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22
사진출처=pixabay.com
날씨를 헤아릴 재간이 없다. 아침부터 처자와 함께 한껏 서울 갈 행장을 갖추었는데, 눈발이 거세어지는 바람에 때를 놓쳤다. 아내는 눈발이 날리자 오히려 마음이 들떴고, 어디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오자고 했다. 지난번 함양에 ‘풀빛’이란 별칭을 가진 벗을 만나러 갈 때도 눈발이 휘날리더니, 연신 먼길을 떠나려 하면 눈을 만난다. 점심을 지어먹고 나니 눈발이 그쳤고, 내친 걸음에 살살 언덕받이를 내려와 차를 변산반도 아랫녘에 붙은 줄포로 몰았다. 도로안내책자만 의지해서 떠난 초행이었다. 그곳엔 아는 수녀님이 살고 있었고, 그 참에 바다구경도 좀 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지도를 보니 임실―정읍으로 가는 길이 전주를 거쳐 김제―부안으로 들어가는 길보다 가까워 보여 그리로 길을 잡았는데, 지방도로를 따라가자니 눈이 채 녹지 않은 곳도 많았고 임실 운암호를 끼고 돌면서는 내내 거센 눈발을 감당해야 했다. ‘칠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김용택 시인의 <칠보에 오는 눈>이라는 시를 통해서 들었던 그 칠보였다.
"…차를 기다려도 차는 저 산모퉁이를 돌아오지 않고 이따금 눈보라만 하얗게 몰아쳐 온다. 때묻은 수건으로 머리와 귀를 싸매고 보퉁이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 시꺼먼 실장갑 낀 손으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큰물에 떼밀려 떠내려 온 해묵은 지푸라기처럼 기약 없는 차를 기다리다 지쳐 주름진 얼굴들이 하얗게 부서지는가. 손과 얼굴이 조금씩 조금씩 눈송이가 되어 풀풀풀 흩날릴 것만 같은데 기다리는 차는 오지 않고, 칠보에 눈만 온다…."
잠깐 차를 세우고 아내는 아기에게 분유를 주고, 창밖을 바라보니 칠보 땅과는 묘한 인연이 있을 법해서 마음이 먹먹하다. 그리고 폭설에도 안심이 된다. 칠보의 촌로들이 정류장에서 군내 버스를 기다리며 아득하게 바라보았던 하늘과 눈발이 오늘 이 하늘과 눈발을 닮았을까? ‘어둡고 낮은 하늘 끝으로 눈이 되어 사라지던’ 할머니처럼 눈 내리는 칠보에서 사람이란 만물의 영장,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다만 그 눈속에 언뜻 비어져 나온 잡풀과 다름없다. 이 세상에 이 우주에 중심과 주변이 따로 있을까 싶다. 아침이 되면 이슬이 빛날 때가 있고, 저녁이 되면 황혼이 천지를 물들이는 때가 있다. 여름엔 장대비를 막을 수 없고, 겨울엔 하염없이 대지를 덮는 눈발을 피할 도리가 없다. 모두가 때로 중심이고 모두가 때로 주변이 된다. 모든 게 서로 기대면서 용납하면서 박수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사진출처=불교신문(ibulgyo.com
줄포 수녀원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수녀님과 더불어 어딜 갈까, 생각하다가 개암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부안에 오면 순례 코스처럼 내소사에 가곤 했는데, 이번엔 말로만 듣던 개암사(開岩寺)를 찾은 것이다.
