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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갈증 / 한승구

고독과 갈증 / 한승구 지혜를 얻는 것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어렵다. 지식의 문은 언제 어디에서나 열려 있지만 지혜의 문은 스스로 열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결코 열리지 않는 문이다. 지혜가 부족한 박제된 사고는 합리적, 상식적 사고를 불러올 수 없고 외부적 요인에 의해 쉽게 흔들리고 휩쓸릴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 내린 결론에 대해 의심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지혜는 통찰력과 닿아 있다.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 비교와 관심, 근원과 본질에 대한 의심과 냉철한 판단력을 필요로 하지만 대개는 통찰력이 배제된 일반적인 결론에 천착하고 만다. 그것이 이른바 경직된 사고, 박제된 사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박제된 사고다. 더하여 허공과 같이 비..

새해 소망 / 한승구

새해 소망 /한승구 새해의 태양은 변함없이 세상을 밝히고 있건만 국내외 정세는 혼돈과 격량의 시기를 겪고 있다. 세계는 거대한 두 이념 간의 괴리로 총성 없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지구촌 곳곳엔 어떤 이유로든 총부리를 겨눈 전장이 펼쳐져 있는 우울한 실정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며 지적 능력을 가진 인류에게 있어 항구적 평화란 정녕 불가한 일일까. 송대宋代 정호가 읊었던 시 도인불시비추객 導人不是悲秋客 일임만산상대수 一任晚山相對愁 도인은 가을을 슬퍼하지 않는 나그네이니 시름은 저무는 산에 맡긴다.라는 말처럼 세상의 흐름에 초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찌 도인의 경지를 넘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울하고 암울한 그림자가 아무리 깊다 해도 수 많은 사람들이 갖는 새해의 소망이 담긴 희망이라는 또 하나의 태양..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 / 한승구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 / 한승구 희로애락의 반복된 일상이 인생이라 했던가. 모든 시작은 끝으로 향하는 것이니 끝이 없는 시작은 없다. 행과 불행이 영원한 것은 아니며 인생의 변곡점이라 여기는 순간도 지나고 보면 시작과 끝의 반복된 일상의 연속선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해를 마무리 지어야 할 지금의 자리에서 돌아보면 시작이 있었으니 끝을 맞이 하는 것뿐이며 한편으로는 희로애락의 반복적인 일상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지금껏 살아 낸 삶도, 앞으로 살아낼 삶 역시 이와 무엇이 다를까. 그런 관점에서 지나온 한 해는 우리가 살아낼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한 해를 돌아보며 그 속에서 각성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들을 찾아보고 삶이 비록 반복된 일상이라 해도 무언가 다른 모습의 삶을 꿈..

사순 제3주일 2024년 3월 3일(나해)

다 이루었다 / 손제현 마리스텔라(세종성요한본당) + 요한 복음 2,13-2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

207 / 김진영

207 / 김진영 주말 오후 카페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낸다. 한곳에서 중년의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를 즐긴다. 가끔씩 섹스라는 단어가 건너온다. 저편 원탁에는 남자들이 모여서 정치 얘기를 한다. 모두들 등산복을 입었다. 다른 곳 테이블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자주 건너온다. 나는 그냥 거리 풍경을 바라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오후의 햇빛, 부드러운 바람, 달리는 자동차, 자전거 타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무의미의 시간, 그냥 흘러가는 시간. 순간도 영원도 아닌 어쩌면 그 모두인 저무는 휴일 오후의 시간. 생이 농익어가는 셀러브레이션의 시간. 뫼르소의 시간. 니체의 시간―아 여기서 더 무엇이 필요한가. 「아침의 피아노」(2018, 한겨레출판)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부드럽게 일..

문향만리 202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