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락도공소(당진성당) / 그림 안종찬(바오로),2024년
+ 요한 복음 6,1-15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말씀의 향기>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저를 버리지 마소서' - 손은식 마르코 노인사목 전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축일’과 가까운 7월 마지막 주일을 ‘세계 조 부모와 노인의 날’로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올 해는 제4차를 맞이하여 시편 71편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저를 버리지 마소서’라는 주제 성구로 기념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10년 뒤 우리나라는 지나가는 사람 셋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이 될 거라 합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는 노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더욱 필요한 곳입니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나약해지는 육체와 함께 녹아내리는 촛농 같은 마음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홀로된다는 외로움과 고독감에 자신의 존재가 녹아내려감을 체험합니다. 교황님은 담화에서 버리는 문화와 노인을 사회의 짐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이런 노인을 더욱 괴롭히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끊임없이 소비하고 새것으로 바꾸는 소비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는 오래되면 ‘나쁜 것’, ‘바꿔야 할 것’, ‘무가치 한 것’,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해 버리려 합니다. 소비 중심의 가치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무가치하게 쓰고 버려질 구멍 난 침몰선을 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거대한 바다의 수면 아래, 누군가 내미는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고독의 불안을 안고 침몰해 갑니다. 그 마지막 순간 우리는 하느님께 이렇게 외칩니다.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저를 버리지 마소서’ 그래 서 교황님은 담화문에서 세대 간의 유대를 구축해 주라고 당부하십니다. 지면의 그림은 르누아르의 <물 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라는 그림입니다. 모든 사람이 웃고 기뻐하며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춤추고, 안고, 이야기 나누며 서로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밤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힘으 로 만든 집합이 아니라,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
성경에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루어진 소망은 생명의 나무가 된다.”(잠언 13, 12)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녹아내리는 촛농처럼 아픈 마음 한가운데에서도 남아 있는 소망의 불이 있습니다. 주님의 잔치에 모여들어 나누고, 춤추며, 먹고, 이야기하는 기쁨! 노년기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더 많은 관심과 유대가 필요해 보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나무가 우리 안에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해외 선교지 몽골, 그곳은
선교사의 기쁨 : 살아 있는 말씀
몽골에서 살고 있으면 많은 분이 걱정하며 기도해 주십니다. 몽골의 추위, 음식, 언어 등이 익숙하지 않아 불편한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몽골 생활의 어려움보다는 선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성경 말씀을 생생하게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겪는 여러 가지 상황을 예수님과 사도들이 복음 선포하는 모습에 비추어 생각하게 됩니다. 미사와 교리가 아니어도 자연스레 앉아서 하느님 나라와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때에 어떤 이는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흘려 듣는 이들도 있지만 또 어떤 이는 눈물을 그렁거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눈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신다고 해도 믿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해서 내심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몽골에서는 다양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아픈 사람, 학비가 없는 사람, 먹을 것이 없는 사람, 집이 없는 사람…. 현시대는 특별한 기적보다도 돈이 있으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에도 기댈 데가 없는 사람들 이기에 하느님의 기적 같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놀라운 섭리로 이들을 보살피십니다. 어떤 아이는 몽골 병원에서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하였지만 한국에서 치료를 받아 완쾌하였고, 사시였던 아이는 예쁜 눈을 되찾았습니다. 어떤 아이는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머물 곳이 없던 아이들은 따뜻한 집에서 웃음꽃을 피웁니다.
이처럼 기적 같은 도움이 신앙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꾸준함이 참 신앙의 길로 인도합니다. 열명의 나병환 자가 깨끗이 나았지만,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러 돌아왔던 한 명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길에 들어선 이를 보며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몽골에서 당신의 말씀을 선포 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며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 제겐 크나큰 기쁨입니다.
-노상민 토마스 신부 몽골 선교-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나의 가족들에게 - 박연숙 비비안나 / 대사동본당
지금 너무 마음 뿌듯하고 행복한 노인임을 새삼 느끼며 하느님께 감사드린단다.
나의 희망과 소망은 너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느님의 자녀되어 기도하며 서로가 사랑하고 이웃을 돌볼 수 있는 성가정이 되는 것이었는데, 벌써 그러한 모습에 많이 다가가 있음을 느껴 감사함이 크단다. 또 작은 일이라도 하느님 사업에 동참하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봉사로 노력하는 너희들을 볼 때 고맙고 마음 한 편이 기쁘단다.
