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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읽다/민병도

모든 2 2023. 2. 23. 20:23

 꽃을 읽다

 

 우수 경칩 다 지나고 이제 완연한 봄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날씨가 사나워졌다. 꽃샘추위라고 넘기기엔 그 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화실 담장에 기대어 피던 매화가 걱정이 되어 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며칠 전부터 한 잎 두 잎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이 마치 내 마음에 봄을 나누어주는 꽃도장(花印)처럼 여겨져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꽃들은 일그러지거나 냉해로 인한 상처를 드러내지 않은 채 엷은 햇살을 보듬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것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환상에 젖기도 하고 어떤 것은 지나간 혹한을 견뎌낸 자신을 대견해하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또 어떤 것은 오늘 만난 이 눈부신 세상을 자축하는 모습이고 어떤 것은 내일을 향해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하였다.

 

  주변의 작은 수조에 고인 물은 깡그리 꽁꽁 얼었는데 저토록 얇은 꽃잎들이 얼지 않다니…. 어쩌면 그것은 생명이라는 이름에게 부과된 채무를 갚는 지극한 보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득 만해 한용운 선사가 읊조렸던 “따순 볕 등에 지고 유마경을 읽노라니/ 어지러이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두어라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라는 시조《춘주春晝》한 구절을 떠올렸다. 그렇다. 진리를 구하여 진여眞如에 접근하는 길이야 유마경을 읽는 일과 바람에 흩날리는 꽃을 살피는 일이 무엇이 다르랴.

 

  가끔씩 벌이 날아오는 매화꽃 가지 아래 나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았다. 희미한 바람에 실려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꽃향기에 젖는 그 잠시 동안에도 먼저 핀 꽃송이로부터 어떤 이파리들은 이미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이 저렇게도 급할까’하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흠칫 놀라 얼른 그 생각을 고쳤다. 순리에 얹혀진 숭고한 자연 앞에서도 나는 내 알량한 욕망의 잣대로 꽃을 읽으려 했기 때문이다.

 

  꽃은 꽃을 버려서 열매를 얻는다는 사실을 놓쳤던 것이다. 빼앗기는 괴로움보다 내어주는 보시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 부처님의 가피인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을 버리지 않고 어찌 내일을 만날 것인가. 꽃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열정을 다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윤회의 수레바퀴에 얹힌 자기 생명의 빚을 되갚는지도 모른다. 더러는 화려하게, 혹은 소담하게 피는 잠시의 순간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한 송이의 꽃에는 지나간 백년의 시간이 잠들어 있고 다가올 천년의 시간이 대기하고 있다. 아무리 오래 전에 지나간 시간이라 할지라도 그 시간의 근원이 없었다면 꽃은 필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멀리 있는 내세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그 시간에로의 길이 트여 있지 않으면 꽃은 쉬이 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꽃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찰나의 이면에 숨겨진 시간을 읽어 들어가면 무한한 길이와 광활한 넓이로 존재한다. 거기에는 이 땅에 생명이 존재한 태초로부터의 모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어우러져 하나의 눈부신 화두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얇은 꽃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갔다. 떨어지는 꽃의 마음에는 결코 원망이라는 단어가 내장되어 있지 않았다. 설사 올해가 아니더라도 또 내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네가 있기 때문이다. 꽃에게는 외로울 시간이 없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과의 또 다른 만남을 소중히 하는,자유로운 시간이 있을 뿐이다.

 

  꽃은 가장 화려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금방 자신의 자리를 처음처럼 되돌려놓는다. 만약 물이, 바람이, 햇살이, 공기가 원상으로 복구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어찌 되겠는가. 또한 꽃은 어떤 경우에도 불만을 말하지 않고 어떤 물음에도 화려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가만히 자신을 흔들어 줄 뿐이다. 꽃은 결코 슬픈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리고 불행을 입에 담지도 않는다. 아무리 세찬 비바람도, 거친 눈보라도 따스한 햇살과 다름없는 사랑임을 알기 때문이리라.


  하기야 사람의 시간도 꽃의 시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바람을 잘못 읽어 스스로 움츠리면 만개할 수 없고 자연히 튼실한 열매도 희망찬 미래도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니면 너무 미련스럽게 방치하여도 꺾이거나 휘어져 합일의 시간을 놓치기 십상이다. 절실한 시기에 나타나고 절묘한 시기에 사라지는 꽃의 모습에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


  요즘 우리는 지식과잉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의 소화력과는 상관없이 너무 많은 지식으로 심각한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지식을 쌓아 백과사전이 된다 해도 정작 그 지식을 활용할 지혜를 함께 지니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제법 많은 벌들이 날아와 윙윙거리는 꽃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졸시 ‘한때, 꽃’을 되뇌어 본다.


네가 시드는 건
네 잘못이 아니다
아파하지 말아라
시드니까 꽃이다
누군들
살아 한때 꽃,
아닌 적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