 하듯이, 시골에선 전답을 얻어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지으며 생명을 키운다는, 더 거창하게는 생명을 창조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실상 농사란 생명이 그 가진 생명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작업이지, 그 자체로 생명을 창조하는 일은 아니다. 더구나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이유도 농부가 작물을 키워 제 먹을거리로 삼기 위한 것임에야 농사가 그렇게 거룩할 게 없다. 게다가 작물에게 차려주는 식탁마저도 정상적인 ‘소박한 밥상’이 아니라 화학비료처럼 ‘영양제’를 던져주는 식이라면 작물들은 자라는 동안에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고, 다 자란 뒤에도 사람의 먹을거리로 개운하게 자신을 주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이나 작물이나 조금씩은 찜찜한 기운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몸이 있는 한 이런 악연을 어쩔 수 없이 계속 맺으며 살아야 하는가? 먹고 먹히는 관계를 청산할 길은 아예 없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상생(相生)’이란 말로 이런 악업을 말끔히 던져버릴 묘수가 있는 것처럼 여긴다. 서로를 살린다고 하는데, 크게 보면 생태계의 조절능력을 믿고 순환원리에 따라서 살면 창생과 그 안에 기대어 사는 인간이 상생관계를 이룰 수 있겠지만, 구체적 일상 속에선 무수한 동식물 또는 미물들과 벌이는 다툼을 피할 도리가 없다.
며칠 전에 논에 퇴비를 넣었는데, 마을 사람 이야기로는 그 정도 퇴비로는 질소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고생만 하고 수확은 보잘것이 없을 거란다. 세 마지기면 복합비료 세 포대만 넣으면 충분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적은 양이지만 그런 비료가 그렇게 효과가 크다니 놀랄 만하고, 그러니 사람들이 저마다 비료를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이라 생각하고 비료를 쓰라는 충고를 무시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재작년에 부려놓았던 닭똥 삭힌 것이 남아 있어서 그걸로 일단 대체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고민은 그쳤는데, 이 문제로 줏대 없이 흔들렸던 자신이 부끄럽고 얄밉게 느껴졌다.
내 밥상을 위하여 화학비료를 거절할 수는 있었지만 모내기가 끝나면 한 주일 안에 우렁이를 넣어 논바닥에 올라오는 잡초를 소탕해야 한다. 내 먹을 것을 훼손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말아야 농사꾼이다. 그러니 농사란 한편으로는 자연을 달래면서 한편으로는 자연과 대적하여 싸우는 일이다. 생존을 위해 겨루는 농사를 지으면서 생각한다. 살면서 지은 죄, 알고 짓고 모르고 지은 죄, 이 죄를 알아모신다면 제 무덤 앞에 버젓이 이름을 돌에 새겨 세우는 일은 낯뜨거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득 함형수 시인이 남긴 ‘해바라기의 비명’이란 시가 떠오른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빗(碑)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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