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48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8) 렘브란트 ‘탕자의 귀환'

ㆍ아버지의 부재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해 불행해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인간이 불행에 빠지는 건 ‘나’의 마음속 움직임을 주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 아우렐리우스의 말입니다. 불행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것일까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아버지의 부재(不在)입니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아버지가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울지도 못하게, 외롭지도 못하게 하는 거 아십니까? ‘탕자의 귀환’을 보았을 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선 울어도 되는구나, 외롭다고 하소연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 무엇보다도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진 아들의 영혼을 만져주는 아버지가 피로에 지친 아..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7) 수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

ㆍ남자들은 왜 그러는 건가요? 에서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습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금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금기는 지켜질 때 가장 안전하지만 지켜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의식은 금기가 깨지는 고통의 현장에서 성장을 시작하니까요. “나를 보려 하지 말라”는 것이 에로스의 금기였다면 에덴의 금기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여호와는 인간이 인식의 나무 열매를 먹지 않기를 애타게 원하셨던 걸까요? 혹 여호와는 인간 스스로 목숨을 걸고 그 나무 열매의 비밀을 알아가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니체가 말합니다. 인식의 나무 아래 뱀으로 누워 이브를 유혹했던 것은 신 자신이었다고. 아시다시피 에덴의 금기가 깨지면..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6) 루벤스 ‘잠든 에로스를 지켜보는 푸시케’

ㆍ사랑의 금기를 깨는 등불 주고 또 줘도 아깝지 않고, 받고 또 받아도 어색하지 않은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릅니다. 돈으로도, 힘으로도, 계략으로도 멈추게 할 수 없는 그 뜨거운 마법의 사랑을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의혹이지요. 사랑의 그림자인 바로 그 의혹! 에로스는 매일 밤 푸시케를 찾아간다고 했지요? 신랑이 무참한 ‘죽음’인 줄 알았던 푸시케는 환한 사랑을 만나 흡족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 ‘나’를 보려 하지 말라!”는 에로스의 금기가 지켜질 때까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루벤스의 저 그림, ‘잠든 에로스를 지켜보는 푸시케’가 다중적으로 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지 않으십니까? 우선 무장 해제하고 편안히 잠들어 있는 남자와 그 남자 곁에서 벗은 몸이 부끄럽..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5) 안토니오 카노바의 ‘에로스와 푸시케’

ㆍ세상을 등질 힘 사랑은 불입니다. 타오를 때는 진정시킬 수 없습니다. 다 타게 기다려야 합니다. 타오르면서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무늬는 그 자체로 춤입니다. 사랑의 춤을 출 때는 돈이나, 힘이나 계략으로는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멈추게 하지요? 저 아름다운 사랑의 춤을 추고 있는 남자는 사랑의 신 에로스입니다. 아무에게나 장난처럼 사랑의 화살을 날려 책임질 수 없는 사랑에도 빠지게 만드는 악동이지요. 사랑이 장난인 그는 스스로 사랑에 빠지는 일이 별로 없는데, 그가 사랑에 빠져 있네요. 에로스와 짝이 되어 사랑의 춤을 추는 저 여인은 누구지요? 그녀가 바로 인간의 딸 푸시케입니다. 아프로디테의 질투를 사서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여인입니다. 아름다움의 여신이 아름다..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4) 샤갈의 ‘거울’(1915)

ㆍ행복한 거울 아프로디테의 거울은 자아도취, ‘자뻑’의 거울이라고 했지요? 해리 포터의 거울은 소망의 거울이고, 샤갈의 저 거울은 행복의 거울 같습니다. 왼쪽 하단의 작은 여자, 보이세요? 편안하게 잠들어 노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그 여자가 보랏빛 톤의 신비한 거울을 평화롭고 따뜻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저 그림에서 저 작디작은 여자의 존재감은 대단합니다. 작품 전체에 훈기를 불어넣고 있으니까요. 저 여자가 없다면, 저 여자의 꿈같은 노란색 포인트가 없었다면 저 거울은 공허한 것이 신비하기만 했을 겁니다. 신비하기는 신비한데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신비 말입니다. 샤갈, 지금도 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지요? 나는 저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습니다. 평온히 잠들어 있는 저 여자가 자꾸 나를 붙드는..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3)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아프로디테’

ㆍ“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나?” 고흐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꿈을 꾸게 되지요? 벨라스케스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사는 게 좋습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세비아의 물장수’입니다. 신분의 관점에서 보면 물장수는 존재감이라곤 없는 천한 사람이지만, 삶의 관점에서 보면 그 물장수는 인생사 희로애락을 소화해낼 줄 아는 현자 같습니다. 기분 좋게 나이든 온화한 물장수가 주는 물 한잔을 받아 마시면 그것이 온 몸 구석구석을 돌며 생기를 실어 나를 것 같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출세한 화가입니다. 그가 그려준 초상화가 맘에 들어 특별히 왕이 곁에 둔, 궁정화가였으니까요. 보통 예술가의 출세는 부정적이지요? 물질적 풍요가 매너를 세련되게 할지는 모르지만 예술혼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할지도 모르니까요. 벨..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 클림트의 ‘다나에’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 클림트의 ‘다나에’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경향신문 입력 : 2011-01-09 20:59:51ㅣ수정 : 2011-01-10 02:37:52 혁명 같은 사랑을 꿈꾸는 여인 잠을 자고 있는 걸까요?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그녀는 꿈 같은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곡옥처럼 예쁜 자태로 사랑을 연주하는 여인,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긴 저 여인은 누굴까요? 클림트, 다나에, Gustav Klimt (1862–1918), Danae, 1907-08, oil on canvas, 77 × 83 cm, Leopold Museum, Vienna, 오스트리아 개인소장. 저, 세상을 바꿀 꿈을 꾸고 있는 여인은 바로 다나에네요. 과연 제우스와 사랑에 빠진..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1) 반 에이크 ‘수태고지’

ㆍ“어서 오너라, 은총을 받은 이여!” 모두들 숨이 멎는 것 같다고 표현했던 그림이 있습니다.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심장인 저 그림, 바로 반 에이크(Van Eyck)의 ‘수태고지’입니다. 많은 수태고지가 있으나 에이크의 수태고지가 빛나는 것은 천사와 마리아의 눈높이 때문입니다. 눈높이가 그들 관계의 온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천사는 대천사 가브리엘입니다. 가브리엘이 입고 있는 저 화려하고 화사한 옷, 한 번 만져보고 싶지요?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날개까지 저 섬세한 옷은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라기보다 영광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저 옷은 결핍도, 자만도 없이 충만한 존재의 외화(外華)입니다. 우리 속의 수호천사가 바로 저런 모습 아닐까요? 그 천사가 마리아를 향해 풀어놓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