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신성리성당 분천리공소
충청남도 예산군 분천리 285-44
+ 루카 복음 21, 5-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이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말씀의 향기>
성당의 빈자리를 닦으며- 오명관 베네딕도 주교좌 대흥동 주임
우리는 지금 코로나라는 전염병과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를 겪고 있습니다. 내란과 전쟁으로 울부짖는 이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고,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도 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표징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과연 이런 모습들이 종말이 다가왔다는 표징들일까?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재난의 시작일까? 분명한 사실은 하루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이, 내 인생도, 인류도, 역사도, 우주도 시작이 있었기에 끝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시작도 모르고 그 끝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두려움을 안고 사는 존재입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 두려움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두려움과 외로움, 경쟁과 차별은 경제 순환의 출발점이 된다고 합니다. 다툼과 분열을 부추겨 경쟁시키고, 끝내는 전쟁터를 만들고 무기를 팔아 돈을 법니다. 풍요와 쾌락, 차별과 경쟁의 장을 만들어 잠시 두려움을 잊게 합니다. 대신 그들은 돈을 챙기지요. 일시적인 망각일 뿐인데도 그 잠시의 안도감이 얼마나 멋지고 성공한 사람인지 부추깁니다. 신앙인조차 갈대처럼 흔들렸고 꺾였습니다. 신앙인이면서도 두려움을 잊고자 세상 주위를 기웃거렸고 세상 것을 즐겼습니다. 코로나 한 방으로 비어 버린 성당의 빈자리는 우리가 얼마나 흔들렸었는지, 얼마나 타협하고 살았었는지를 깨우쳐 줍니다.
내 인생의 죽음이든, 세상의 종말이든 분명 두렵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말라.”(루카 12,7)고 하십니다. 하찮은 머리카락조차 잃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는 분, 내 머리카락 숫자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분, 분명 그분은 나보다 더 나를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임이 틀림없습니다. 내가 너무 소중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은 그 사랑은 두려울 만큼 간절합니다.
신앙인이란 주님의 그 사랑 때문에 두려움을 넘어 생명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두려움과 절망을 조장하는 세상 한복판에서도 생명을 보존하고 사랑을 가꾸려 인내하는 사람들입니다. 부족하지만 가난한 이의 상처가 내 상처처럼 아파서 그들을 끌어안으려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죽음도, 종말도, 두려움도 주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당의 빈자리를 닦으며 기도합니다. 본래의 주인이 돌아와 앉기를! 어두움의 그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사랑을 다시 만나 함께 행복하기를!
<교구 전담 사목을 소개합니다>
세종시 장애인 복지관
찬미 예수님, 세종시 장애인복지관 윤용식 요한보스코 신부입니다. 제가 있는 복지관은 2012년 세종시가 출범한 해에 운영을 시작하였고, 2015년부터 세종충남 가톨릭 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을 위한 이용시설입니다.
저희 복지관은 세종시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2012년 복지관이 처음 개관하였을 때 전체인구 11만 3 천여 명, 장애인구 7,000여 명이었던 세종시는 10년이 지난 2022년 10월 현재 전체인구 38만 7천여 명, 장애인구는 12,800여 명으로 증가되었습니다. 세종시 지역은 계속해서 인구가 유입되고 있고, 유입되는 인구에 따라 장애인분들과 가족들이 원하는 욕구는 더욱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세종시의 도심지역에는 발달장애인이 많이 계시고, 조치원읍이나 면지역은 지체장애인과 뇌병변 장애인이 많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또한 12,800명의 장애인구수 중 65세 노인인구가 46.29%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통계자료를 분석하고 장애인분들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분들에게 필요한 프로 램을 제공하는 일, 또한 지역사회 안에서 취약계층에 있는 분들이 보다 나은 삶, 사람으로서 그 존엄함을 지켜갈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이 저와 우리 직원들이 함께하고 있는 역할입니다. 이에 따라 저희 복지관은 상담과 사례지원, 복지관에 오시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재가복지 지원사업, 장애 인분들의 사회참여를 돕기 위한 인식개선사업과 직업 지원사업, 장애가 심화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각종 치료지원 및 학습지원, 행복한 삶을 지원하는 문화여가 활동 지원,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가족지원 및 형제자매 지원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애덕과 사랑’은 살아가고 존재하는 방식이며 하나의 삶의 선택이라 말씀하시면서, ‘겸손과 온유와 연대감’ 말고는 이러한 사랑을 실천할 방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만이 아니 라, 끊임없는 욕망과 그 흐름 속에서 상처받고 좌절하는 가난한 이웃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몸이 아프거나 가난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존중을 받지 못해 우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존엄함을 훼손하지 않고, 지키고 보호하며 함께 걸어나갈 수 있는 공감과 동행이 필요합니다. 그가 착한 사마리아인이며, 예수님의 참된 친구일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그들 옆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동행하는 일, 모두가 행복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더욱 고민하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도움을 기꺼이 베풀어 주시는 교우 여러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발걸음도 함께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윤용식 요한보스코 신부 세종시 장애인복지관-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26. 미사 해설 -말씀 전례(2) : 말씀 전례의 의미
미사의 두 중심축은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입니 다. 이 두 가지 전례에서 무엇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적지 않게 “성찬 전례가 중요합니다.”라는 답변을 듣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예식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성찬례 모두 중요합니다. 특별히 말씀 전례에 대한 부분은 성찬 전례를 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만 생각하기도 하지만, 『로마 미사 경본 총 지침』55항에 의하면 말씀 전례 자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합니다.