난 마냥 너희들을 키우느라, 또 아빠일을 돕느라 그것에 매달려 동동거리다 다 늙어 버려 이제는 힘이 좀 딸린단다. 마음은 간절하나 나의 처지가 부족해졌음을 느낀다.
그래도 그때 그 시절 손자 손녀들을 포대기에 업어 데리고 다니면서 매주 레지오도 하고 크고 작은 성당일에 나름의 열성을 다하여 힘닿는 대로 봉사했던 것 같다. 내 등에 업혀 레지오를 같이 했던 우리 손주들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바쁜 학교생활 중에도, 또 사회생활 중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니 이 또한 참 기쁘단다.
이렇듯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에 모두들 소홀히 말고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 주길 바란다. 밀알 하나가 죽어 많은 열매를 맺듯 내가 먼저 밑거름이 되는 마음으로…
또 너희 모두가 성경 공부와 성경 필사 등을 자진해서 하고, 그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전례 봉사 등 힘닿는 대로 활동하는 모습들을 칭찬하고 격려한단다. 나를 돌아보니 이제는 좀 시간이 여유로워서 봉사하고 싶으나 힘이 받쳐 주질 않는구나. 항상 주님이 필요로 하실 때, “예, 여기 있습니다.” 하며 다가가 봉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고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너희들이 되어 주길 바란다.
엄마는 이러한 너희들을 보며 내 기도가 허사가 아님을 느낀다. 항상 주님께 저희 가정이 작은 성소를 이룰 수 있도록, 성가정을 이루도록 기도드렸는데 모든 걸 허락해 주심에 감사와 흠숭드린다.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그저 모두 건강하고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기를 빌면서 주님의 인도로 기도하며 각자에게 성경 필사본을 주었다. 너희에게 유산으로 대신한 나구나. 좀 부끄럽지만 후일 너희가 엄마 생각이 날 때 그 성경을 꺼내들 수 있다면 난 하느님 나라에서 더욱 행복하고 기쁜 미소를 지을 수 있겠지? 모두 5번의 필사를 했던 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나에겐 즐겁고 행복한 시간 이었고,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게 해주는 시간이구나.
사랑하는 자녀들아!
열심히 하느님 말씀을 새기며 순명의 정신과 봉사하는 마음으로 옆도 돌아보며 살아가 주었으면 한다. 고맙고 기쁘고 뿌듯하며 행복하단다.
들에 핀 꽃들도 돌보시는 주님께서 하물며 아버지의 자녀들이야 얼마나 사랑하시겠느냐? 하느님의 자녀답게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며 부탁한다.
행복한 엄마가
엄마의 행복열차 탑승 - 이종희 율리안나 / 반석동본당
사랑하는 아들 보니파스야!
네가 프랑스에 살게 되면서 떨어져 산 시간이 35년 이나 흘렀구나. 어느덧 엄마도 80살이 되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큼 될지 몰라 엄마 마음을 아들에게 전하고 싶어 펜을 들었다.
우리 가정은 세상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떠올리기조차 싫은 낭떠러지에 떨어진 상황에서 너희들이 먼 타국에서 느꼈을 절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구나. 그 와중에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시고, 남은 우리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었지.
같은 하늘 아래지만 각각 다른 나라에 살면서 혼자 덩그러니 울며불며 너희들도 모르는 죽음의 문턱까지 간 엄마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단다. 어느 누구도 엄마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을 때, 그동안 등을 돌렸던 성당을 찾아가 나도 모르게 성전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 보며 “하느님, 저 어떻게 살아요?”라고 울며 떼를 쓰며 답을 주시라고 하느님께 매달렸단다.
어느 날, 한참 울다가 십자가를 바라보니 가슴속이 텅 빈 것 같았고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단다. 그때 십자가를 바라보던 습관이 생겨 지금도 미사 중에 십자가를 바라보며 미사를 드린단다.
