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한승구
수업을 마치고 십여 리의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던 멀고도 먼 기억을 떠올린다.
그날의 하늘은 분명 연분홍 꽃 빛깔
화사한 햇살이 연분홍 꽃비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인적 없는 십여 리의 시골길을 따라
늘어 서 있던 까만 전봇대의 전선 위로
이름 모를 작은 새 한 마리
소년은 그 새의 울음소리를 따서 비비새라 불렀다.
산골의 적막함 때문이었을까.
휘파람을 부는 듯한 가늘고 짧은 새 소리가
유난히도 처연하여 아득한 절망이 담긴
슬픈 소리로 느껴졌었다.
소년은 작은 새가 날아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연분홍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나의 과거 지향적 성향은 추억도 재산인 양
자주 끄집어내어 보곤 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끄집어낸 기억 하나로
시공을 넘어 내 붓끝은 여덟은 살 소년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오늘처럼 내일도
추억으로 통하는 비상구를 나서서
과거 어느 시간 속에 머물러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