눈을 소복이 얹고 있는 느티나무를 지나 돌계단에 오르는데 목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그 돌계단 위로 올라설 때 느낌이란! 절 마당엔 웅장한 대웅보전이 서 있고, 뒤로는 눈 덮인 숲과 정상에 놓인 울금바위, 백제 무왕 때 창건했다는 이 절 마당에서 백제 사람들도 저 바위를 우리처럼 보았을까 하고 누가 탄성을 뱉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하는 염불소리를 가까이 들으며 우린 대웅전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눈 그친 산사의 투명한 햇살을 받으며, 이런 상황이 천년의 시공(時空)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 바닥에 여전히 빛나고 있을 어떤 것을 드러내 주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수녀님과 우리 아기와 우리 부부는 속으로 웃음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정갈하면서 따뜻한 웃음을 담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돌아오면서 우린 ‘영혼의 가족’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혈육이나 땅이나 시간에 상관없이 맺어진 의미있는 가족이 있는 게 아닐까? 평생을 살아도 내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있고, 한두 차례 만난 것밖에 인연이 없는데도 오랫동안 사귀어 온 것처럼 따습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이미 세상에 없는 고인이라도, 글이나 사진을 한번 보고도, 그 사진을 수첩에 꽂아두고 벽에 붙여두고 그가 나누어주었던 말을 적어두고 수시로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중국에서 인술(仁術)을 베푼 닥터 노먼 베쑨을 내가 가깝게 느낀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람을 가깝게 느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기질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성사회가 가르쳐 온 윤리도덕 교과서를 던져버리는 순간, 저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부르고 응답하는 영혼의 빛깔이 있기 마련이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라진 뒤까지 남아 있을 인연이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 가족 중에는 백제 사람도 있을 법하고, 미국이나 베트남 사람도 있을 법하고, 칠보나 광주나 대전 사람도 있을 법하다. 이승에서 직접 만나 가족임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평생 얼굴을 보지 못하더라도 좋은 기운을 알게 모르게 주고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만나도 처음처럼 싱그럽고, 처음 만나도 낡은 신발처럼 익숙한 영혼들이 있어서 알게 모르게 나를 살리고 나를 위로해 주며 생애의 먼길까지 동행이 되어준다.
며칠 전 이웃집에 마실을 갔다가 벽에 붙여놓은 기도문을 읽고 하도 좋아서 옮겨 적어 왔다. 수우족 인디언들에게 입으로 전해오던 기도란다.
"바람결에 당신의 음성이 들리고
당신의 숨결이 자연에게 사랑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수많은 자식들 중에 힘없는
조그만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이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눈이 오랫동안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만물을 내 두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열어주소서.
당신이 우리 선조들에게 가르쳐 준 지혜를
나 또한 배우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둔 교훈을
나 또한 깨닫게 하소서.
다른 형제들보다 내가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리하여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다할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 품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소서."
세상에 나 같은 녀석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참 외롭기 그지없다. 내 마음을 받아주는 이 없고, 내 뜻을 알아주는 이 없다고 여겨질 때 인생은 참 적막하다. 이웃들과 문제가 생기고 가족들과 불화가 생기면 제 삶에 여유를 찾기가 힘들고, 그래서 본래 먹은 생각과 다르게 더 강팍해지고 옹졸해지며 사나워지기까지 한다. 아니면 제 가슴을 파먹고 절망한다. 그러나 어딘가 내 영혼의 든든한 가족들이 살아 있음을, 그래서 내게 축복을 주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외딴 수도원에서 명상중에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처럼 우리처럼 어느 한때 절망했으나 새삼 밝히 세상을 살았던 어느 어른이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내 삶은 사뭇 달라질 것이다. 내 눈물 속에 어렸던 별빛을 천년 전 그 백제인도 망국의 한을 품고 바라보았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린 다른 시공을 살고 있지만 수우족 인디언들과 같은 기도를 욀 수 있다. 그들은 우리 영혼의 가족인 셈이다
김동주 미카엘 선생님은 2007년 1월 5일 선종하셨다.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20년간 활동하였다
언젠가 잡지 건으로 인터뷰를 했던 한 어른은 종이에 ‘기도 중에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이름을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어두고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성인호칭기도를 하면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라고 성인들을 낱낱이 지금 여기로 불러내듯이, 영혼의 가족들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힘을 주시라고 그 가족을 일일이 지금 여기서 기억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명단을 보지 않아도 수많은 그 이름들을 줄줄 외고 있는 그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이분은 오랫동안 천주교도시빈회 활동을 하시던 김동주 어르신이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이따금 추억 안에서 전언을 보내고 계신다.)
어제 읍내에 다녀와 보니 우편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어느 후배가 이철수님의 판화를 담은 달력을 보냈다. 달력 제목인즉 ‘좋은 인연’이었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기운이 솟는 걸 느꼈다. 그래 내년엔 좋은 일이 많이 준비되어 있을 거야, 그 일이란 좋은 인연이 솔솔이 맺어지는 것이겠지. 그래서 또 잠시 행복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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