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산성리성당 손지리공소
충청남도 예산군 손지대숲길 21(대흥면 손지리 368)
+ 루카복음 23,35-43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폐가 붙어 있었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질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나의 절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김명현 마카엘 성거산성지 전담
대림절을 한 주 앞둔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 일입니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는 당시 세계에서 날로 확산되어가는 극단적 민족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제정하였습니다.
‘민주주의’(democracy) 또는 ‘민주화’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민주주의의 주체는 국민입니다. 즉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입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 선거는 다수결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가장 진보된 정치제도 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민주주의적 요소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이 말은 교회에서도 어떠한 정책을 수립하거나 무슨 큰 사업을 할 때 교우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민주적으로 추진한다는 면에서는 민주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성격상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계명과, 신약시대에 주어진 성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신앙의 본질이 민주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계시종교입니다.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님께서 전해주신 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운영과 사업은 민주적이어야 하지만, 교회의 신앙과 교리체계는 민주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신앙과 교리까지도 민주적이라면, 다수결로 교리를 바꾸는 것이 가능해지고, 그렇게 된다면 교회는 더 이상 계시종교일 수 없습니다. 신자들과 대화를 해 보면 복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속에서 배워온 잣대로 교회를 평가하는 분들을 가끔 만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이 삶의 중심이 되어 세상의 그릇된 이념과 죄상을 비판하고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존재가 신앙인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유일한 절대자로 믿고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연중 시기를 마치는 이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냅니다. 골고타산 위 십자가에 처참한 모습으로 외로이 달려 계신 예수님.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해보라지.” 라며 빈정거리는 유다인 지도자들 사이에서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한 겸손한 죄수가 고백합니다. “예수님, 선생님, 선생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라는 백부장의 고백도 들려옵니다.
2천여 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부정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회개한 죄수의 마음으로, 그 백부장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왕’이시라 고백합니다. 긴 연중 시기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도, 우리를 미혹시 키는 세속의 어떤 사상과 물질의 유혹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임금, 절대자로 고백하는 대축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주 사목 대전 모이세>
모두가 같다
요즘 모이세를 찾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지곤 합니다. 미사 후에 자연스레 올라와 빵을 고르고, 부티끄의 물품을 구경하고, 다과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모이세를 처음 방문하는 친구들 외엔 자연스레 행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의미겠지요.
저 역시 미사 후에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레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어느 날 같이 차를 마시던 친구에게 직원이 바지를 들고와 “이 옷이 맞을 것 같다.”며 옷을 건넸습니다. 누가 봐도 허리가 큰 바지였는데, 바지를 본 친구가 대뜸 자기에겐 클 거라고 거부하더군요. 제가 그의 배를 보며 맞을 것 같다고 하자, 그 친구는 배만 나온 거 라며 허리는 맞지 않는다 하더군요. 주변에서도 맞을 것 같다고 하자 그 친구는 옷은 입어보지 않은 채 한 참을 바지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의 반응이 낯설지 않아 한참을 웃었는데, 아마도 뱃살을 빼고 싶은 남자들은 다들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1인치 늘었다는 건 나의 뱃살 관리가 실패했다는 것 을 의미하며, 1인치를 늘려 옷을 입는다는 건 그만큼의 살찔 여유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곤 다시금 그 옷이 쨍기기 전까진 운동이나 다이어트는 묻어두고 살아갈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 역시 바지가 배에서 쨍기는 느낌이 있는데도, 곧 죽어도 입었던 사이즈를 유지하려 합니다.
또 한번은 아주 유쾌한 친구 하나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길래, 직원들에게 무슨 일 있는 것 같지 않냐? 물었더니, 직원이 대뜸 임신한 것 같다고 답을 했습니 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사실인지 물었더니 놀라면서 맞다고 하더군요. 그에게 안수를 해 주고 축하해 주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직원에게 말하라고 했더니 불안한 기색이 사라졌습니다.