“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성경에서 뽑은 독서들과 그 사이에 오는 노래로 이루어진다. 이어지는 강론, 신앙고백, 보편지향기도는 이 중심부분을 더 발전시키고 완결한다. 독서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구속과 구원의 신비를 열어 보이시며 영적 양식을 주신다. 강론은 봉독한 말씀을 해설한 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을 통하여 신자들 가운데 실제로 현존하신다.”
이렇듯 말씀 전례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말씀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구원 역사를 과거로만 한정 짓는 “회상”의 차원이 아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살아 움직이는 구원이 무엇인지 말씀을 토대로 전해주십니다. 말씀 전례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성찬례를 위한 단계가 아닌 말씀 자체만으로도 구체적인 구원의 은총이 온 세상에 선포되는 중요성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미사 안에서 말씀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있으며 힘이 있고, 신앙생활의 활력이 되며 나아가 신앙과 삶의 목적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말씀 전례를 통해 받은 말씀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제시하는 구원의 방향을 일러주기에, 우리는 말씀 없이는 구원의 빛을 얻을 수 없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 전례 중에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현존하실 뿐만 아니라 이 순간에도 성령의 능력을 통해 말씀이 뜻하는 바를 실현합니다. 곧, 이러한 활동은 인간에 대한 성부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합니다. |
말씀 전례 부분에 있어서 독서는 성경 본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복음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 지침 57항에는 <성경 이 외에 그 어떤 책도 하느님 말씀을 대신해서 읽을 수 없다.>라고 제시함으로써 말씀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합니다. 말씀 전례는 미사에 참석한 공동체가 그리스 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이끌어주고, 일상 속에서 멀어진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말씀 전례의 목적은 말씀으로 시작되고 말씀 안에서 완성됩니다. 다음 시간에도 말씀 전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 교구 내 공소
예산신성리 성당 분천리공소
분천리공소는 6·25 한국전쟁 직후 전교되면서 예산성당(주임, 정 에밀리오 신부) 관할로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삽교본당(1966년)을 거쳐 예산산성리본당(1988년) 설립으로 관할이 변경되었다. 현재의 공소건물(시멘트벽돌조, 연면적 66.12㎡)은 1963년 9월 11일 정 에밀리오 신부의 지원으로 준공되었다. 정면에는 낮은 박공지 붕 형태의 현관이 있으며 2개의 아치구조로 된 출입구가 있다. 초대 박성만(바오로) 회장을 비롯한 역대 회장들의 희생이 컸다. 1980년대 중반 공소예절이 중지되면서 건물은 비워졌다. 한때 부분적인 수리를 했으나 건물 안팎의 보존상황은 양호하지 못하다. 2001년 본당 구역으로 편입되었고, 현재는 9세대 20여 명의 신자들이 본당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44)>
알고리듬을 경계하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지구상의 모든 기술은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지금껏 눈부시게 발전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가 차고 있는 스마트 워치는 예전의 시계와 비교 불가입니다. 시간은 기본이고 건강, 날씨, 스케 줄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전화까지 걸고 받을 수 있는 편리함을 선사합니다.
심지어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이제 좀 걸어야 할 시간이라며 요란한 진동을 울리며 나로 하여금 결국 운동을 하게 만드는 과한 친절함마저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편리한 기술 가운데 우리가 눈만 뜨면 매일같이 체험하게 되는 놀라운 기술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알고리듬’을 이용한 기술들입니다.
내가 좋아할 영화나 물품들을 알아서 추천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 구입 후 그 물품이 떨어질 만하면 사야 할 시기까지 상기시켜 주는 그야말로 편안함의 끝판왕이 바로 알고리듬입니다. 나의 성향을 이해하고, 나의 행동을 예측하며, 나에게 적합한 안성맞춤의 정보를 제때에 알려 시간을 절약해 주는 이 편리한 알고리듬 기반 기술에 우리는 하루하루 익숙해져 갑니다.