이제는 마음속 찌꺼기를 모두 떨쳐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위령봉사회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하느님 대전으로 인도하는 일에 사명감과 유가족에게 선교를 할 수 있다는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내가 먼저’라는 생각을 갖고 함께 봉사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고통의 시기가 없었다면 아마도 엄마는 하느님을 찾지 않고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엄마가 너에게 돈이나 명예를 유산으로 줄 수는 없지만, 오직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행복을 얻은 ‘신앙체험’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구나. 엄마도 네게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단다. 엄마가 네게 유산으로 남긴 신앙을 하나밖에 없는 귀한 내 손자인, 네 아들에게 물려줬으면 좋겠다.
이제 엄마 걱정은 하지 말아라. 타국에서 살아가는 두 아들 대신 하느님께서 반석동본당의 많은 교우를 엄마의 자매, 아들, 딸로 맺어주셨단다. 반석동본당 교우들 사랑 속에서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너희들은 엄마 걱정하고, 엄마는 너희들 걱정하는’ 것을 이제는 떨쳐버리자.
아들아!
먼 훗날 엄마 보고 싶을 때, 성모님 앞에서 투정도 부리고 성모님께 기쁨도 드리는 아들이 되어다오. 네 곁에 있어 줄 수 없는 엄마 대신, 네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너를 반겨주시는 성모님과 항상 함께하기를 바란다. 엄마는 하느님께서 안전 운전하시는 ‘행복열차’에 탑승하여 천국 종착역을 향해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 둘째 아들과 내 손자까지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 우리 가족이 하느님 안에서 만나길 기도하며~
2024년 7월, 행복한 엄마가
그네 - 김효숙 수산나 / 갈마동본당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오늘의 양식 말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산다고 한다. 또 꿀벌 중에서도 티비(벌의 종류)들만 사람처럼 자신들이 쓸 꿀 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 둔다. 그러다 곰한테, 체로키 한테 뺏기고 마는 것을…
나는 세상 것에 대한 명예와 학벌과 더 많은 허영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도 살았다.
로사가 아프기 전까지. 나의 사랑하는 딸이 건강을 잃었을 때 모든 것을 잃는 슬픔 때문에 예수님 앞에 엎디어 울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런 시간 속에서 예쁜 손녀가 태어났다. 기적처럼. 찬미와 감사의 시간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암흑에서 커다란 빛이 쏟아진 거다.
난 로사가 태어나고 기르면서 감사를 몰랐다. 주님의 선물임도 알지 못했다. 그냥 내가 낳고 기르는 나의 자식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시련을 맛보고서야 주님의 은총을 알게 되었다. 너무도 아파서 주님을 알지 못해도 이 고통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일상적인 빵도 시인의 식탁에 오르면 호밀밭의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난 이제야 포도주는 들판과 뜨거운 햇빛으로 변화하듯 지금 나에게 성체성사는 달콤한 감미로움과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시은아!
난 너의 늙은 친구이지. 공놀이도 하고, 그림책도 보고, 종이접기도 하면서 참 많은 행복의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자라서 넌 나에게 그네 타는 법을 알려 주었지.
내가 어릴 때 유난히 작고 어려서 나의 할머니 등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업혀 다녔으니 친구들과 하는 고무줄놀이, 그네타기들을 배울 수가 없었는데, 어느 여름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얼음물을 가지고 가서 너에 게 그네 타는 법을 배우고 흰머리를 날리며 공중에 오르던 날, 너무나 신기하고 기뻤다. 이렇게 작고 어린 너에게 그네를 배우고 네가 주는 사랑을 받으며 할머니는 너무나 기쁘고 충만했지.
내가 그동안 무엇의 노예로 살았을까 생각해 본다. 항상 무거운 무언가가 짓누르고 목마르는 갈증,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너의 어미를 키울 땐 알지 못했다. 하느님의 눈부신 축복이, 은총이 무엇 인지. 이제 언제나 내 곁에 계셨던 하느님을 뒤늦게 보게 되었어. 무거운 짐도 벗고 타는 듯한 목마름도 없는 내 영혼의 자유!
시은이는 하느님이 주시는 자유와 평화가 무엇인지 느끼며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너에게 그네 타는 법을 배운 할머니는 지금 기쁘고 행복하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7. 미사 중 성가에 대해서
미사 중 “성가(聖歌)”는 왜 중요하며,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가를 부르며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특히 미사 안에서 신자들은 하느님 아버지께 제사를 올리고 예물을 봉헌하는 동시에, 우리들의 목소리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마음을 봉헌하고 찬양합니다. 곧, 성가는 마음을 높여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이렇듯 전례 안에서 성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성가의 중요성을 선포합니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에페 5,19).”
