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4) 샤갈의 ‘거울’(1915)

모든 2 2018. 8. 5. 11:32

 

ㆍ행복한 거울 

 

  아프로디테의 거울은 자아도취, ‘자뻑’의 거울이라고 했지요? 해리 포터의 거울은 소망의 거울이고, 샤갈의 저 거울은 행복의 거울 같습니다. 왼쪽 하단의 작은 여자, 보이세요? 편안하게 잠들어 노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그 여자가 보랏빛 톤의 신비한 거울을 평화롭고 따뜻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저 그림에서 저 작디작은 여자의 존재감은 대단합니다. 작품 전체에 훈기를 불어넣고 있으니까요. 저 여자가 없다면, 저 여자의 꿈같은 노란색 포인트가 없었다면 저 거울은 공허한 것이 신비하기만 했을 겁니다. 신비하기는 신비한데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신비 말입니다. 

 

  샤갈, 지금도 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지요? 나는 저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습니다. 평온히 잠들어 있는 저 여자가 자꾸 나를 붙드는 겁니다. 그 여자가 내뿜는 온화한 기운 때문에 거울 속 풍경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냥 봐도 거울은 사람에 비해 너무나 크지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비추는 거울이라 믿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거울의 테를 보십시오. 저 그림에서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이 바로 거울 테입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공을 들였나요? 사실 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거울을 보는 우리가 이상한 주문에 빠져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거울 속에는 램프가 켜져 있습니다. 램프를 비추고 있는 거대한 거울은 거울 자체가 생을 밝혀줄 램프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 램프의 보랏빛 빛은 희망일까요,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까 저 거울은 해리 포터의 거울을 떠올리게 합니다. 해리 포터 보셨습니까?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우연히 거울의 방에 들어가게 된 해리는 깜짝 놀라지요? 마법의 거울 속에서 꿈에서도 그리운 엄마, 아빠를 만났으니까요. 해리의 눈이 커지고 심장이 뜁니다. 상기된 해리는 친구 론을 불러 엄마, 아빠를 소개해주려 하지만 론이 거울 앞에 섰을 때는 또 다른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론이 마법학교에서 상을 받는 모습이! 그 거울은 바로 소망의 거울이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가장 절실한 것이 이미지화 되어 나타나는 거울이었던 거지요. 덤블도어 교수의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왔구나, 해리. 너도 이 소망의 거울에서 기쁨을 찾은 모양이로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이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만 보인단다. 있는 그대로 모습만 보는 거지! 이 거울이 보여주는 건 지식도, 진실도 아니다. 이 거울 앞에서 사람들은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때론 미쳐버리기도 해. 꿈에 집착하고 현실을 잊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소망의 거울은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내 인생의 부메랑입니다. 꿈에 집착하는 사람은 현실이 불행한 사람이고, 행복에 집착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헤세가 그의 시 ‘행복’에서 지적한 것은 아주 적확합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한 너는 /행복할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 /가장 사랑스러운 것들이 모두 너의 것일지라도. /잃어버린 것을 애석해하고 /목표를 가지고 초조해 하는 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른다.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 /목표와 욕망을 잊어버리고 /행복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세상일의 물결은 /네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너의 영혼은 마침내 평화를 찾는다.

 

  그러면 소망을 버리고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면 될까요? 아니지요. 해리 포터가 누리지 못한 부모의 사랑이 펄럭이며 날개를 펴고 다가와 해리의 심장을 파닥파닥 뛰게 했지요. 그때 해리를 알아주고 안아줘야 합니다.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 편하게 누리지 못한 것들이 가면이 되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함께 기원해주고 함께 춤을 춰줘야 합니다. 그것이 “누가 나와 함께 같이 울어줄 사람 있나요?”의 진실입니다. 


  거울 앞에서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침내 거울을 보지 않고도 편하게 잠들 수 있을 때까지! 거울 앞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을 때까지! 그래서 거울은 등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