그런데 내 성향에 맞게 모든 걸 설계해 주는 편리함에 익숙해지다 보니, 내 삶이 혹시 한쪽 방향으로만 계속 넓어져 역으로 조금씩 편협해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리듬은 나에게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맛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아하는 것만 계속 편식하도록 하는 속성이 있음을 발견하곤 일종의 경계심마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걸림돌 없는 편안함은 편견을 만들고, 좋아하는 것만 계속 좋아하면 고집만 강해집니다. 알고리듬이 주는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혹시 고집과 편견이 커질 거라 우려하는 건 기우일까요?
요즘 그래서 전 새로운 알고리듬을 찾고 있습니다. 기존의 알고리듬과 정반대로, 익숙한 틀을 벗어나게 하여 낯선 것을 보여줌으로써 나를 늘 깨어 있게 하는 그런 알고리듬 말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발견해 갑니다. 불편함 속에 지혜가 숨어 있고, 흔들림 속에 참 행복이 있음을 발견하게 하는 알고리듬이 바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임을 깨달아 갑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교수-
<1분 교리>
Q-1) '강생구속'이란 무엇인가요?
A) 성모 마리아께서는 성령의 전능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는데 이를 '강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원죄에서 풀어주시어 자유롭게 해 주시는 것을 '구속'이라 하는데, 예수님의 '강생구속'은 하느님께서 세상과 우리를 구원하시려 베풀어 주신 은총의 신비입니다.
Q-2) 예수님께 대한 호칭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성경에는 예수님께 대한 다양한 호칭들이 나옵니다. 나자렛 예수, 랍비(라뽀니), 메시아, 하느님의 어린양, 주님, 사람의 아들(인자),말씀(로고스), 그리스도, 구세주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호칭마디에는 각자의 고유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탄소중립 어린이
환절기가 되어 주변에 감기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또한 다시금 코로나의 확산 조짐이 보이는 등 개인위생에 신경 써야 할 시기가 또 된 거 같아요. 오늘은 어릴 때부터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유치원생 교육활돌과 계몽의 글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린이집 입구에 유아들의 탄소중립 작품 전시회가 열려 주민들의 찬사를 받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있는 남양주 시립 '파라곤 키즈 어린이집'에서도 계절별로 전시회를 열어 주민들이 유아들의 다양한 활동 결과물을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최근에 눈이 번쩍 띄는 전시회가 열려 자세히 보니 '아나바다', '탄소중립 활동' 전시회다. '에이, 유아들에게 탄소중립 교육이 가능해?'라는 의심을 하고 방문해, 원아들의 탄소중립 활동 결과물을 보니 놀라웠다. 기우였다. 서기영 원장을 중심으로 교사들이 유아 탄소중립 전도사를 지칭하고 아이들과 다양한 환경 보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립 어린이집이 된 후 남양주시 지원을 받아 더 활발하게 탄소중립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서 원장은 일찍이 어린이 탄소중립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지구 지킴이 환경 캠페인'에 동참하는 활동을 원아들과 함께 실천해왔다.
공원이나 숲 속에서 체험학습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인 플로깅은 일상이 됐다. 서 원장은 "쓰레기만 찾는다고 땅을 보며 걷는 부작용도 생겼다"라며 웃는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 동원할 때 집에서 아이스팩을 들고 온 어린이가 분리수거함에 넣고 있다.
그동안 탄소중립 활동으로 모인 재활용품을 이용해 만든 다양한 재활용품 작품들은 유아들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계란찜, 페트병, 우유갑, 휴지로, 빨대, 종이상자 등으로 다양한 생활용품과 공예품을 만들었는데 상당히 수준이 높다.
유아 탄소중립 교육은 어린이집과 가정이 연계되어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세제와 비누를 덜 쓰면 물이 아프지 않다"라며 집에서도 물 아끼기 행동을 스스로 하게 하고, 선생님께 인증받도록 하니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여름에는 쌀 포대를 재활용한 화분에 토마토를 심어 수확까지 하며, 텃밭 가꾸기를 통해 환경을 위하는 게 어떤 건지 체험하도록 했다. 이런 활동은 유아들에게 환경의 의미 및 환경 감수성을 길러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유아 탄소중립 교육은 거창한 게 아닌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탄소중립은 탄소 배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흡수하거나 제거해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일이다. 탄소중립을 거창하다 생각하지 말고 유아 단계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 실천하도록 해주면 유아들 대상 교육이 가능하다는 걸 느낀 방문이다. 유아들이 앞장서 탄소중립 생활을 실천하는 사례를 통해 전국의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탄소중립 활동이 꾸준히 이뤄진다면 탄소중립 2050은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희망을 본다.
-글, 사회복음화 분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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