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당신이 없는 세상을 듣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종교학자 마크 C. 테일러는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몇 개나 되는 사진 상자를 찾게 된다. 상자에는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이 다 들어 있었는데, 가족의 스냅사진, 제법 격식을 차린 인물 사진, 가족의 휴일이나 여행을 담은 슬라이드 등 매우 다양했다. 게다가 부모님이 태어나기 전에 누군가가 찍은 출처불명의 사진들도 제법 있었는데, 저자는 그런 오래된 흑백 사진들 속에서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과거의 침묵과 '모든 것의 기원이자 종말인 침묵 너머의 침묵'을 보게 된다. 뭐랄까, '사진예술의 현상학' 혹은 '침묵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각성 체험을 한 샘이다.
'사진이 매력적인 이유는 어떤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시간을 고정시키는 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미지들을 만드는 점진적인 과정에 있다. 기억에 남을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활기차고, 피할 수 없는 미스터리로 만들어 버리는 많은 우연과 모순, 역설이 필요하다. 빛과 어둠,양과 음, 존재와 부재, 개방과 폐쇄, 근접성과 거리감, 고정성과 유동성, 형태 있음과 없음 사이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28쪽)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발화의 취지는 철학의 언어가 야기한 오염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지만,아이러니하게도 현상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침묵마저도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맛볼 수 있는 그런 객체가 된다. 저자는 침묵이 단순한 무음이나 무성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다성적'이라고 강조한다.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수전 손택 같은 사상가들이 사진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 이유도 사진이 가진 우연과 모순과 역설을 포함한 '침묵의 현상학'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저자는 침묵의 두 양식으로 프로이트가 인간의 삶의 근간이라고 생각했던 두 기본적인 욕망인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와 에로스(삶의 본능)를 강조한다. 이합 하산이 말한 침묵의 긍정적인 형식과 부정적인 형식도, 수전 손택이 말한 시끄러운 침묵과 부드러운 침묵도 바로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구분과 서로 맞물린다. 침묵의 두 양식이 타나토스와 에로스라는 점도 의미있는 분석이지만, 나는 일차적으로 소음은 네크로필리아적이고 침묵은 바이오필리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네크로필리아가 파괴성과 죽음의 충동이라면, 바이오필리아는 생명애와 삶의 충동이다.
저자는 철학과 예술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침묵을 분석한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 하나가 바로 소음중독이다. 현대인의 일상은 하루종일 무수한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 소음 중독을 치유해 줄 유일한 치료약이 바로 침묵의 힘이다. 디저털 기술과 소셜 미디어 그리고 스마트폰은 소음이 디폴드 상태라, 오히려 사용자로 하여금 침묵을 불편해하고 침묵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 기본 능력은 상실케한다. 소음은 네크로필리아적이다. 다시 말해서, 소음은 삶에 대한 사랑과 살아있는 것에 끌리는 마음을 고사시킨다. 반면에 침묵은 바이오필리아적이다. 다시 말해서, 침묵은 파괴적인 것과 죽은 것에 대한 사랑을 해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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