그렇기에 미사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로 봉헌하는 성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께서도 성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성가는 두 배의 기도입니다.” 동시에 우리 교회 안에서 성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온 교회의 음악 전통은 다른 예술 표현들 가운데에서 매우 뛰어난, 그 가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보고이다. 그것은 특히 말씀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성대한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흔히 악기로 반주되는 영감을 받은 시편의 가사와 노래는 구약의 전례 거행과 이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지속 발전시켜 왔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56항).”
교리서의 내용을 풀어 설명드리자면, 노래와 음악은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전례 행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전합니다. 세 가지의 기준은 “기도의 아름다운 표현”, “예정된 시간에 이루어지는 회중 전원의 일치 된 참여”, 마지막으로 “전례 거행의 장엄함”입니다. 곧 우리가 봉헌하는 성가와 예식이 일치함으로써 거룩한 기도가 되고, 거룩한 기도는 더욱더 아름다움으로 더 해지며 거룩한 전례로 드러납니다. 나아가 하느님 백성 전체를 일치하게 함으로써, 함께 모여 기도하는 오늘날의 전례를 더욱 장엄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거룩함은 고백록에 적혀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성당에 울려 퍼지는 찬미가와 송가와 감미로운 노래들을 듣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요! 그 노래들은 제 귀로 흘러 들어 제 가슴에 진리를 퍼뜨렸습니다. 저는 신심의 약동으로 고양되었으며,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 다. 그 눈물은 유익한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사 안에서 봉헌하는 성가는 전례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과 동시에, 내가 주님께 올려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주님을 찬양한다는 점에서 성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 니다. 성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교리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성가는 전례와 온전히 하나 될 때 비로소 주님께서 보시기 합당한 찬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배의 기도가 된다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을 기억하며, 미사 안에서 교우들과 하나 되어 주님께 올릴 수 있는 성가로 인도하는 것이 주님께 올리는 합당한 찬양임을 기억하며 우리의 목소리를 주님께 올려 드립시다.
궁금한 질문은 tjubo@djca.kr 메일 발송해 주세요!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부국장
성지를 걷다 - 합덕성당(1)
1. 교구의 맏이
합덕성당은 공세리성당과 더불어 1886년 박해 이후에 내포지역의 신앙 회복을 위하여 설립된 충청도 최초의 본당이다. 이후로 충청도 지역 복음화의 중심지가 되고 약 60만 평의 농지에서 경작한 곡식으로 교구의 살림을 담당하였다.
더불어 신자들의 헌신으로 현재의 솔뫼성지, 신리성지 등 주변의 성지들이 지금과 같은 위용을 갖출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교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고아원과 여자기숙사 등을 운영하며 지역의 복음화와 가정의 성화를 위하여 지역에 공헌해 왔다.
- 글. 그림 합덕성당 -
글로 만나는 성화
조반니 디 파올로의 천지창조와 낙원 추방
조반니 디 파올로, 천지창조와 낙원 추방,1445년,메트로폴라탄 미술과, 뉴욕
그라치아의 조반니 디 파올로(Giovanni di Paolo di Grazia, 1403-1482년)는 주로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그는 단테의 글을 비롯한 필사본의 화가이자 삽화가였고, 15세기 시에나파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하나였다.
조반니 디 파올로는 1445년에 ‘천지창조와 낙원 추방 (La Creazione e la Cacciata dal Paradiso)’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원래 이 작품은 시에나에 있는 성 도미니코 성당에 설치된 제대의 최상단 일부이다.
화가는 이 그림의 왼쪽 부분에 하느님께서 12명의 케루빔에 의해 지지가 되고, 후광에서 분출되는 황금빛 광선은 하느님의 의지를 갖는 힘을 시각적으로 드러냈 다. 그리고 인류의 선조를 가리키고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원형 지구본을 묘사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우주론에 관한 중세적 관점이다. 지구본 핵에는 7개의 원-행성으로 둘러싸인 4가지 요소인 물, 공기, 흙, 불이 있다. 지구본 중심의 황색의 지구는 흙이며, 그 땅을 감싸고 있는 연초록색은 물을 상징 한다. 지구를 감싸는 붉은색 링은 불이고, 그 뒤의 푸른색 링은 공기를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황도대는 시간과 공간 밖에서 물리적인 세계와 하느님이 머무는 천공을 나누는 최초의 모빌이다.