삶의 아주 소소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 모습에서 우리 모두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 니다. 각자의 언어, 환경, 문화 등 여러 부분이 다르다고들 하지만, 모이세를 찾는 친구들과 우리는 같습니다. 신앙이 같고, 사랑받고 싶은 부분도 같고, 친구들과 어울려 좋은 시간 보내길 바라는 것도 같습니다. 선물에 고마워하는 것도 같고, 가끔 욕심부리는 것도,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같습니다. 물론 뱃살에 민감한 것도 같고, 임신한 친구가 자신의 몸의 변화에 힘들어하는 것도 같습니다. 이렇게 저는 우리 모두가 같다는 것을 느끼며, 예수님의 황금률을 떠올립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안성준 도미니코 신부 대전 모이세 전담-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27. 미사 해설 – 말씀 전례(3) : 말씀 전례의 의미
말씀 전례에서 성경 봉독은 언제나 독서대에서 선포됩니다(미사경본 총지침 58항). 전통에 따라 성경 독서의 임무는 주례자가 아닌 교회로부터 독서직을 받은 자가 읽습니다. 하지만 알맞은 독서자가 없을 경우, 주례 사제 자신이 복음 선포와 더불어 다른 독서들도 선포(미사경본 총지침 59항)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말씀 전례 안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리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하느님 말씀과 주님의 성체와 함께 거룩한 전례 안에서 모든 교우들은 끊임없이 영적 양식을 얻을 수 있고 양육되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에 따라 미사 경본 총지침 29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경이 봉독될 때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이는 전례의 중요한 요소인 하느님 말씀을 봉독할 때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성경 봉독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므로 누구나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례 행위의 한 부분으로서, 살아 있는 풀이인 강론으로 말씀을 더욱 완전히 이해하여 더 큰 효과를 얻게 해야 한다.”
이 말씀에 의하면 성경이 봉독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경을 편 채 눈으로 읽거나, 공동 독서의 의미로서 받아들이기 보다는 들음으로써 깨달으려는 자세가 우리에게 요구되는 올바른 모습입니다. 미사에 참석한다는 것은 성경 교육을 위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고 일치되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교회에서 말씀 전례에 성경을 봉독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하는 봉사자를 “독서자”라고 합니다. 독서자는 복음을 제외한 성경을 선포하는 직무를 받으며, 성경 봉독을 할 독서자는 참된 자질을 가지고 빈틈없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서는 독서를 할 수 있는 자격으로 독서직이라는 직위를 줍니다. 독서직을 받은 사람은 말씀 전례에서 사제를 도와 미사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평상시 본당에는 독서직을 받은 봉사자가 없으므로 사목구 주임의 판단에 따라, 평신도가 성경 봉독을 수행할 임무를 도울 수 있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01항). 그렇기에 독서자는 미사 집전 중에 고유한 직무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성경 봉독의 소양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말씀의 전례 구성에 따라 각 부분을 해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 교구 내 공소
예산산성리성당 손지리공소
손지리에 전교가 된 것은 1920년대로 송 아가다가 입교하여 신앙이 전해졌다. 1975년경 공소가 시작되어 송옥진(아가다)과 정지용(그레고리오) 회장집에서 공소 예절을 하였다. 현재의 공소 건물은 1980년 대지 439㎡ 위에 시멘트벽돌조(연면적 72.73㎡)로 건축되었다. 토지는 외인이었던 이항만 씨의 하천 부지를 희사받아 사 용하였다. 공소 앞쪽으로는 ‘당진-영덕’ 고속도로의 교량 구간이 위치하고 있다. 공소는 1990년대 중반부터 사용이 중단되면서 누수로 인한 훼손과 창호, 천장 등의 부분 훼손이 발생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 본당 구역으로 편입되었고, 현재는 15세대 35여 명의 신자들이 본당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위령 성월과 위령기도
교회는 해마다 11월은 죽은 모든 이를 함께 기억하고자 위령 성월로 지정한다. 11월의 첫 번째 날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지정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향하는 바를 명시적으로 알려준다. 다시 말해 우리가 희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데, 그것은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며 온 교회가 함께 기 뻐하고 우리의 길을 나아가자는 재촉인 것이다.
