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4
내가 천주교에 귀의한 것은 애초 내 의지가 아니었다. 처녀 때부터 신자였던 어머니는 내게 유아세례를 받게 함으로써 천주교회에 내 호적을 올렸으며, 기억이 닿는 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 성당에 다녔다. 미사 중에 의자에서 발돋움하면서 제단을 보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무당굿을 보는 것이 죄가 되니, 길을 가다 굿을 하거든 보지도 말고 귀를 막고 지나가라고 했다. 혈우병에 걸렸던 종배네 집에선 이따금 큰 굿판을 벌이곤 했는데, 딱 한번 기웃거려 본 기억이 날 만큼 난 순진한 아이였다. 어려서는 허약했던 탓에 학교 수업에 빠지는 날이 많았는데, 초등학교 6년 동안 주일미사를 빠진 적이 없었다. 판공성사 등 교회에서 요구하는 의무를 빠짐없이 행하고, 가능한 친구들을 천주교로 입교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영세 대부도 많이 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부를 서는 건 적어도 피해 왔다. 대부란 영적 아버지이며, 갓 입교한 사람들이 신앙문제로 시련을 겪을 때 후견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나 자신의 신앙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신앙에 버팀목이 되어주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신학을 공부한다고 신앙까지 투철해지고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학도 하나의 지식이라면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는 자이다’라는 <준주성범>의 말씀처럼 신학을 공부할수록 신앙생활이 복잡해지고 고민거리가 늘어난다. 생각하면 할수록 모를 게 더 많아진다. 그래서 진리의 한 끝을 붙잡았다 싶으면 거기서부터 단순해지는 게 필요한 모양이다. 때로 단순무식한 신앙이 힘이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요즘은 시골 할머니들의 소박하고 절실한 신앙 속에서 생기를 느낀다. 무념무상으로 묵주알을 돌리고 앉아 있는 풍경이 아름답다. 마룻바닥에 이마를 맞대며 수백 번씩 절을 하면서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외는 절간의 보살님들이 거룩해 보인다. 머리로 살피는 신앙도 필요하지만, 몸으로 때우는 신앙도 귀중하다. 어차피 몸과 마음은 함께 가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간절한 만큼 정성이 깃든 만큼 소원이 성취되리라 믿는다.
그러던 참에 얼마 전 두 아이의 대부를 서게 되었다. 십수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선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은 수도회 소속으로 사제가 되기 위해 필리핀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는 선배인데, 조카들 대부는 꼭 내가 서줘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국제전화를 붙들고 실랑이 하기도 그렇고, 그 어머니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었다.
그 집안은 본래 개신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었는데, 선배가 천주교에서 사제품을 앞두고 있는 까닭에 가족들이 마음을 모아서 어머니부터 동생과 조카들까지 한꺼번에 천주교로 적을 옮기게 된 것이다. 본인은 외국에 있고, 생판 천주교를 모르는 가족들에게 길안내를 해주라는 명령이었다. 본래 열심한 분들이라 절차상의 것을 빼면 내가 도울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신심으로 따지자면 도리어 내가 그분들에게 기도를 부탁드려야 할 처지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인가 믿는 바가 있다는 말일 텐데, 나는 ‘진리를 향한 열망’을 잃지 않는 것이 신앙이라고 믿고 싶다. 성서의 말씀대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면, 진리는 참된 행복을 보증하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복을 빌 듯이, 절실하게 진리를 찾지 못하는 터에 ‘신앙인’이라는 말은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직 피가 뜨거운 탓일까? 수없이 허약한 근기(根氣)를 인정하면서도 진리를 그러잡고 치열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시들지 않는다. 내가 신앙인이라면 좀더 분명한 발걸음으로 생애를 담아내고 싶다.
마하트마 간디는 사티야 그라하(진리파지 眞理把持) 정신에 투철한 공동체를 꿈꾸었다. 간디는 자신의 믿음을 그가 세운 아쉬람의 규정 속에 ‘지상명령’이란 표현으로 분명하게 새겨넣었는데, 그 엄정함이 나의 나태한 신앙에 바늘을 꽂는 것 같다.
아쉬람 회원들은 가장 먼저 ‘진실의 맹세’를 해야 한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 거짓은 어떠한 것이라도, 설령 그것이 나라의 이익을 위한 것일지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진실은 어쩌면 부모나 선배를 거역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두번째는 아힘사(살생하지 않음)의 서약인데 “살아 있는 존재에게서 생명을 빼앗지 않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서약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손을 대서도 안 된다. 또 그들에게 악의를 품어서도 안 되며,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부모와 정부, 또는 다른 어떤 압제에 대해서도 절대로 그 압제자들과 충돌하지 않고 맞서야 한다. 진실과 아힘사의 서약을 한 사람은 사랑으로 압제자를 굴복시켜야 한다. 압제자에게 복종하지 않아야 하며, 불복종했다고 하여 처벌을 받으면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 압제자가 굴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밖에도 다른 여자는 물론이고 아내조차도 관능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동반자로서 정결을 지킬 것과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음식만 먹어야 하며, 정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용하는 것은 도둑질이며,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것을 금할 뿐 아니라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아무것도 간직하지 말아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전사(戰士)들은 명령이 떨어지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돌진한다. 그렇듯이 신앙인이란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여겨지면,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그 명령을 온몸으로 살아야 제격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신앙이 가장 위대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사실 진리는 단순한 것인지 모른다. 이를테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니 너희도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라. 그러면 만사가 형통하리라.” 세상의 잣대로 볼 때는 허튼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겠지만, 성서가 가르치는 진리의 요체는 이것이 아니던가. 이 사랑의 잣대로 만사를 읽어내고, 매순간 그 방향에 걸맞게 행동하기로 모질게 마음먹는다면 문득 열리는 ‘새 하늘 새 땅’이 있을 법하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갓 첫돌이 지난 아이가 삐딱하게 벽에 기대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본래 아이들은 척추가 반듯해서 항상 허리를 펴고 앉아 놀기 마련이다. 이 꼴을 보고 아내가 한마디 핀잔을 주었다. “아빠가 항상 삐딱하게 기대앉아 버릇하니까 아이가 따라 하지요!” 방에서 쉴 때 어깨에 베개를 대고 반쯤 누운 채 앉곤 하던 내 모습을 보고 아이가 저도 따라 해보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더니, 아이 앞에선 몸가짐도 여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아기를 보다가 심심할 때는 가끔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곤 했다. 그러면 아이도 덩달아 싱글벙글 좋아하며 몸짓을 하는데, 그후론 음악만 틀어놓고 앉아 있어도 아기가 혼자 춤을 추며 좋아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짓이면 뭐든지 배우고 따라 행동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예수의 제자라면 예수처럼, 부처의 제자라면 부처인 양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예수와 똑같이 부처와 똑같이 말하고 춤추고 노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아기가 걸음마 배우듯 비틀거리며 넘어지며 끝내 일어서서 의젓하게 걸을 때까지 다시 배우고 시작하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게 자녀의 본분이고 그게 제자가 된 도리다. 그게 잘 안 되니, 나의 신앙은 사춘기는 넘은 듯한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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