그리고 이 그림의 오른쪽 부분은 꽃이 만발한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아담과 이브가 천사에게 쫓겨나고 있다. 황금 열매를 맺는 일곱 그루의 나무가 있는 배경과 오른쪽 아래로 산에서 내려와 계속 흘러가는 낙원의 4개의 강이 있는 무대 앞부분으로 구성된다. 이는 4대 복음서를 상징하며, 이는 인간을 구원 할 네 가지 덕을 가리킨다. 왼쪽과 오른쪽 부분과의 관계는 안과 밖, 용기와 내용물 사이의 특별한 연속성을 가지면서, 오른쪽 장면은 왼쪽의 합성 도식과 비교해 확대경으로 본 장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준다.
그림에서 흥미롭고 중요한 점이 있다. 하느님의 오른손이 가리키는 황도12궁은 12시인 양자리(3월 21일 ~4월 19일)와 13시의 황소자리(4월 20일~5월 20일) 중간이다. 이 기간에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이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조반니 디 파올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발생한 인간의 원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육화)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모두 구원받게 되었다는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 줌과 동시에, 우리도 이 신비에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권영명 안드레아 신부
내포교회사연구소 부소장 겸 솔뫼 교구역사관 관장
제 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전대사 교령 발표
" 다 늙어 버린 이때 저를 버리지 마소소"를 주제로 거행될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2024년 7월 28일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에 전 세계에서 거행되는 다양한 예식에 진정한 참회와 사랑의 정신으로 참여하는 조부모, 노인, 모든 신자에게, 그리고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도 대리 기도의 형태로 적용될 수 있는 교회의 천상 보화인 전대사를 일반 조건 아래 은혜로이 수여한다.
이 자비의 법정은 도움이 필요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연로한 형제자매들을 방문하여 충분한 시간을 보낸 신자들에게도 같은 날에 전대사를 수여한다. 마찬가지로, 연로한 병자와 그들을 돕는 이들과 중대한 이유로 집을 떠날 수 없는 모든 이가 모든 죄를 멀리하고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세 가지 일반 조건을 충족하려는 지향으로 이날의 거룩한 예식들에 영적으로 일치하여, 특히 여러 예식이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해서도 전해지는 동안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자신들의 기도와 삶의 슬픔과 고통을 봉헌하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본 내사원은 교회의 묶고 푸는 권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 것이 목자의 사랑으로 더욱 쉬워지도록, 고백을 들을 적법한 특별 권한을 갖춘 사제들이 너그럽고 준비된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거행할 것을 간곡히 권고한다. 이 교령은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에 유효하며, 이에 반대되는 규정은 모두 무효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소식에서 발췌-
육류 소비와 환경 문제
+ 찬미 예수님
복날이 되면 많은 분이 몸보신을 위해 육류를 많이 먹습니다. 먹거리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은 사실은 엄청나서 오늘은 육류 소비와 환경문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인류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육류 소비를 즐기고 있습니다. 육류 공급 방식은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 대형 슈퍼마켓들과 패스트푸드 회사들이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소의 방귀나 트림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자동차, 트럭, 비행기 등 교통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슷합니다.
2019년 유엔식량농업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의 15억 7,000마리의 소가 있는데 이들 소가 모여 한 나라를 이뤘다고 가정하면 이 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중국과 미국 다음으로 세계 3위 국가가 된다고 합니다.
공급 방식 또한 문제점이 있는데 공장식 축산시스템은 이른 시간 안에 번식을 위해 항생제를 사용하게 되고, 항생제 사용에 따른 가축 사육 과정에서 나오는 폐수는 수질과 토양을 오염될 시킬수 밖에 없습니다.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동물들을 좁은 장소에 가두어 기르는 방식인 이 시스템은 아마존과 같은 열대우림을 파괴해 가축을 기르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커집니다. 이런 열대우림을 훼손함으로써 그곳에 처음부터 살아오던 동식물의 파괴 또한 심각한 생물 다양성의 훼손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식생활 문화 역시 앞으로는 육류보다는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 글, 사회 복음화분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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