11월의 두 번째 날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늘나라를 지향하며 살아갔던 사람들 중 부족한 것들로 인해 거룩한 상태에 이르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들을 두고 교회는 ‘연옥교회’ 혹은 ‘단련교회’로 칭하며 성인들과 우리들의 도움(통공)을 그들에게 주는 것을 독려하는 것이다.
특별히 교회에서는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정성껏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우들은 죽은 이들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전대사를 받는 조건은 동 일하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은총지위의 상태에 있으면서 사도신경, 주모경과 교황님의 지향을 기억하며 기도하면 되는 것이다.
위령 성월을 지내며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며 바치는 기도 중에 단연 으뜸이라 생각하는 기도는 위령기 도이다. 우리가 보통 ‘연도’라고 칭하는 이 기도는 우리의 형제, 자매가 돌아가셨을 때만 바치는 기도가 아니다. 일상적으로 바칠 수 있는 기도이며 위령성월에 바치면 가장 좋은 기도이다. 일상에서 바치는 우리의 기도를 생각해보자. 아침·저녁기도, 묵주기도, 성체 조배, 십자가의 길 등등. 참으로 많은 기도를 바치며 살아가지만 많은 분심과 잡념 속에 내가 기도를 한 것 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이다.(물론 나 자신의 체험이기는 하다.)
반면 위령기도를 바칠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이 없다. 외우지 못하기에, 너무 가끔 바치는 기도이기에 상장 예식서에서 눈을 뗄 순간이 없으며 집중하며 바치게 된다. 우스갯소리이지만 다른 기도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하느님과의 일치, 대화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도이다.(다른 기도를 폄하하는 의도는 아니 다.) 이렇게 죽은 이들을 위하여 바치는 기도는 나 자신이 하느님과 집중하며 대화하는 시간이며 죽은 이 들을 위해 전구하는 시간이다. 위령기도처럼 아주 오 랜 시간 동안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 흔히 있는 일인가?
위령 성월을 맞이하여 코로나로 인해 조금 소홀했던 위령기도 바치는 일을 조금 더 하였으면 좋겠다. 연도 소식에 발 벗고 나서서 기도하고, 묘지를 방문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들을 위해 위령기도를 바치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연도를 바친다면, 그래서 우리가 늘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늘나라의 희망이 우리 가까이에 있게 될 것이다.
-강대원 즈카르야 신부 홍보국장-
<1분 교리>
Q-1) '봉헌기도'란 무엇인가요?
A)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로 시작되는 봉헌기도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 바치는 아침기도의 핵심입니다. 주님께 받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오롯이 도로 바치겠다는 내용이며, 주님의 뜻에 따라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하루를 하느님께 맡기겠다는 봉헌의 마음을 아뢰는 기도입니다.
Q-2) '육화의 신비'란 무엇인가요?
A) '육화'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취하여 인간이 되신 사건을 말하는데, 이 사건은 인간을 구속하시고자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극치이며 심오한 은총이기에 '육화의 신비'라고 합니다.
코주부 화장지
찬미 예수님
요즘 감기 환자들이 많이 보입니다. 코로나 재유행의 조짐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백신 접종률도 많이 낮아져서 방송에 나온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걱정이 무지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고 보면 예전과 다르게 백신접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가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한번 걸리신 분들이 다시금 걸리면 중증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백신에 대해서도 잘 알아보고 맞아야겠어요.
오늘은 주님센터에서 하는 재활용 물품에 대한 보상이 있어서 말씀드릴까 해요. 얼마 전 우리 집에서 우유팩을 모아서 주민센터에 가져가서 화장지로 바꿔서 갖고 왔는데요. 우유 팩을 씻고 잘 말려서 펴거나 크게 잘라서 가지고 가면 코주부 화장지로 바꿔주더라구요.
코주부 화장지는 우유 팩으로 만든 화장지라고 하는데 질감도 우수하고 괜찮은 거 같아요. 그리고 폐건전지도 한 움큼 되면 가지고 가면 이 역시 화장지로 바꿔 준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재활용 쓰레기 수거함도 잘 이용하시면 좋을 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과정에서 탄소중립 실현이 현실화하고 그런 움직임 속에서 점차 발전되는 친환경적인 삶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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